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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17 16:14최종 업데이트 06.08.17 16:26

<오마이뉴스 재팬>서 불붙은 야스쿠니 찬반 논란

"일본 근대화 '부(負)의 유산'" - "참배가 다 전쟁 긍정론 아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지난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데 대해 일본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뜨겁습니다. 오는 28일 창간을 앞두고 있는 <오마이뉴스 재팬> 준비블로그(www.ohmynews.co.jp/blog)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도리고에 슌타로 <오마이뉴스 재팬> 편집장이 16일 준비블로그에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글을 올렸고, 이어 시민기자들이 다양한 입장과 시각에서 반론과 재반론을 펴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온라인 등록접수를 시작한 <오마이뉴스 재팬>의 시민기자는 17일 오전 11시 30분 현재 726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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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일본측 시각의 일단을 엿보기 위해 여기에 도리고에 편집장의 글과 이를 반박하는 시민기자 기후네 슈사쿠씨의 기사를 함께 번역해 소개합니다.

한국 시민기자와 독자 여러분들께서 이 글들을 읽고 의견이 있으시면 기사나 댓글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설득력 있는 글은 번역해서 <오마이뉴스 재팬> 준비블로그에 소개할 계획입니다.

다음은 도리고에 편집장의 글.

[야스쿠니 참배 반대] "야스쿠니를 둘러싸고"

도리고에 슌타로 <오마이뉴스 재팬> 편집장
도리고에 슌타로 <오마이뉴스 재팬> 편집장 ⓒ ohmynews.co.jp
도리고에 슌타로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재팬)편집국 전체의 의견이라기 보다 어디까지나 저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우선 밝혀둡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공식적인 형태로 참배하는 것에 반대입니다.

참배 찬성론자들은 흔히 "중국과 한국이 간섭한다고 해서 일본 총리가 우왕좌왕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주장합니다. 야스쿠니에 가든, 가지 않든 어디까지나 일본 국내 문제다, 외국 정부로부터 이래라 저래라 간섭 받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고이즈미 총리도 15일 참배 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상당히 고무되어 있는 듯 평소와는 다르게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한국과 중국의 반발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고 있으니 중단하라는 의견은 어떤가"라며 다음과 같이 말하더군요.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고 있다. 이것이 불쾌하다고 내가 한, 중과 정상 회담을 중단한다고 하면 어느쪽을 비판할 것인가."

야스쿠니 참배 문제, 즉 전쟁 가해자와 피해자간 문제에서 예로 든 것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문제라니…. 이건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원래 이런 식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에 아주 능합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외국의 압력에 의해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자국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한국과 중국에게 이런 주장을 하려면 양국에게도 일본이 전쟁 중에 저지른 일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선 한·중 양국과의 문제에서는 서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 여기서부터 얽힌 실 타래를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쪽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내셔널리즘만 팽배해져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중국과 한국의 반일 내셔널리즘 고조는 양국에게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최근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는 반중·반한 감정에도 동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내셔널리즘 고조, 좋은 일 아니다

내셔널리즘이라고 하면 듣기에는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전쟁 시 국민의 감정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지옥으로 이끄는 최악의 분위기입니다.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분쟁과 50년 이상 계속되어 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또 양국에 만연한 증오의 감정, 이런 것들에 지배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의 주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저는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합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부(負)의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된 바가 없지만,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사를 명확히 정리한 후에 야스쿠니 문제도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19세기 중반, 도쿠가와 막부의 막번 체제에서 벗어나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입헌군주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무렵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미국 등 소위 서구 열강들은 아시아 국가를 차례로 침략하여 식민지화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도 그 타깃 중 하나였죠.

메이지 유신 직전,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영국, 러시아 등과 전쟁을 치렀고,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이들 군대가 일본에 상륙하기도 했습니다. 즉 일본도 홍콩과 마카오가 9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식민지 통치를 받은 것 같이, 야마구치현이나 가고시마현의 일부가 영국의 지배를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일본은 불평등 조약을 맺기는 했지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일본은 청일·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는 과정에서 선진국에게 침략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서구 열강과 같이 타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부터 1945년 원폭투하에 이르는 비극의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일본은 중국에게 '21개조 요구'를 강요하고 결국 만주국이라는 사실상의 일본 식민지를 만들었습니다. 이 만주국 건국이 그 후 서구 열강, 특히 미국과 대립하는 도화선이 됩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에게는 서구 열강과 같이 스스로 식민지 지배국이 되는 길과, 국내의 민주화를 꾀하고 국내 시장을 확대하여 타국과 지배·피지배 관계가 되지 않는 길, 이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좀 더 쉬운 전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그리고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은 전쟁을 하면서 성장해 온 셈입니다. 전쟁을 하면 당연히 전사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뒷편에는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들이 있죠.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전장에 끌려나가(물론 명목상으로는 국가를 위해 싸운다는 미명하에) 전사한 사람들을 국가가 모른척해서는 안 됩니다. 슬픔을 그래도 방치하면 사람들은 결국 전쟁에 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슬픔은 어떤 형태로든 위로하지 않으면 다음 전쟁에 국민을 동원하기 어려워집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입니다.

