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우도 앞바다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홍산호 | | ⓒ 이종찬 | | 그 용궁에도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고 있을까
수평선을 입에 물고 끝없이 출렁이는 저 푸르른 바다 속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누가 어느 때에 지은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조선시대에 한글로 지었다는 소설 <별주부전>(鼈主簿傳)에 나오는 그 토끼처럼 자라의 등을 타고 한참 바다 속을 내려가다보면 용왕이 살고 있다는 그 용궁을 만날 수 있을까.
그 용궁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는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그 바다 속 길목 곳곳에도 한라산처럼 높은 산봉우리가 있고, 안개가 떠도는 깊은 계곡이 있고, 갖가지 풀꽃들이 어우러진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을까. 그 산과 계곡, 들판에서도 뭍처럼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고, 바람이 불고 눈이나 비가 내릴까.
그 용궁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대로 뒤바뀌고 있을까. 그리하여 봄이면 싸리대문 옆에 제 홀로 서서 수줍게 피어나던 그 제비꽃 한 송이 보랏빛 웃음 떨구고 있을까. 여름이면 도랑가 바위 위에 올라와 땡볕을 쪼이던 그 자라 오늘도 목을 쭈욱 빼고 있을까. 그 용궁에도 가을이면 억새가 은빛으로 물결치고, 겨울이면 성에꽃 곱게 피어나고 있을까.
| | ▲ 우도로 가는 유람선 | | ⓒ 이종찬 | |
| | ▲ 그날 우도 앞바다는 검푸렀다 | | ⓒ 이종찬 | | 우도로 가는 뱃길에는 한라산이 물결처럼 따라붙는다
2006년 1월 1일(일) 오후 4시. 섬 속의 섬 우도 앞바다 속을 탐험하는 잠수함을 타기 위해 성산포항에서 배를 타고 우도(제주도 북제주군 우도면)로 간다. 저만치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른 한라산이 희부연 구름을 허리띠 삼아 우뚝 솟아나 있다. 우도로 가는 배를 타고 싯푸른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마치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보는 듯하다.
작은 산같은 파도가 겹겹이 흔들리는 싯푸른 바다 위에 하얀 물길을 만들며 우도로 우도로 나아가는 배. 아까부터 갈매기 두어 마리 배를 따라 열심히 날아오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저만치 멀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앞으로 앞으로 달려도 자꾸만 한라산이 물결처럼 따라붙는다. 너희들이 제 아무리 날뛰어도 내 손바닥 안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30분쯤 달렸을까. 우도가 곧바로 손에 닿을 듯한 곳에서 갑자기 배가 멈춘다. 그리고 "모두 내리십시오. 이제 곧 잠수함으로 갈아타야 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요란스럽게 흘러나온다. 파도의 높낮이에 따라 따라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는 뱃머리로 나오자 저만치 잠수함 한 척이 마치 토끼를 등에 태우고 용궁으로 가는 자라처럼 두둥실 떠 있다.
| | ▲ 바다 속도 하늘 속처럼 연푸르다 | | ⓒ 이종찬 | |
| | ▲ 잠수함에서 바다 속을 살펴보고 있는 작은 딸 빛나 | | ⓒ 이종찬 | | 바다 속에 또 하나의 세상이 숨겨져 있다
우도를 품고 있는 앞바다는 검푸르다. 우도 앞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잠수함에 오르며 우도를 바라본다. 하지만 우도는 말이 없다. 자신의 속내 곳곳을 샅샅히 뒤져볼 잠수함이 자신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떠돌고 있어도 우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아니, 어서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와 내 마음이 품고 있는 또다른 세상 하나 맘껏 누려보라는 투다.
이윽고 사람들을 빼곡히 태운 잠수함이 싯푸른 우도 앞바다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잠수함 유리창에 비치는 우도 앞바다 속은 바다 속에 또 하나의 하늘이 있는 것처럼 연푸르기만 하다. 가끔 물방울이 뽀글뽀글 피어오르지만 않는다면 이곳이 바다 속인지 하늘 속인지 쉬이 알 수가 없다.
잠수함이 바다 속으로 조금 더 내려가자 가지각색의 물고기떼들이 꼬리를 흔들며 잠수함 유리창을 매끄럽게 스치고 지나간다. 제주도 특산어종인 자리돔도 몇 마리 있다. 파란 줄무늬가 그어진 범돔과 회색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또렷한 돌돔도 섞여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물고기는 바다공작새라 불리는 화려한 모습의 솔베감팽이다.
| | ▲ 물고기떼들이 마치 바다 속 선녀들처럼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다 | | ⓒ 이종찬 | |
| | ▲ 그 바다 속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 | ⓒ 이종찬 | | 우도 앞바다 속엔 용궁이 숨겨져 있다
얼른 디카를 꺼내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플래시를 켜고 찍어보고 끄고 찍어보아도 흐릿하긴 마찬가지다. 잠수부가 먹이를 뿌리며 고기떼를 수없이 몰고 오는 모습은 정말 멋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그저 눈으로 맘껏 즐기고 마음에 꼭꼭 담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만 같다.
수심 30m쯤에 이르자 '오아시스의 보물섬'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산호모래밭과 작은 섬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사이로 붉은 빛깔이 아름다운 홍산호와 사슴뿔처럼 생긴 사슴뿔산호, 하얀 소나무 모습을 띤 백송산호, 에메랄드 빛깔이 찬란한 에메랄드 산호 등이 보석보다 더 곱고 아름다운 빛깔을 수놓고 있다.
그 아름다운 산호밭과 해초 사이로 가지각색의 물고기떼들이 매끄럽게 헤엄치고 있다. 그래. 어릴 때 동화책 속에서 보았던 그 용궁, 가끔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운 용궁이 바로 이곳이 아니겠는가. 저 보석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산호는 용궁에 핀 아름다운 꽃이요, 그 산호 사이를 매끄럽게 헤엄치는 물고기떼들은 바다 속에 사는 선녀들이 아닌가.
| | ▲ 바다 속 곳곳에 피어난 아름다운 산호꽃 | | ⓒ 이종찬 | |
| | ▲ 용궁에 한번 가 보셨나요 | | ⓒ 이종찬 | | 경술년 새해 첫 날, 나그네는 잠수함을 타고 우도 앞바다 속에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 그 해저낙원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는 아름다운 선녀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지금도 우도 앞바다 속에는 전설 속의 꿈이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지금도 우도 앞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새로운 세상, 아름다운 꿈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올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1.서울-제주-성산포 방향-김녕리-세화리-종달리-성산포항-도항선(30분 간격, 2500원)-우도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성산포항으로 가는 시외버스(20분 간격)를 타고 성산항에 내려 우도로 가는 배를 타도 된다.(잠수함 어른 49500원, 유람선 어른 15000원)
※이 기사는 'SBS U포터뉴스'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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