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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사리 손을 별처럼 흔들며 아이는 학교로 향했다. 이어 남편이 뒤따라 집을 나섰다. 허물 벗듯 벗어놓은 남편의 옷가지들 속에서 불쑥 남편이 얼굴을 내밀 것 같다. 뒤집어진 채 그대로인 아이의 꽃무늬 잠옷 속에서 딸아이가 방글거릴 것 같다. 돌돌 말린 양말들, 눅눅한 채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수건·드라이기·빗·뚜껑 열린 화장품들….

쓸고 닦는 일로 오전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마치 무단 침입한 시간도둑에게 찍소리 한마디 못하고 오전 한나절을 빼앗겨 버린 듯싶다.

'당신, 아무래도 중독인 것 같아. 청소 중독…'

언젠가 남편이 지나가는 소리로 했던 그 말이 생각난다. 내가 생각해도 순전히 틀린 말은 아니란 걸 난 또 어제처럼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인 것을 어찌할까' 하시며 혀를 차시던 어머니 모습에 설핏 웃음이 번진다. 예순을 넘기가 무섭게 팔목 관절로 고생하시면서도 쉼 없이 쓸고 닦는 어머니를 늘 타박했다. 그러나 나도 그렇게 어머니처럼 살고 있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데 어찌할까. 그래, 부지런도 병이거니 그냥 덮어두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지 싶다.

훌쩍 지나가 버린 한나절의 끝. 노곤함이 몰려든다. 그러나 어디 노곤함 뿐인가. 노곤함의 꼬리를 잡고 행복도 함께 밀려든다. 그들이 내게 있어 행복하고, 그들이 남겨 놓은 어수선한 흔적들이 행복하고, 곤한 한숨이 배어 나오도록 그들을 위해 땀 흘릴 수 있어 행복하다.

내 모습에서 옛날 내 어머니 모습을 보다

▲ 쌓아올린 돌탑.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딱 열흘 만에 다시 찾은 행복이다. 열흘 전, 치열한 부부 싸움에 난 내 일상의 행복을 잊어버렸다. 이것이 삶인 것을… 이런 삶이 또한 행복인 것을… 그러나 나는 가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치열한 부부 싸움에 나를 내동댕이친 채 현실이라는 미로 속에서 방황한다. 작년처럼, 또 올해처럼….

살다 보면 때로, 울컥 서러움이 북받칠 때가 있다. 목청껏 소리라도 내지르며 엉엉 울고 싶을 때가 있다. 1년 전, 내 마흔셋의 5월이 그랬다. 세상살이라는 건, 희망 바라기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좀 더 살기 편해질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그런 희망 바라기를 할 수 있기에 내 앞의 곤한 하루를 참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도 아닌 것 같았다. 어찌된 것이 하루하루가 고달팠다. 그래서일까. 아침에 눈뜨는 것조차 두려웠다. 더 이상 희망 바라기를 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두려웠었다.

지난해 초. 꽁꽁 얼어붙은 경기가 남편에게로 직격탄을 날렸다. 건설 관련 일을 하는 남편이 백수 아닌 백수가 되어 버렸다. 불경기라고 다들 아우성을 쳐도 남편에겐 드문드문 일거리가 들어왔다. 그러나 그나마도 점점 뜸해지더니 그 조차도 완전히 끊어져 버렸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숨가쁘게 달려왔으니 핑계 김에 충분히 재충전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한달이 되고 한달이 두 달이 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으로 흐르는 시간은 남편이나 내게 더 이상의 너그러움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저 아침에 밥 한술 뜨고 나가면 저녁에 들어와야 되는데…."

아주 오랫동안 어머니의 그 푸념을 들은 것 같다. 아버지는 변변한 직장 한 번 가져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사셨다.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그 푸념을 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어머니를 타박하기도 했다. 무위도식하는 아버지 심정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러나 그 즈음의 내 모습이 그 옛날 바로 내 어머니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했듯 남편도 그렇게 너그럽게 이해했어야 하건만, 그보다 앞서 남편을 향한 푸념이 늘 먼저 앞섰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속성일지도 모른다며, 스스로 나 자신을 위로도 해보았지만 그 조차도 허울좋은 면죄부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갈라질 듯한 살얼음판 위를 걷다

금방이라도 쨍하고 갈라질 듯한 살얼음판 위를 숨죽이며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어정거리는 남편이나 그런 모습에 숨이 막히는 나나 예민해지긴 마찬가지. 별 것 아닌 일에도, 별 것 아닌 말 한마디에도 티격태격하게 되었다. 그러다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부부 싸움에 이르게 되었다.