국민을 전쟁에 내모는 도구가된 '야스쿠니'

야스쿠니 신사는 원래 도쿠가와 막부의 반대파인 왕정복고 세력이 막부를 몰아내기 위해 치른 '보신(戊辰)전쟁'의 전사자들을 위령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쿄초혼사'(메이지 2년 창건)를 타국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위한 신사로 '승격'시킨 것입니다. 1945년까지는 육군과 해군성이 공동으로 관할하는 국가 신도의 근간을 이루는 신사였습니다. 전사자의 혼을 위로한다는 대의 명분, 이것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의 최대 존재 의의입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가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기리는 신사이므로 참배한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문제'라는 그의 주장도 바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분명 타국과 전쟁을 할 때는 '국가를 위해'라는 문구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전쟁의 의미를 뿌리까지 들여다보면, 일본인은 물론 한국과 중국인들에게도 일본의 침략행위는 결코 긍정될 수 없습니다. 물론 '긍정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역사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는 그런 일본의 전쟁행위를 긍정할 수 없습니다.

중국인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기 때문에 참배는 침략 전쟁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지 않더라도 근대사 속에서 국민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도구가 된 야스쿠니 신사에 현대를 사는 일본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다음은 <오마이뉴스 재팬> 시민기자 기후네 슈사쿠씨의 기사.

[야스쿠니 참배 찬성] "무더운 한 여름, 61년 전 여름을 생각하며"

15일 야스쿠니는 참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가운데 극우단체들은 신사주변을 완전히 장악한 채 각종 연설 및 이벤트를 벌였다.
15일 야스쿠니는 참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가운데 극우단체들은 신사주변을 완전히 장악한 채 각종 연설 및 이벤트를 벌였다. ⓒ 김기
아침부터 오던 비가 정오가 지나 그쳤다. 8월 15일 오후 2시. 햇볕은 뜨겁고 무덥다.

도쿄 도심 구단시타 역에서 내려 야스쿠니 신사 앞 언덕길을 올랐다. 이미 참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정체 불명의 전단지를 돌리는 단체가 있었다. 도쿄 이과대학의 교사를 오른편으로, 출입구에 해당하는 첫번째 도리이(鳥居) 앞에 있는 사거리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인파로 가득했다.

도리이 바로 앞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비방할 목적의 사람은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의 주의 문구가 있다. 한 쪽에서는 중국과 한국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현수막을 걸어놓고 있었다.

경내는 도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참배로(参道)가 넓어 그늘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땀이 뚝뚝 떨어진다.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을 지나 '포스트 준짱' 찐빵을 팔고 있는 매점 옆을 지나자 차도 건너편에 두 번째 도리이가 보인다. 배전(拜殿)은 아직 멀기만 한데 여기서부터 인파의 흐름이 멈추고 정체가 시작되었다. 한 발 걷고 두 발을 멈춰서야 했다.

마치 참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새해 첫 참배 같다. 그것도 이 한여름에 말이다. 겨울은 추우니까 인파의 열기가 오히려 고맙지만 여름에는 정말 참기 힘들다. 분명 61년 전에도 이렇게 더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20~30대의 젊은이들 모습도 많이 보였다. 이것도 하나의 '고이즈미 효과'일까. 오늘 아침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한 일은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총리의 참배를 환영하는 커다란 현수막을 펼쳐 놓은 사람도 보인다.

서양인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였다. 일장기를 흔들며 기세를 높이고 있는 군복 차림의 집단에게 카메라를 들이 대는 것은 아마 관광 기분에서 일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국인 여행객들의 모습이었다. 손에 한글로 된 지도를 들고 있어서 한국인인지 알았지만, 식수대 옆의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참배를 둘러싸고 보도가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00% 반대일 것이다. 더욱이 저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이 곳을 찾아왔을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야스쿠니 참배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또는 우익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 시민들이 진지하게 합장하는 모습을 보고 복잡한 심경이 됐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고자 한 그들의 생각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내가 두번째로 야스쿠니를 찾은 이유

내가 야스쿠니를 방문한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다. 이런 저런 의견을 말하기 전에 내 눈으로 직접 야스쿠니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30분 정도 기다렸나? 드디어 배전 앞에 설 수 있었다.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던졌다.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를 친 나는 일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기도하고 다시 한 번 절을 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매미가 맴맴 울어댔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반복이고 그 많은 희생 위에 현재가 있다. 내가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오로지 내가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야스쿠니 참배에 반대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국가와 민족이 다르면 의견도 다르고 역사에 대한 평가도 다르기 마련이다.

야스쿠니 참배를 찬성한다고 하면 어딘지 전쟁 긍정론자로 '낙인'찍히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옳지 않다. 혐중(嫌中)·혐한(嫌韓)을 떠들어 대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일본인은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한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참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의 의견을 알지 못한 채 비판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 대립을 선동하는 일부 매스컴도 있다. 대립을 이용하고자 하는 정치가도 있다.

역사 인식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여 우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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