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 언덕에서 눈을 주먹만 하게 뭉쳐 아래로 굴리면 밑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 작은 눈덩이 만하던 특별법에 대한 관심이 어느덧 집채만큼 불어났다. 온통 내 지역 특별법에만 초점을 모으고 있는 지역언론의 보도태도는 눈덩이효과(Snowball Effect)를 방불케 한다.
그런가 하면 정치권의 특별법관련 움직임에 민감한 언론들은 정치권의 미세한 반응도 자기지역의 유·불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확대해석하고 있다. 지역개발 특별법 의존성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는 일부 언론사들도 있지만 마치 작은 사건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는 현상을 설명하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연상케 한다.
어느 한 지역의 현상이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먼 곳의 자연과 인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나비효과는 특별법제정에 총력을 기울이는 전국 지자체와 해당지역 언론사들의 민감한 반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역은 지금 특별법 전쟁 중

▲광주일보 6일자 1면. ⓒ 광주일보
각 자치단체들마다 서로 다른 특별법에 목메는 모습은 동·서·남 3면의 바다를 권역으로 나뉘어 전쟁을 치르는 형국이다. 대선을 앞두고 지역개발 특별법을 놓고 지역간 신경전은 갈수록 팽팽해지고 있다. 이는 지역마다 초점이 다른 언론의 보도에서 묻어난다.
'우리지역 특별법이 왜 다른 지역 특별법에 뒤지느냐', '특별법도 옥석을 가리자', '우리지역 특별법이 우선' 등 의제가 온통 '특별성'에 집중돼 있다. 참여정부 들어 지방분권특별법 등 균형발전 3대 특별법에 이어 동서남북으로 갈려 특별법전쟁을 치르는 모습은 특별법공화국을 떠오르게 할 정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특별법은 서남권 지역을 명실상부한 관광·레저단지로 조성하기 위한 '서남권 개발 특별법'과 남해안특별법, 새만금특별법, 경주역사문화도시조성 특별법과 동해안광역권 개발지원 특별법 등으로 즐비하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 2003년 이후 현재까지 새로 시행됐거나 논의 중인 개발 특별법만 20여개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개발특별법 난립으로 오히려 균형발전을 발목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지역언론의 보도에서 드러난 특별법 제정은 낙후지역 개발에 꼭 필요하다는 당위성이 지배적이다.
광주·전남지역, 서남권특별법 차질우려
광주·전남지역 언론은 서남권특별법이 비슷한 성격의 법안들과 함께 심의될 예정이어서 차질이 예상된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지난 6일 전남·경남도·부산시가 공동 제출한 '남해안발전특별법'과 경북·강원지역에서 제안한 '동해안 광역권개발지원 특별법'을 '남·동해안 연안광역권 발전지원법안'(남동해안특별법)으로 묶어 심사키로 합의한데 대해 지역언론들은 일제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일간지들은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전남·서남부지역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추진 중인 서남권특별법이 남동해안특별법과 섞여 논의될 경우 특별법 지위 상실과 함께 시기도 크게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올 상반기 제정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서남권특별법안을 3월 중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지만 법조문 초안 작성 등 현재 진행단계로는 무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데다 남동해안특별법안에 묻혀 흐지부지될 공산도 커지고 있다"는 보도가 눈에 띈다.
강원·경북지역, 동해안특별법에 촉각
그러나 동해안을 낀 지역은 다르다. 경북지역 언론은 동해안특별법이 남해안발전특별법안과 통합안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동해안특별법의 주요 내용이 누락되거나 삭제돼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다른 속사정임을 내비치고 있다.
<경북일보> 등 지역일간지들은 동해안특별법이 회기내 통과가 불투명할 전망이라며 우려를 표하는 내용의 기사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강원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강원지역 언론들도 ' 동해안 개발 관련 특별법을 강원도 단독으로 성사시키려 하기도 했지만, 이것이 쉽지 않아 경북 울산시 등과 더불어 국회 건교위를 방문하여 요청하는' 등의 소식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강원도민일보>는 7일자 사설에서 "사뭇 치열한 경쟁 양상이 벌어지는 이 사안에 정말 철저한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현 정권에 들어와서 서·남해안권에 대한 관심이 특별히 고조돼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전했다.
