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가 제주를 방문했다. 제주 오리엔탈 호텔에서 열린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선후배 대면식 식전행사에서 '한국 의료계의 현실과 의학전문기자’에 대한 강연을 하기 위해서다.
강연에 앞서 호텔에서 만난 그는 키 차이가 많이 나는 초등학교 4학년생 큰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신문 지면에서는 의료계에 거침없이 '메스'를 가하는 그였지만, 아들 앞에서는 대한민국 여느 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이 끊임없이 자식을 챙기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신문에서의 딱딱한 이미지와는 달리 농담을 건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터뷰에 응한 그를 보면서 강한 펜의 힘은 결국 내적인 부드러움에서 나온다는 새삼스런 진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모든 기자들이 그렇겠지만 자기가 쓴 기사로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사회가 변화할 때 보람을 느낀다"며 "의학전문기자는 '의사'가 아닌 '기자'"라고 말했다.
또 그는 자사의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보도와 관련해서는 "비판을 달게 받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과 자성의 시간을 가졌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과학을 과학 그 자체로 봤어야 했는데 국가주의와 맞물려 (한 개인을) 영웅시하거나 (한 사건에 대해) 지나친 장밋빛 희망들로 접근했다"며 "인물중심의 과학저널리즘을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속 강연 일정상 인터뷰는 짧게 진행되었지만, 진지한 태도로 답변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왜 그가 우리 사회에서 힘있는 언론인이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해답이 나오는 것 같았다.
"의료분야, 오보내면 국민 건강에 악영향... 전문기자 필요"
- 의학전문기자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90년대 이후 경제적 안정을 취하면서 건강이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하였다. 또한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고령 인구들이 건강 정보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TV나 신문이 건강정보를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의료나 건강정보가 전문적인 내용이고,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다. 오도될 경우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언론에서 알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이왕이면 의사들이 기자로서 활동한다면 전문성을 유지하는데 더 좋지 않겠느냐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후로 의사가 아니더라도 기자 중에 건강만 전문적으로 수년씩 담당하게 되었다. 주로 이들을 의학전문기자라고 부른다. 특히 이들은 건강정보와 의료 관련된 사회적 이슈, 의료제도 의료 환경에 관한 기사를 전문적으로 쓴다."
- 한쪽 분야로 치우쳐 글을 쓰다보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다룰 수 없다는 단점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하지만 그 분야만 다루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한데, 신문이란 것이 예전의 수박 겉핥기식의 기사에서 점차 전문화 된 부분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런 모습은 의학뿐만 아니라 정치 전문기자, 중국 전문기자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을 키우는 추세이다. 다른 분야를 안 쓰는 것이 아니라 내 분야의 글만 쓰더라도 쓸 내용이 많은 것이다."
- <조선일보>만 하더라도 중국 전문기자, 북한 전문기자 등이 있다. 하지만 타 언론사에서는 이러한 전문 기자들은 잘 보이지 않고, 대신 의학전문기자들은 여러 언론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독 의학전문기자가 많이 필요하게 된 이유가 뭔가?
"예를 들어보자. 중국 전문기자는 중국에 관한 글로만 거의 일상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많은 시간을 중국 관련 소식으로만 채울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유독 의료는 매주 고정된 지면이 있고, 그것을 채울만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학전문기자는 여러 언론사에서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의료라는 특수성, 즉 정보 접근이 어렵다는 문제점 때문에 의료 분야에서는 역설적으로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내 기사로 사회가 변화할 때 가장 보람"
- 의사들도 신문에 칼럼을 쓰기도 하고 의료 정보에 관한 글을 쓴다. 의학전문기자가 의사들이 쓰는 글과 차별되는 면은 있는가?
"의학전문기자는 '기자'로서 사회 현상을 보고 의료 정보를 다룬다. 한편 의사들은 '의사'의 관점으로 글을 기고한다. 의학전문기자는 '의사'가 아닌 '기자'로서의 삶을 산다고 보면 된다. 단지 의학전문기자는 '의사'라는 무기를 옆에 두고 있을 뿐이다. 기자로 사는 '의사'가 아니고, 의사 출신 '기자'라고 보면 될 것이다."
- 의학전문기자가 되려고 한다면 어떤 적성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아무래도 문과적 기질이 있어야 한다. 기자 생활을 하다 보니 기자라는 것도 천부적 재질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스토리텔링’이 떠올라야 한다. 얘기를 딱 들었을 때 핵심을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사라는 직업이 수직적 깊이를 추구한다면, 기자라는 직업은 수평적 넓이로 승부한다고 보면 된다."
- 현재까지 의학 전문기자 경력이 8년 정도 되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
"모든 기자들이 그렇겠지만 자기가 쓴 기사로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사회가 변화할 때 보람을 느낀다. 예를 들면 내 기사 중 싱가포르에 다녀와서 쓴 르포 기사가 의료계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 기사가 나간 이후에 의료를 산업적 가치로 봐야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여러 사람들이 싱가포르를 견학 다녀오고 급기야 정부에서 의료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제도적 변화까지 이끌어내게 되었다. 기사하나가 사회 제도까지 바꾸게 되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신문 기자와 TV기자, 큰 차이 있어"
- 방송이나 케이블 TV 출연 경력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자로서의 삶과 TV에 나가 의료 정보를 전달할 때랑 많이 다른가?
