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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은 제철도 모르고 하늘에서 떨어진 하얀 눈송이 같다.
ⓒ 김연옥
4월이 시작되는 첫날, 나는 무학산(761.4m, 경남 마산시 교방동) 산행을 하러 오전 9시께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에 한 차례 가는 빗줄기가 흩뿌렸지만 비는 이제 그친 듯했다. 그러나 잿빛으로 찌푸린 하늘에 황사가 심해 온 도시가 뿌연 느낌이 들었다.

마치 학이 날아갈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무학산은 마산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산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마산에서 살아온 내게는 늘 애틋한 사랑으로 다가오는 산이기도 하다.

▲ 마산 서원곡 벚꽃.
ⓒ 김연옥
무학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지만 나는 벚꽃 구경을 하고 싶어서 서원곡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원곡은 우리집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 따라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 그 길을 달리게 되면 차창을 스쳐 가는 풍경이 온통 하얗다.

ⓒ 김연옥
마치 제철도 모르고 하늘에서 떨어진 눈송이 같다고나 할까. 서원곡에는 하얀 벚꽃이 바람에 눈가루 휘날리듯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따금 벚꽃을 바라보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그럴 때면 꽃은 그저 꽃일 뿐인데 하는 생각에 나라꽃이란 것을 만든 사람들이 괜스레 미워지기도 한다.

ⓒ 김연옥
요즘에는 만우절도 왠지 싱겁다. 평상시에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해 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모른다. 예전에는 만우절이 되면 가벼운 거짓말에 서로 속아 넘어가면서도 참 즐거웠다.

서원곡 코스는 꽤 가파르다. 그래도 군데군데 약수터가 있어 목을 축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연분홍 진달래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어 마음이 설렜다. 평평하고 널찍한 서마지기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께. 기다란 나무 계단을 한참 오르면 무학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 무학산 정상에서 서마지기로 내려가는 등산객들.
ⓒ 김연옥

그런데 바람이 어찌나 불어 대던지 차가운 겨울이 다시 온 듯했다. 정상 부근의 연분홍 진달래들은 꽃망울을 아직 터뜨리지도 않았다. 더욱이 심한 황사로 파란 바다도 볼 수 없어 못내 아쉬운 데다 목도 안 좋았다.

나는 하산을 마산여중 쪽으로 하기로 했다. 진달래가 많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길에도 진달래 꽃망울이 아직 터지지 않았다. 너무 실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참 내려가자 연분홍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진달래꽃이 꽤 피어 있어 그나마 아쉬움을 덜었다.

▲ 나는 진달래꽃을 바라보면 왠지 연분홍 등불이 떠오른다.
ⓒ 김연옥

ⓒ 김연옥
게다가 꽃 하나하나 자태가 고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했다. 수필을 쓴답시고 주홍빛 스탠드 밑에서 글들을 긁적거렸던 대학 시절이 떠올라서 그럴까. 나는 진달래꽃을 바라보면 왠지 연분홍 등불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마산은 내 고향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4년이란 시간을 빼고는 마산을 떠난 적이 없다. 내 형제들은 그런 나를 두고 우스갯소리로 '마산 지킴이'라 부른다. 다른 사람들이 마산을 어떻게 말하든 나는 고향 마산이 편안한 기분이 들어서 좋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 김연옥

ⓒ 김연옥
문득
살아있는 것이 눈물겨울 땐
여전히 별 뜨고 해 지는
푸른 산 허리에 서서
세상에 두 아들 놓아 두고
먼저 고이 떠난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려 불러 봅니다

문득
지은 죄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눈앞을 가릴 땐
어김없이 동트는 아침 태양에
속살 드러내는 창문가 나무 십자가 앞에서
긴 고통 풀어 놓습니다

문득
언젠가 떠날 그날이 떠오르면
오늘도 어지럽혀 놓은 서재
치울 일이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 김용환의 단상(斷想), '문득'


얼마 전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김용환 목사님의 단상(斷想)을 교회 홈페이지에서 읽고 문득 내 부모님을 떠올렸다. 나는 성악을 전공해서 그런지 화려한 것을 좋아했던 어머니보다 소탈한 아버지의 검소함을 더 닮았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소박한 잠바 차림에 고무신을 즐겨 신고 다니셨다. 지금도 크고 투박하게 생긴 내 손발을 볼 때마다 "너 엄마 손발을 닮았으면 예뻤을 텐데…" 하시던 아버지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 김연옥
그날 지독한 황사에도 무학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많았다. 다른 고장에서 온 등산객들도 더러 보였다. 아마 고운 진달래꽃을 기대하고 왔을지도 모르겠다. 진달래 꽃망울마다 톡톡 터지는 화사한 그날이 오면 꼭 그 꽃길을 다시 걸어 보고 싶다. 그래서 연분홍색 진달래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I.C→산복도로→서원곡→서마지기→무학산 정상→마산여중

<나만의 여행지> 응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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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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