다투고 돌아앉아 담배만 피워대는 남편의 휑한 등을 바라볼 때면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싸우게 되었다. 그런 부부싸움이 꽤나 잦던 어느 날. 며칠 바람이나 쏘이고 오겠다는 짤막한 쪽지 하나만 남긴 채 남편은 집을 떠났다.

떠밀리다시피 집을 떠난 남편, 그리고 그 빈 자리. 그러나 그날 이후, 참 어처구니없게도 난 허전함에 몸을 떨었다. 너무나 휑했다. 가슴이 너무 시려 금방이라도 몸뚱이가 얼어버릴 것 같았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전한 가슴팍으로, 시린 뼛속으로 남편이 야금야금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루는 해맑은 미소를 가득 담은 온화한 남편으로, 또 하루는 짓궂은 장난꾸러기로, 또 하루는 어리광으로 똘똘 뭉친 철부지로…. 남편은 그렇게 내 온 육신을 불쑥불쑥 헤집고 다녔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미운 정도 정이고, 애증도 사랑이라는 것을.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일도 없는 부부싸움. 결국 남는 건 서로에게 상처뿐이라는 것을. 그 옛날 내 아버지를 이해했던 것처럼 왜 남편을 이해하지 못할까. 노는 사람 심정이야 오죽할까. 늘 그렇듯 순간을 인내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오히려 더 부아가 치밀어 나는 내 가슴을 난도질하며 또 다른 생채기를 냈다.

연애시절 올랐던, 팔공산에 다시 오르다

▲ 사람들은 돌탑을 쌓아올리면서 자신들의 바람도 함께 쌓아올린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그 즈음. 우리나라 40·50대 남자들이 알게 모르게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가장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감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예외는 아닐 것 같은 노파심에 갑자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을 일으켜 세워 줘야 할 것 같았다. 소금에 절인 배추 마냥 한없이 널 부러져 있는 남편에게 어떤 식으로든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어 줘야 할 것 같았다.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퀭한 두 눈, 덥수룩한 수염, 툭 불거져 나온 광대뼈… 다음날. 싫다는 남편을 억지로 일으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잠시나마 이 답답한 현실로부터 남편을 탈출시켜 주고 싶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의 옆모습을 슬며시 바라보자니 바늘로 찔린 듯 가슴이 따끔거렸다. 허옇게 마른 입술을 꾹 다문, 한없이 무기력해져 버린 한 남자의 옆모습이 자꾸만 내 시선을 아프게 후벼팠다.

연애 시절 때나 신혼 때, 가끔 팔공산을 오르곤 했었다. 산을 오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산을 오르는 길목마다 무수한 다짐과 소망들을 작은 돌탑들 위에 켜켜이 쌓아올리기도 했다. 바로 눈앞인 듯, 그러나 한참 높은 정상을 향해 서로 밀고 당기며 그렇게 산을 올랐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을 만큼 다리가 후들거려도 그리 힘든 줄 몰랐다. 정상에 올라 서로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며 함께 산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이 그 때는 그리 좋았었다.

오랜만에 보는 남편의 환한 웃음

'그 때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때 쌓아올린 돌탑들엔 어떤 다짐과 소망들을 담았을까. 숨이 차고 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리는데도 그땐 왜 하나도 힘들지 않았을까. 정상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는 무엇이 있었을까.'

산을 오르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남편은 말이 없었다. 힘들어하는 날 위해 무심하게 손만 내 밀어줄 뿐이었다. 짐작컨대, 남편도 나와 같은 상념에 빠진 건 아닐까 싶었다. 남편의 두 눈이 점점 깊어지는 걸로 봐서는.

산행은 예전 그 때보다 몇 배는 힘들었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은 가슴을 옥죄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얼굴로 등으로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려 몇 차례 땅바닥에 주저앉아야 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를 디밀었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야 했다. 정상엔 무엇인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내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고단한 현실과 맞설 수 있는 어떤 힘이 그곳엔 있을 것 같았다. 무슨 가당찮은 오기였는지.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그렇게 차오르던 숨이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등줄기로 흐르던 땀이 어느 새 말라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던 다리가 기분 좋게 노곤노곤 해졌다. 순간, 적당한 감미로움에 행복하단 생각까지 들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내 손을 끌어 주느라 어지간히 힘겨웠을 텐데 오히려 남편의 얼굴은 비 개인 봄날 오후처럼 화사했다. 산을 오르며 한없이 깊어져만 가던 남편의 두 눈도 어느 새 맑고 고요해져 있었다.

