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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을 위해 준비한 깜짝 이벤트.
ⓒ 박병순
5월 22일 아침. 출근준비를 하는 남편에게 내심 어떤 말이라도 듣고 싶었는지 아침부터 강아지 마냥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저의 기대를 저버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였죠.

나름대로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다고 전날 비가 많이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근영이를 업고 나가 포도주에 케이크까지 주문하였는데 이렇게 결혼기념일인지도 모르는 남편을 보니 야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침준비를 하면서도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부부도 아닌데 벌써부터 잊어버리고, 이런, 사랑이 식은 거야. 하긴 결혼기념일은 서로에게 축하해 주는 날인데 기분 좋게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 줄 걸 그랬나?'라며 온갖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하였지요.

작년 이쯤엔 기쁨이 두 배였습니다. 결혼 1주년 되는 날이 우리 근영이 백일이었거든요. 그래서 결혼기념일을 챙기기보다는 근영이 백일을 더 생각하게 되었지요. 남편과 함께 중국에서 생활하기에 아들 백일은 큰 잔치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이 사는 형님 가족과 아버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이웃들에겐 생소하였겠지만 한국의 떡 백설기를 나누어 주기도 하였지요.

집에서 간단하게 하려던 아들 백일이지만 어느새 결혼기념일이라는 것도 잊은 채 분주한 하루를 보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날 때쯤 고단함에 일찍 쉬려고 하는데 남편이 잠깐 나와보라며 일으켜 세웠지요.

거실 식탁 위엔 조그만한 케이크과 작은 선물(반지)이 놓여 있더라구요. 처음 결혼기념일을 그냥 지나가기 아쉬웠는지 남편이 준비한 감동의 선물이었습니다. 이렇게 혼자 받기만한 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다음 결혼기념일엔 남편에게 똑같은 감동을 주겠다고 약속했었지요.

그리곤 1년 후의 그날, 전화 한 통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한참을 망설이다 성격 급한 제가 먼저 전화를 하였지요. 당연히 기억 못하고 있을 남편의 말은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당연히 기억하지. 그냥 생일도 아니고 결혼기념일인데 왜 잊어버리냐?"
"정말? 어쩜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하고 너무 한 거 아냐?"
"아침부터 졸졸 따라 다니는 게 너무 웃겨서 말할 타이밍을 놓쳤지."

모른 척한 남편이 얄미웠지만 기억한다는 그 말 한 마디에 오전 내내 시무룩했던 마음은 어느새 온 데 간 데 없어졌지요. 한순간에 마음이 바뀌는 저의 모습 또한 웃기기도 하였습니다.

오후에 주문한 케이크를 찾아 집에 막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일찍 퇴근하겠다며 준비하라는 남편의 전화였지요. 부리나케 준비하고 나와 도착한 곳은 함께 가기로 한 음식점이 아닌 백화점 앞. 눈치를 보아하니 선물을 사주러 온 듯하여 망설임 없이 '어떤 선물을 사 줄 거냐?'며 애교 섞인 말로 남편을 재촉하였지요.

"반지? 작년에도 반지 사줬잖아요. 안 사줘도 돼요. 사달라고 한 건 농담이지. 선물은 없어도 돼."
"결혼하기 전부터 생각한 게 있었어. 결혼기념일마다 용돈을 모아서 너가 좋아하는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커다란 반지 케이스도 사서 결혼1주년 때부터 시작해서 10주년, 20주년이 넘어서도 볼 수 있게 할 거야. 우리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기념이라고나 할까?"

안 사겠다고 계속 거절하는 저를 설득시키기 위해 남편은 본인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더라구요. 남편의 새로운 모습에 조금 놀랍기도 하였고, 앞으로의 결혼기념일 선물을 이미 다 알아버렸지만 그래도 남편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이번엔 제가 남편에게 줄 선물. 포도주와 케이크 그리고 조명으로 분위기를 한껏 잡고 남편을 불렀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감동 받았는지, 아님 쑥스러운지 남편은 장난스럽게 "편지는 왜 없냐?"며 투덜거렸지요.

하루 종일 아들녀석과 씨름하느라고 편지 한 장 쓰기 힘들었다며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보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무언가를 해 줄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이미 서로에게 전해져 더 없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특별한 5월>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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