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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오월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런 달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지난 어버이날 아침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전화기 앞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날이 날인 만큼 전화 한 통화쯤은 해야겠는데 입으로만 때우려는 인사말에 차마 죄송해서 수화기를 들 수가 없었다.

'청소기를 밀어 놓고 해야지' '설거지 한 후에 해야지' 시간을 자꾸 뒤로만 미루다가 드디어 용기를 내어 버튼을 눌렀다. "엄마 어버이날인데 빈 입으로 전화만 하네" 아무것도 못해 드려서 죄송하다는 내 말에, 엄마는 "무신 그런 말을 하노? 아-들 키우느라꼬 안 그래도 쪼들려 죽겠는데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쓸 거 없다. 낸중에 아-들 다 키워놓고 너거들 살만하고 또 내가 더 늙거들랑 그때 해도 안 늦다. 아-들 다 키울 때까지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아-들이나 잘 키워라. 알겄제?" 하신다.

'그때 해도 안 늦다고?' 엄마가 그때까지 기다려 주실지…. 내 어려운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시는 엄마는 자꾸만 괜찮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신다. 슬픔이 울컥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고 그 슬픔 뒤로 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어버이날이 생각났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그날은 미술시간에 알록달록 색종이로 부모님께 달아드릴 카네이션을 만들어 가방에 넣고 종례시간을 맞았다. 선생님은 "내일은 어버이 날이니까 오늘 일기는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써 오도록"이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그날 밤 나는 끙끙거리며 엄마에게 드리는 편지로 일기장 한 쪽을 빽빽이 채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색종이 카네이션을 엄마의 가슴에 달아드리고 학교에 갔다. 2교시를 마친 중간놀이 시간이었다.

중간놀이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두 모여 국민체조로 몸풀기 운동을 하는 시간이었다. 다리가 아픈 나는 언제나 그 시간이 제외 대상이라 교실에 혼자 덩그마니 앉아 있다 뒷문을 통해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선생님이 교실에 오셔서 나를 찾고 계셨다.

"미애야 어데 갔다 오노? 빨리 나가자."
"어데예?"
"니가 어제 써 온 일기가 참 좋아서 교단에 올라가 전교생 앞에서 읽기로 했다."
"선생님 저는…."

나는 500명이 넘는 전교생 앞에 설 일도 까마득하고 계단 폭이 높은 교단에 불편한 내가 어떻게 올라가느냐가 더 큰 걱정이라 안 하겠다고 말하려는데, 선생님이 "니 글이 너무 좋아서 선생님이 교장선생님께 특별히 부탁드려 읽게 된기라. 아무 걱정 말고 읽기만 하면 된다" 하며 손목을 잡아끄셨다. 하는 수 없이 따라 나갔다.

교단 옆에 서서 교장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 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지팡이를 짚은 손도 떨리고 힘없는 다리는 더욱 떨리고 온 몸은 경운기를 타고 있는 듯 그렇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드디어 교장 선생님이 내 소개를 해 주었고 나는 교단에 오르기 위해 계단 앞에 섰다. 그런데 내 짧고 힘없는 다리는 그 높은 계단 위로 올라설 수가 없었다. "차렷, 열중 쉬어"를 하기 위한 전교 회장은 한 걸음에 뛰어 올라가는 교단인데, 나는 지금 그 계단을 올라가지 못해 끙끙대고 있었다.

선생님이 옆에서 잡아주고 당겨주어 겨우 교단 위에 올라서고 보니 긴장한 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선생님이 내 키 높이에 맞추어 조절해 준 마이크 앞에 서니 500명이 넘은 전교생이 한눈에 들어오며 갑자기 핑그르르 현기증이 났다.

나는 내 신체적 핸디캡 때문에 남들 앞에 서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였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왜 이 전교생 앞에 나를 세웠는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이제 전교생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일기를 읽어야만 했다.

'엄마에게'라는 첫 마디부터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지금 그 내용이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다리 아픈 나 때문에 엄마가 다른 엄마들보다 더 많은 고생을 하는 것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었던 듯하다.

고생하는 엄마에게 종이꽃이 아닌 꽃향기가 나는 진짜 꽃을 달아드리고 싶지만 버스를 타고 읍내를 갈 수도 없고 돈도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나중에 커서 돈 많이 벌면 잘 해드리겠다고. 그렇게 몇 줄을 읽어 내려가는데 갑자기 눈에 뿌연 안개가 끼면서 떨리던 목소리는 작은 흐느낌으로 변하고 있었다.

참 이상했다. 별로 슬픈 내용이 아니었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났는지. 엄마라는 이름은 그렇게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존재인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또 5월이다. 연록에서 진록으로 더욱 짙푸르러지는 저 나무들은 뿌리 속까지의 자양분을 끌어올려 잎들을 무성히 키우고 있다.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저 나무 같을진대 엄마의 자양분을 모두 빼앗아먹고 시들은 감자처럼 쭈글거리게 만들어놓은 이 자식은 언제나 내 살기에만 급급해 엄마가 뒷전이다. 5월이 아프게 지나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특별한 5월>에도 응모합니다.


태그:#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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