다만,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 하나만으론 설명이 부족한 듯싶었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육중한 무게로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뭔가가 가슴 밑으로 쑥 내려가는 듯한 느낌에 짧은 전율마저 느꼈었다.

나를 옥죄고 있던 모든 고달픔이 송두리째 빠져나간 듯한 홀가분함에 금방이라도 훨훨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그 홀가분함을 뒤따라 말끔히 비어버린 내 가슴을 채우는 또 다른 뭔가가 있었다.

남편의 환한 웃음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남편의 웃음이었다. 그건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힘, 내 앞에 놓인 현실이 아무리 고되고 힘겨울지라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든든한 힘이었다. 그랬다. 남편의 웃음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웃음을 잃어버렸었다. 그건 내가 힘을 잃어버렸었다는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남편의 웃음을, 나의 힘을 빼앗았단 말인가. 단지, 현실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남편에게서 웃음을 빼앗은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때 힘겹게 산을 오르며 내가 찾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남편을 무기력하게 만든 건 바로 나 자신임을 산을 오르는 곳곳에서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5월21일 부부의 날에 치른 치열한 '대전'

ⓒ 김정혜
예전 그 때. 산을 오르며 수없이 다짐했다. 기쁠 때보단 힘들 때 더 다정하게 손잡아 주자고. 행복할 때보단 슬플 때 더 따스하게 보듬어 주자고. 둘이라서 즐거울 때보단 혼자라는 외로움에 슬퍼 보일 때 더 사랑하자고. 그런 다짐과 소망들을 담아 우리가 쌓아 올린 돌탑들. 긴 세월을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세월만 흘렀을까. 모진 비바람은 또 얼마나 돌탑들 위로 휘몰아쳤을까. 그럼에도 돌탑들은 오히려 더 놓아져 있었다. 수많은 이들의 수많은 소망들이 켜켜이 쌓여 금방이라도 하늘에 닿을 듯 그렇게 높아져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에는 내가 살아온 세상이 있었다. 아등바등 살아온 내 하루하루가 거기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부끄러웠다. 지난 시간, 남편을 향한 내 마음이 너무 인색했음이 부끄러웠다. 힘들어하는 남편의 손을 잡아 주지 못했다. 슬퍼 보이는 남편을 보듬어 주지 못했다. 휑한 남편의 어깨 위로 외로움이 덕지덕지 묻어나도 남편을 더 사랑하기는커녕 질타하기 바빴었다.

그랬다. 그 옛날 산을 오르며 쌓아 올렸던 수많은 돌탑들을 나는 잊고 살았던 것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 큰 심호흡 한번에, 목청껏 내지르는 '야호'소리 한 번에 그 모든 걸 실어 보냈었다.

환한 얼굴로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남편이 가만히 내 어깨를 감싸 앉았다. 따스한 남편의 체온. 목구멍이 싸해졌다. 그 순간, 무슨 말이 필요할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내일. 그 내일엔 우리가 쌓아 올렸던 수많은 돌탑들을 되새길 수 있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그 간절함으로 남편의 손을 힘주어 꼭 잡았었다. 2006년 5월. 수많은 기념일들이 빼곡히 들어찬 가정의 달인 그 5월을 난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다시 1년의 시간이 지난 2007년 5월. 그 중에서도 둘이 하나 된다는 부부의 날인 21일. 우린 또 치열한 부부대전(夫婦大戰)을 치렀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부부싸움이었다. 그러나 곰곰 되짚어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애처로움이 지난해보다 깊다. 그럼 뭔가? 부부싸움 한 번에 고운 정 보단 미운 정이 더 깊어지고 또 사랑보단 애증에 더 가슴 짠해진다는 이야기인가.

그래,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고운 정이 빛이 바래 미운 정이 되는 것. 그리 불같던 사랑이 식어 물 같은 애증이 되는 것. 그게 둘이 하나 되는 부부 아닐까 싶다. 우린 그렇게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해 그리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지도 모르겠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 가족의 사랑을 한 번 더 되짚어 본다는 그 5월에, 난 참 아이러니하게도 부부대전(夫婦大戰)이라는 열전을 불사했다.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곰삭은 부부의 정을 다시금 확인했다. 지난해도 올해도 내겐 참 특별한 5월이다.

덧붙이는 글 | '특별한 5월 응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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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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