"정말 많이 다르다. 신문은 '콜드 미디어'이고, 방송은 '핫 미디어'이다. 신문은 비교적 분석적으로 다루어야 하고, 방송은 비교적 감성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양쪽을 경험해 봤을 때 나 자신은 '콜드 미디어'에 어울린다고 본다. 만약 자신이 감성적으로 접근할 줄 알고 '액팅 아웃(연기)'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방송매체가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 의학전문기자는 신문에도 있지만, 방송에도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 나오는 의학전문기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방송의 장점은 순간적인 파괴력을 낼 수 있고, 이미지로 승부한다. 그러므로 영상 구성력이 뛰어나고 아주 짧은 시간에 함축적으로 파괴력 있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면 방송기자에 어울릴 것이다. 반면 신문기자는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면서 취재 뒷이야기 들을 다루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성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방송 기자들도 이런 부분을 부러워하곤 한다. 방송이 신문보다 순간적인 영향력이 크지만, 작은 재미를 느껴가면서 직업생활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 의학전문기자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는가?
"일단 (의대를) 졸업한 이후 전문의(레지던트) 자격증까지는 따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 이유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전문의가 아닌 일반 의사는 전문가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실적으로 전문의 자격증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모든 인생의 선택이 옳을 수 없다. 만약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느낄 때, 퇴로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전문의 자격증이 없다면 인턴, 레지던트 등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초조할 수 있다. 전문의 자격증이 있다면 퇴로가 있기 때문에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기자 생활에 더 집중할 수 있다."
- 의학전문기자를 한 여러 기자들이 얼마 안 돼 그만 두는 모습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역시 전문의를 따지 않은 채로 인턴을 마치고, 또는 인턴도 하지 않고 그냥 기자를 지원했다가 이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다시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또한 기자라는 직업에 흠뻑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황우석 보도' 비판 달게 받아... 인물중심적 과학저널리즘 탈피해야"
- 좀 민감한 질문을 하겠다. 전문성을 띤다는 의학전문기자나 과학 분야의 전문기자들이 지난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사건 등에 대해 과연 전문성을 발휘했느냐 하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달게 받고 있다. (사건 이후)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과 자성의 시간을 가졌다. 아직까지 한국 언론이 가지는 문제들에 나도 함께 휩쓸려 갔다는 생각을 한다. 과학이라는 것을 과학 그 자체로 봤어야 했는데, 국가주의와 맞물려 (한 개인을)영웅시하거나 (한 사건에 대해) 지나친 장밋빛 희망들로 접근했다.
우리 신문뿐만 아니고 많은 언론들이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 좀 더 차분하게 과학을 과학으로서 접근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사회가 개인이나 인물 중심적인 과학저널리즘을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적으로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언론계 전체가 이런 식의 보도 형태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큰 배움의 계기로 받아들인다."
"의사 사회, 언론과 커뮤니케이션 더 늘려야..."
- 현재 사회 분위기가 의사들을 소위 '공공의 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언론에서 의사들을 이런 분위기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현장에서 볼 때 어떤 문제점들이 있다고 보는가?
"(의사 사회와 언론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물론 언론 쪽에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상당 부분 오해하는 면도 있다. 한편 의사 사회에서도 자기 울타리 내에서의 시각에 빠져있는 면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보기에는 (특정 사안이) 말도 안 되는데 의사 사회에서는 파업하자고 하는 경우도 있다. 중립적 입장에서 볼 때 파업을 하게 되면 더욱 역효과가 날 것 같은 부분들도 의사들이 그들만의 울타리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의사들은 밖으로의 커뮤니케이션을 더 늘려서 한국 사회에서 그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좀 더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또한 전문가집단이 갖는 기본적인 직업인의 자세나 윤리의식 등을 학교 교육 등을 통해 더욱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결국 미디어라는 것은 보이는 현상을 가공해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이런 오해나 불신이 생겼다는 것은 의료계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들이 왜곡됐다는 것이므로 이런 부분도 의료계가 자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는... | | | | ▲ 1963년 대전 출생, 상문고 졸업
▲ 고려대 의학과
▲ 영상의학과 전문의
▲ 동대학원 의학박사
▲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사
▲ 고려대병원 임상강사
▲ 현 조선일보 사회부 의학전문기자(1999년~) | | | | |
- 언론 쪽에서는 어떤가?
"현장에서 볼 때에는 의료계의 긍정적 기사와 비판적 기사가 1 대1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의사들에 대한 우호적 기사들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비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이런 비판도 의사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인정을 하기 때문에 더 잘해주었으면 하는 채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들이 의사들에게 좀 더 높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요구한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