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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영하 20도로 확 떨어져버렸으면 좋겠다. 한나라당, 저러다 개혁한다고 나오는 거 아니냐."

국회를 등지고 장외투쟁에 나선 한나라당을 향해 '거리 동지'가 보수정당의 '전향'을 우려하며 던진 한 마디다.

국회 앞에는 비정규직 통과 반대, 이라크파병 연장안 반대 등을 외치는 농성단이 천막 시위 중이다. 10여동의 천막을 세운 농성단은 전기발전기와 석유 난로로 엄동설한을 버티고 있다.

국회 앞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상반된 장면이 연출되는 셈이다. 따뜻한 국회 안은 한나라당의 국회 불참으로 냉기가 도는 반면, 영하의 거리에서는 농성단이 좁은 천막 안에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추위를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따뜻하지만 냉랭한 국회, 춥지만 뜨거운 천막

▲ 노동자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천막농성장
ⓒ 단식농성단
29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천막에는 양규헌 대표와 함께 5명의 농성자들이 전기담요, 돗자리, 침낭, 이불 등도 모자라 석유난로를 켠 채 추위에 대항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앉아 있었다. 이들은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비정규직 법안에 반대하며 지난달 22일부터 거리시위 중이다.

"춥지 않냐"는 뻔한 질문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충남본부장 출신인 이경수씨는 "그나마 올겨울은 따뜻하게 보내는 편"이라고 답했다. 이씨는 거리로 나오기 전에는 머리맡에 둔 물이 얼 정도의 '냉골'에 살다가 올해는 그나마 거리시위 덕에 난로와 동료들의 온기로 겨울을 난다고 한다.

이라크 파병반대 단식농성단 천막으로 들어가는 길은 장애물을 뚫고 달리는 게임을 연상케 했다. 추위를 막기 위해 초록색 천막 위에 비닐로 두 겹을 더 둘러 냉기만큼이나 사람도 들어가기 힘들었다.

정문식(서울대 3년) 단장과 10여명의 농성단은 28일 밤 손전등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둘러 앉아있었다. 이들의 천막 한쪽벽에 단식 일자를 표시한 달력이 걸려 있다. 지난 7일 단식을 시작해 22일째를 맞았지만 여의도 농성단에서 평균연령이 가장 낮은 때문인지 목소리가 씩씩했다.

정 단장은 "국회에서 본회의가 아예 열리지 않아 부결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은 상임위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 법안과는 달리 당장 30일 본회의 안건으로 올라간 상태로 '무사 통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 '이라크 파병 재연장 동의안 부결 및 자이툰 철군 촉구 단식농성단'과 서울대 학생 50여명은 26일 오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이라크파병 재연장안 부결을 촉구했다.
"국회, 정상화되어야하지만 열리면 '개악'인데"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 천막 농성단은 국회 파행이 원망의 대상만은 아니다. 지난해 농성단은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며 국회 정상화에 힘을 실어줬지만, 올해 비정규직 법안과 이라크 파병 등의 국회 통과에 반대하는 이들은 "차라리 열리지 않는 게 낫다"고 입을 모았다.

전재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인 비정규직 법안 그대로 통과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법안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전 위원장은 '집 나간'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사용자 입장을 대변하고 있어 비정규직 법안 논의에 참여하지않는 것이 도움"이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지만, 만약 정상 운영된다고 해도 '개악'될 것이 뻔해서 두 가지 극단적 감정이 교차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밤 국회 앞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20여명이 "시범사업으로 실시되고 있는 활동보조서비스 제도를 정착시켜 달라"며 자립생활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의 국회행을 막기 위해 경찰들이 이들과 마주보고 섰다.

작년 10월에야 정부안으로 발의된 비정규직 법안은 98년 IMF 이후 논의가 시작돼 7년여만에 빛을 봤지만 아직도 본회의 통과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제정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언제쯤 법안으로 만들어질 지 의문이다.

정치권이 최고의 목표라고 주장하는 '민생 살리기'를 위해 국회가 열리는 것이 나은지, 닫히는 것이 나은지 씁쓸한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연말 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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