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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간 유엔대학 부총장을 역임한 킨히데 무샤코지 선생이 지난 2일 성공회대가 개설한 '아시아 시민사회 지도자 석사과정' 개설 기념 연속강연에 참가한 직후 이기호 평화포럼 전 사무총장과 대담했다. <오마이뉴스>는 이 내용을 요약, 정리해 게재한다. 이 글은 김레베카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 연구원이 정리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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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7일 오전 10시 35분]
'Integrity, Integrity, Integrity(정직)'.
킨히데 무샤코지 전 유엔대학 부총장의 강연을 듣고 나서 떠오른 건 이 세 마디였다.
'Integrity'는 한 마디로 번역하기 난감한 단어이다. '성실' '고결' '정직', 뭐 이런 뜻인데, 있어야 할 모든 요소가 빠짐없이 다 있어 '완전'하고 '전일'해서 그렇다는 뜻이다.
무샤코지 전 사무총장은 성공회대가 '아시아시민사회 지도자 석사과정(MAINS)' 개설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개최한 '아시아 시민사회 석학초청 연속강연'에 지난주 월든 벨로에 이어 나선 두번째 강연자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강연 뒤 질의응답 시간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종일관 "일본은 민주주의 경험이 없다"며 자신의 나라에 겸허한 모습을 보이던 그의 답변은 하나하나 조용하지만 진중하다. 태산이라도 옮겨가는 듯 하다.
저녁 먹는 자리에서 50~60년대 일본의 전위학생운동이나 그람시 영향이 컸다는 지역자치운동 등 젊은 시절 얘기를 바로 옆에서 길게 들었는데도, 기억력 안 좋은 나는 하루 자고 일어나니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긴, 나같은 것이 그 얘기의 '전달자'가 된들 무엇하겠는가.
이전에 자서전 비슷한 게 출판된 적이 혹 있느냐는 질문에 "하나 있긴 있는데, 다행히도 일본어로만 되어 있다"며 작게 웃던 무샤코지 전 사무총장.
소박하고 화려한, 조용하고 진중한
1969년 도쿄 소피아대에 국제관계연구소를 창설하기도 한 무샤코지 전 사무총장의 국제관계학·평화학·인권·유엔과 관련된 경력은 무척 화려하다(이렇게 말하면서도 '화려'란 단어가 선생이 보여준 인간미와는 그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절감한다).
13년간 유엔대 부총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오사카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개발에 대한 아시아 문화포럼' '인권분야 기술지원을 위한 유엔 기금' '오사카 인권정보센터' '차별과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세계 운동' '아시아지역대안교류(ARENA)' 등 여러 조직에 중요하게 관여하고 있다.
지난 2일 공개강연은 '새로운 유엔의 역할과 아시아지역 대안체제'에 대한 것이었다. 연초에 반기문 전 외통부장관이 새 유엔총장으로 부임하고 요즘 유엔을 둘러싸고 들리는 특히 내부 조직개편과 관련된 얘기들이 제법 시끄러워서인지, 청중이 꽤 되었다.
국제 주요 미디어는 벌써부터 "미국 일방주의·5개 패권국 거부권으로 갈등 구조가 내재된 안보리 등 개혁 의제에 반 총장이 첩첩 포위되어 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시민사회들은 유엔 평화유지군 관련 부서를 둘로 쪼개고 군축 관련 부서는 사무총장 산하 사무처로 축소하는 반 총장의 조직개편 제안을 미국 영항에 의한 것으로 보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무사코지 전 사무총장에게서 현행 유엔의 문제점과 관련해서 뾰죽한 해답을 듣기란 어려웠다. 강연 초점을 유엔보다는 유엔을 낳은 전지구적, 문명사적 흐름의 맥락,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 민중들의 탈식민화 도정에 맞췄기 때문이다.
이는 이튿날 성공회대에서 열린 강연 '아시아에서의 민주화 위기: 사회운동의 관점에서'에서 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무샤코지 전 사무총장은 아시아 민주화의 위기를 "'외생적 민주주의'와 '내생적 민주주의'의 부조화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진단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식민지적 정권의 민주화 반대편에 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탈식민화'에 대한 그의 요청은 끈질겼다. 이슬람의 '아사비야(헌신 정신)', 인도의 '안티오디아(공동체 성원 끌어안기)', 중국·한국의 '경천애인' 등 아시아 공동의 지적 원천에 대한 재발견과 관련된 부분은 국제관계학자로서의 그의 지적 품계를 여실히 증명해 보여주었다.
문제의 대담을 아래 요약해 싣는다.
"유엔의 두 얼굴, 식민화와 탈식민화"
이기호 평화포럼 전 사무총장 "유엔은 안보리 구조에 지배당하고 있는 측면이 있지만, 제3세계 억압받는 이들을 보호하는 데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킨히데 무샤코지 전 유엔대학 사무총장 "유엔은 제2차세계대전 직후 독일·이탈리아·일본과 싸우기 위한 연합으로 창설됐다.
그 무렵 벌써 유엔은 두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유엔은 이전 구조인 '국제연맹'의 너무 평등주의적인 실패를 겪지 않으려고 했다. '국제동맹'은 한 국가가 한 표를 갖고 있었다. 강력한 패권국가들의 동맹을 강조했는데, 이들이 현재 거부권 행사 권한을 가진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강대국들이 서로 잘 화합하고 파시스트적이거나 인종차별적으로 되지만 않는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구조지만, 양극체제가 무너지자 미국이 총회에서 가장 큰 세력이 되었다.
