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3일 레바논의 베이루트 국제공항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이 있은 후 연료 탱크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레바논 전쟁 긴급 휴전 결의안 1701호가 오랜 진통 끝에 유엔 안보리를 통과하면서 영구적 평화정착을 향한 힘든 첫발을 내딛었다. 결의안은 선행 조치로써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양측에 즉각적인 적대행위의 완전한 종식을 요구하고, 지속가능한 휴전과 영구적 평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후속조치를 이행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의안 통과 후 이행 계획에 대한 가시적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어 일단은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급브레이크는 걸린 셈이다. 레바논 내각은 12일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수용했고,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정부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뒤이어 이스라엘도 각료회의를 통해 결의안을 승인하면서 휴전 분위기는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결의안 통과 후 꼭 이틀만인 14일 오전 8시(현지 시간) 휴전이 발효되면서 표면적으로는 휴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의안 곳곳에 애매모호한 규정들이 많아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이스라엘은 자위권 차원에서의 제한적 군사작전을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당분간 살얼음판 휴전이 계속되면서 정세는 언제든지 불안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라엘에 방어작전 권리 부여
결의안은 적대행위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양측에 군사행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얼핏 보면 양측에 똑같이 무력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문 문구를 보면 심각한 불공정성이 존재한다. 헤즈볼라에게는 모든 공격행위(attacks) 중단을, 이스라엘에게는 공격적(offensive) 군사행동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 즉 헤즈볼라는 결의안대로라면 모든 무기를 내려놓아야 하지만, 이스라엘은 자위권 차원에서의 방어(defensive) 작전은 언제든지 가능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줄곧 헤즈볼라 소탕작전이 자위권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해왔고, 올메르트 총리도 휴전을 지시하면서 "자위권은 가능하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처럼 안보리 결의안은 이스라엘의 주장에 공식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안보리 결의안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유엔평화유지군 배치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유엔 중동특사 알바로 데 소토가 예상하는 10일에서부터 마크 말록 브라운 유엔 사무차장이 전망하는 한 달까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 전망이 현실적이든 분명한 건 이스라엘은 최소 10일 정도는 결의안의 허술한 구멍을 파고들며 맘껏 군사 작전을 감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보리 결의가 이를 인정했다"고 말하면서.
결의안은 공격과 방어 작전의 정의를 명확하게 규정해놓지 않아 향후 뜨거운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이스라엘 군사작전의 성격을 판가름할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영어권의 대표적 진보언론 < Znet >은 "결의안이 전쟁 발발의 모든 책임을 헤즈볼라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것은 전면전을 자행한 이스라엘의 의도를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목적이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영구히 추방시키기 위한 고도의 지정학적 계산 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분석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 레바논 외무장관 타렉 미트리는 "결의안이 이스라엘에게 작전을 계속 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레바논 국경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지상군. ⓒ 연합뉴스/AP
전선 확대 가능성 크다
휴전 발효가 임박해있던 일요일(13일)에도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남부와 베카 계곡 등에 대한 공습을 계속했다. 지난 12일에는 국경에서 30km 떨어진 리타니강까지 진격을 계속하며 헤즈볼라와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스라엘군의 작전은 유엔평화유지군이 배치되기 전에 가능한 많은 지역을 장악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육군 참모총장 댄 할루츠는 "강력한 억제력을 가진 평화유지군이 유엔잠정주둔군(UNIFIL)에 합류할 때까지 여기 머물 것이다. 한 주나 그 이상의 시간을 헤즈볼라 로켓과 거점을 공격하는 데 쓸 것이다"라고 말했다. 평화유지군이 배치될 때까지 자위권을 핑계 삼아 헤즈볼라 잔당 소탕을 위한 군사작전을 계속하겠다는 속내다.