"제주를 제주특별자치도로 도명을 바꾸면서까지 그야말로 특별한 도로 취급해 세계에 얼굴을 내놓는 전략을 편 것이 이 정부"라는 이 사설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J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이를 비롯해 한반도를 J자형으로 개발하려는 기본 계획이 동해를 포함한 U자형 개발 계획으로 전환되기를 요구하는데도 이렇다 할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정황"이라고 했다.
이들 지역 일간지들은 사설에서 지역의 역량을 최대로 모아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문하고 있다.
부산·경남지역, 남해안특별법 찬반논란

▲경남도민일보 7일자 사설. ⓒ 경남도민일보
부산·경남지역 언론사들은 경남도와 경남지역 국회의원 등이 배수진을 치며 법안 제정을 추진 중인 남해안특별법이 갈수록 첩첩산중이라며 우려를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경남일보>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도 본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풍부한 관광 및 문화 자원을 가지고 있는 남해안 지역을 동북아의 새로운 경제권 및 국제적 관광지로 발전시키는 법률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혀 '남해안시대 프로젝트'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중앙정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국가 전체의 이익 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발목잡기에 나서고 있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해안특별법은 지역언론사들 간에 시각차가 약간 다르다. <국제신문>은 7일자 사설 ''해안 그린벨트' 대규모 해제 괜찮나'에서 "해안 지역의 대대적인 개발을 위한 조치들이 잇따라 난개발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남동해안 연안광역권 발전지원법안' 등으로 '해안 그린벨트' 해제지역이 너무 광범위해 질 수 있다며 계획이 현실화되면 남해안의 난개발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이 사설은 "이미 시행된 제주도 특별법에 이어 서해안특별법안을 추진함으로써 남동해안발전법안까지 입안하게 됐기 때문에 이번 일은 정부가 부추긴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반성할 여지가 많다"고 했다.
"정부는 낙후된 해안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되 환경훼손이 없는 개발만 허용해야 한다"고 뼈있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경남도민일보>도 이날 사설 '남·동해안 특별법안은 악법'에서 "남·동해안 통합개발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좋지 않은 이면이 구체화되고 있다"며 "가장 중대한 개발 부작용은 국립공원이 원형을 잃을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즉 "남해안의 중심대상은 한려해상공원"이라며 "동해안에는 설악산과 오대산 국립공원이 포함돼 있어 개발의 손이 미치게 되면 자연경관이나 환경이 훼손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꼬집었다.
전북지역, 새만금특별법 한목소리
전북지역 언론사들은 새만금특별법에 온갖 초점을 다 모으고 있다. <전북일보>는 6일 "그동안 전폭적인 지원의사를 밝혀왔던 한나라당 주요당직자들이 막상 특별법안 제정작업이 추진되자 한 발짝 물러서고 있어 도민비난을 자초하게 됐다"며 한나라당을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가 하면 "김완주 전북도지사가 7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태권도공원 특별법과 경주 역사문화도시 특별법 연계 처리 등 이른바 '특별법 빅딜' 주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며 "태권도공원 특별법은 국회 법사위가 지난 6일 열기로 한 소위를 열지 못해 이번 임시국회 처리가 어려워진 상태"라며 <전북도민일보>는 아쉬워한다.
이밖에 제주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언론사들은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 개정안의 밑그림을 확정짓기 위한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주4·3 희생자 유족들이 처우 개선을 위한 특별법 개정 및 정책수립을 국회와 정부에 촉구했다는 기사와 함께 오는 14일 열릴 것으로 전망되는 위원회에서 제주4·3사건 명예회복위원회 등의 대외 일정을 소화할 것이라는 보도가 눈에 띈다.
이처럼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개발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반면 참여정부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행정도시 등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대형 국책사업은 한결같이 특별법 제정을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을 통한 개발은 벌써부터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거니와 개발특별법이 남용됨에 따라 야기될 환경문제가 크다. 특별법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원론적이고 선언적인 것에 머물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고 보면 지역적 관점에서 특별법을 부채질 하고 있는 지역언론들의 보도태도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