약소국가들은 신생독립국을 중심으로 인권·생태 등 현안을 총회에 올리고 문화·정보 등에 있어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것이 '탈식민화 과정'이다. 이후 젠더 평등주의, 다문화주의, 지속가능한 개발 등 전지구적 문제들로 의제가 확장됐다."
이기호 "유엔의 개혁과제는 무엇인가."
무샤코지 "유엔을 민주주의와 민주화에 기반한 다극적 체제로 만들어야 했다. 부시 이후로 미국은 유엔을 '제3세계가 세계를 탈식민화하는 구실'로 보았고 점점 더 골칫거리로 여겼다. 특히 유네스코는 탈식민화 세력이 시온주의 등을 비판하는 유용한 장소였고, 그래서 한 때 미국이 탈퇴한 적이 있다.
그 무렵 유엔 대학을 세우는 데 유엔이 도왔다. 미국과 일본이 주축이 되었다. 이는 유엔을 단순히 다극적일뿐만 아니라 다문화적이게 만든 유엔관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유엔은 이후 '식민화'와 '탈식민화'의 두 경향이 싸우는 싸움장이 되었다."
이기호 "남한에서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어떻게 됐냐는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 우리가 거기에 대한 지식을 다 잃어버린 건 아닌가."
무샤코지 "내생적-외생적 민주주의의 두 개념이 등장한 건 유엔에서였다.
60년대 말 근대화 담론이 성행하는 가운데 '근대화=서구화'는 거짓이고 모든 나라는 서로 다른 저마다의 개발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고유의 유산을 알고 각자의 문제들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주장이었다. 나는 이 내생적 절차를 민주화와 연관시키고자 노력해왔다. 민주화야말로 각 국가 고유의 개발 절차를 자유로이 택하는 것과 긴밀히 연관되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이 강제로 민주화시키는 과정에서 대테러전 개념을 오용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식의 외생적 민주주의 개념은 그러나 실상 유엔에도 있다. 유엔 정치분야에는 민주화를 관장하는 특별 파트가 있다.
서구적 민주주의 바탕은 자유로이 선택할 당신이 지지하는 당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령 말라위에서는 정당이 종족별로 나뉘고, 결과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상관없는 소수의 소외가 일어나게 된다. 종족정치의 문제가 일어난다. 또다른 문제는 민주주의가 현재 미국 패권을 이식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밖에서 강제로 이식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 전반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은 민주주의 경험이 있고 일본은 없다. 그러니까 내가 거기에 대해 말한다면 그건 '부처한데 불교를 가르치는 격'이 될 것이다(웃음)."
"한국에 민주주의 가르치면 부처에게 불교 가르치는 격"
이기호 "아시아는 비대칭적이다. 크기·역사·개발 정도 등이 나라마다 많이 다르다. 선진국에서 일어난 일들은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될 수 없으리라 본다. 이런 점에서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아시아를 재발견·재창조할 것인가.
또한 어떤 국가를 원하는지를 각자 점검해봐야 한다고 본다. 가령 일본은 '정상국가'가 되고자 하고 남북한은 '분단국가'를 벗어나고자 하고 대만은 '독립국가'가 되고자 한다. 어떻게 근대 국가를 평화국가로 변화시켜야할 것인가."
무샤코지 "아시아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특성을 얘기하고 싶다.
하나는 문화·문명적 특성인데 아시아가 주요 종교가 일어났고 서로 다른 문명이 흥기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팍스시니카(중국 질서), 팍스인디카(인도 질서), 이집트·바빌론·이란·이라크 주변 등 이슬람권 서아시아 문명. 식민주의의 희생자라는 점에서는 단일하지만, 문명·문화적 다양성에서 보면 다자이다.
정치경제·군대 측면에서 보면 아시아는 팔레스타인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안보불안의 호'이자 '재식민화의 호'이다. 최근 중국과 인도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반둥 이전의 협약으로 돌아오는 듯 하다. 문제는 두강대국이 꼭 상호의존관계로 가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인데, 다른 작은 나라들이 국가간 체제를 두어야 할 중요성이 거기에 있다. 'ASEAN+6'이 그런 체제의 예라 할 것이다."
이기호 "반기문 사무총장이 향후 유엔 개혁과제들을 추진해나가는 데 있어 그를 미국 입김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 한국시민사회가 어떻게 개입하면 될까."
무샤코지 "반 사무총장은 미국만이 아니라 안보리 상임국에 의해 다 받아들여졌다. 훌륭한 외교관이기에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세력을 다 고려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 총장의 한계이기도 하다. 기존 강대국의 역학관계의 단순 수용자를 넘어서야 한다.
그가 지금 당장 한국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사무총장이 한국인이라 한국의 영향을 받는다'고 의심할 것이다. 먼저 아프리카를 방문한 것은 그런 점에서 잘한 일이다.
그러나 한 1~2년 뒤에는 그도 한국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는 사실 한국정부를 대표해서 유엔에 갔다.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국내 정치경제적 의제에 집중돼있고 외교통상·국방·지구적 정치 차원에까지 개혁 의제를 확장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한국시민사회의 현저한 개혁성을 수용하고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시민사회운동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반 총장에게 그 개혁적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고 반 총장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외교관은 일반 대중보다도 다른 외교관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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