하산 나스랄라는 12일 <알-마나르> TV에 출연해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이 적대행위를 중지하면 곧장 이스라엘 북부에 대한 로켓 공격을 멈출 것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결의안의 주된 문제는 완벽한 휴전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라며 이스라엘 군이 모두 철수할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결의안은 국경선(블루라인)과 리타니강 사이에 완충지대를 설치해 레바논 정부군과 평화유지군을 제외한 모든 개인과 단체의 무장해제를 촉구하고 있다. 완충지대 안에 무장인력이나 자산, 무기 등을 둘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헤즈볼라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다분히 헤즈볼라의 남부지역 철수와 무장해제를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나스랄라의 말대로라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제한적 군사작전을 유지하는 한 무장해제는 고사하고 남부 지역에서 철수할 의지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들은 자국병력(1만5000명) 배치 계획을 다룰 레바논 내각 회의가 연기된 원인에 대해 헤즈볼라 무장해제에 대한 내홍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위협을 구실로 군사작전을 계속할 것으로 보이고,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 반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도 높은 무력을 주고받으며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30일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은 레바논 카나 마을의 모습. 적십자대원과 시민 구조대가 먼지에 싸인 어린아이 시신을 무너진 집의 파편 속에서 꺼내 옮기고 있다. 레바논 적십자 관계자는 "이 마을에서 56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이 중에 34명은 어린이"라고 말했다. ⓒ AP 연합뉴스
평화유지군의 임무는?
결의안에 따라 일단 휴전이 이뤄지면 레바논 정부군과 유엔평화유지군이 공동 파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UPI통신은 "결의안 이행의 첫 번째 장애물은 평화유지군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분석하고 있다.
결의안은 기존의 유엔잠정주둔군(UNIFIL) 병력을 최대 1만 5천명까지 증원해 레바논군 지원과 구호 및 난민지원, 개인이나 단체의 무장해제 공고화를 위한 레바논 군 지원 등의 임무를 맡길 계획이지만, 군의 성격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없다. 즉, 현재 주둔하고 있는 잠정주둔군처럼 단순히 휴전을 모니터하고 안보리에 보고하는 감시군(Observation Force)의 역할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결의안 이행을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저지군(Deterrent Force)의 역할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1978년부터 남부 레바논에 주둔하기 시작한 잠정주둔군은 이후 헤즈볼라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활동을 억제하고 사태를 예방하는 데 실패하며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무기력함을 그대로 드러내왔다. 주둔군은 이번 레바논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의 남부 지역 공습으로 연료를 비롯한 생필품 부족에 허덕이며 난민 지원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자위권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지>는 "레바논에 유엔군을 불러오는 것은 재앙으로 가는 처방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때문에 휴전을 틈타 헤즈볼라가 원기를 회복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다국적군이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 위협을 제거하고, 레바논 국경을 통제할 수 있게끔 유엔의 강력한 위임과 실전 전투 경험 능력을 갖춘 평화유지군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해 다국적군에 가담하려는 국가들도 방어권과 공격권을 동시에 보장하는 유엔헌장 7장의 적용을 받는 평화유지군을 강력히 원하며 안전보장을 파병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유엔의 평화유지활동(PKO)이 '안보리의 군사적 강제조치'를 명시한 7장 42조의 적용을 받은 선례가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한 레바논 가족이 1일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포격을 피해 아이타론 마을에서 벤트 즈바일로 피난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국제전으로 비화될 수도
레바논 정부도 7장의 적용을 받는 유엔군 파병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때문에 다국적군 성격과 관련해 유엔결의안 수정안이 마지막 난항을 겪은 바 있다. 특히 헤즈볼라 측은 강력한 억지력을 지닌 외국군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을 우려해 평화유지군 배치 자체에 반대해왔다. PKO 전문가 빌 더치는 "헤즈볼라가 싸움을 계속하기로 결심한다면 같은 전쟁에 다른 유니폼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헤즈볼라의 목표물이 자칫 유엔군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결의안은 레바논 군과 평화유지군 배치가 시작되면서 이스라엘 군의 철수도 병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이스라엘 군의 즉각적인 전면 철수를 명백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은 평화유지군이 파병되자마자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하겠다고 단언하고 있지만 결의안을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들이 헤즈볼라에 대한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은 자국병력을 빼지 않고 헤즈볼라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설령 전면 철수한다 해도 남부지역에 대한 레바논군과 평화유지군이 통제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1982년 레바논 재침공 때처럼.
이처럼 평화유지군 임무에 대한 명확한 정치적 합의가 수반되지 못한다면 전선 자체가 복잡해질 수 있다. 헤즈볼라, 레바논군, 유엔평화유지군, 이스라엘이 서로 뒤엉켜 국제전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