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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애가 12시간 아르바이트한 비용보다 값 나가는 '랍스터와 안심스테이크'.
ⓒ 씨푸드오션
어제(5월 8일)는 어버이날이라고 딸아이가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다. 저희들이 돈 버는 것도 아닌데 그냥 두라고 해도 그럴 수 없다며 졸랐다. 근래 동네에 들어선 식당에 가보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큰아이는 워낙 맛있는 거 먹는 걸 즐겨 했고, 먹으면서 행복해 했다. 그런데 요즘 유행인지 해물뷔페 류의 패밀리 식당들이 많이 생기는가보다. 집 근처에도 C그룹 산하의 '씨푸드오션'이라는 음식점이 생겼다. 날마다 차들이 몰려 성황임을 짐작하게 하곤 했다.

그러나 값이 좀 고가인지라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고 둘이서 돈을 모아 낼 테니 가자고 했다.

아들 녀석은 짠돌인데 가능할까? 괜히 아들 녀석을 믿고 있다가 딸애만 덤터기 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전에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부모입장에서 아이들의 성의를 무조건 거절만 하는 것도, 잘하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퇴근길에 접수를 해놓고 아들이랑 먼저 식당에 가서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딸과 남편 오기를 기다렸다.

메뉴를 보았다. 값은 장난이 아니었다. '카나디안 랍스터'라고 하는 요리는 5만5000원에 봉사료 10%가 더 붙는다. 우리 처지로는 분수에 넘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아들 녀석도 너무 비싸다고 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일해서 가끔 1년에 한 번쯤은 이런 호사를 누려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다양한 체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해보고 자극을 받아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직장을 잡고 사회생활할 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의 경험으로도 필요하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은 고민 끝에 메인 요리로 그릴랍스터와 안심스테이크(거금 4만7000원)를 주문하고 씨푸드 바를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 두 사람(딸과 남편)이 왔다. 주문하라고 했더니 높은 가격에 놀라면서 메인 하나면 됐으니 씨푸드 바로 모두 주문했다.

메뉴가 아주 다양한 건 아니었지만 재료가 싱싱하고 내용 면에선 흡족했다. 이름으로만 듣던 샥스핀 요리도 있었다. 이게 소설 속에서만 보던 그 비싸다는 요리인가 싶어 얼른 들고 왔다. 꼭 면처럼 생긴 것이 꼭 한 젓가락 감인데 꽤 쫄깃쫄깃한 맛이 좋았다.

생선초밥도 싱싱해서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좋아하는 연어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외식을 귀찮아하고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던 아들 녀석도 이젠 점점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고, 부자지간의 갈등도 많이 줄었다. 남편 사업이 안 돼서 많이 힘들고 지치고 위기까지 갔었고, 지금도 아직 힘들지만 그래도 잘 커 준 아이 둘에게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다.

아이들이 벌써 이렇게 커서 저녁까지 대접받게 되었다는 게 신통하기만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고 아이들과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주문한 랍스터가 나왔다.

'새우 반 마리에 스테이크 한 조각'. 결혼 20년 생활에 남편한테도 못 얻어 먹어봤던 요리. 딸아이의 다리가 퉁퉁 부어, 10시간 넘게 일해야 먹을 수 있는 요리였다.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서로 미루다가 결국 제일 용감한 내가 가위를 가지고 잘랐다. 네 식구에게 고루 나눠 주었다. 다 잘라놓고 젓가락을 들어 살을 집어 먹어봤다. 기대하곤 달랐다. 게살하고 비슷한 맛인데다 부드럽지도 않았다.

'하루 10시간 넘게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겨우 새우 반마리'. 다양한 체험이 필요하고 고급문화를 맛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지만 지출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좌석은 꽉 찼고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남편이 자리를 뜬 사이 아들에게 아빠를 좀 더 이해하자고 했다. 이제 아빠도 늙고 힘이 빠져서 많이 약해졌고, 아빠도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아들도 아빠를 이해하고 식구들이 아빠를 감싸주자고 했다. 아들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알아들었는지….

이래서 가족인가보다. 그동안 고집이 세고, 융통성 없고, 엄하기만 한 아빠에 대해서 아이들이 원망도 하고 야속하고 억울한 감정을 가진 적도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아빠에게 한 발짝 다가가고, 늙어 가면서 남편도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얼마 전 가까운 선배가 이런 말을 했었다.

"그동안 굉장히 힘들었는데 잃은 건 돈밖에 없고 나머진 다 그 자리에 있데."

더 욕심내지 말고 듬직한 아이들 곁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고 소리없는 응원을 해줘야겠다. 큰아이는 음식값이 아까워 더 먹고, 더 있다 가자고 졸라댔다. 하지만 충분히 먹었고 가족애를 느낀 셋은 오늘 충분히 즐거웠다. 더 앉아서 본전을 빼지 않아도 이미 마음이 넉넉했다.

덧붙이는 글 | 특별한 5월 응모글


태그:#어버이날, #가족애,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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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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