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하니 황우석 교수팀 수십명의 연구원들이 전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쳤을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 PD수첩 >이라는 프로그램의 역사를 익히 알기에 '만에 하나…'하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 상식적으로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취재과정의 비윤리성이 드러나게 되었고, MBC는 대국민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비윤리적 취재방식이라는 문제가, 진위 논란에 대한 결론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 PD수첩 >측이 했다는 DNA 검증의 과학적 신뢰성에 중대한 하자들이 드러난 데 이어 협박식의 취재방식까지 확인된 이상, < PD수첩 >이 제기한 조작 의혹은 기초적인 입증 근거조차 확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진위 논란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은 과학계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그대신 MBC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불어닥치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 PD수첩 >을 넘어 <뉴스데스크>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제기했으니, MBC 전체가 책임의 회오리 속에 빠져들게 될 상황이다.
왜 황 교수 논란은 '보수 대 진보'의 싸움이 됐나
MBC의 책임에 대해서는 당장 여론이 들끓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과정에서 MBC 이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상당수 진보론자들이 보여준 반응이었다.
황 교수 논문의 조작의혹 논란이 정점을 향하고 있을 무렵, 우리 사회의 상당수 진보론자들은 < PD수첩 >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나섰고 황 교수 논문의 조작의혹 규명을 사실상 촉구하고 나섰다.
한결같이 말했다. "언론의 사명은 의혹이 있으면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누가 감히 그 말에 이의를 달 수 있을까.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 '진실규명'은 황 교수팀에게 논문조작이라는 '범죄 혐의'를 두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결코 예사로운 내용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진보론자들은 과감했다. 진보적인 성향을 띤 인터넷언론, 종이신문, 언론개혁운동단체, 그리고 내로라하는 진보적 논객들도 < PD수첩 >을 옹호하는 대열에 가세했다. 다른 매체나 단체들의 이름을 굳이 여기서 확인할 필요는 없겠지만, <오마이뉴스>의 경우도 그같은 경향을 보여온 것으로 네티즌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급기야 < PD수첩 >이 제기한 진위논란은 조·중·동이라는 주류언론과 진보적인 비주류 언론간의 대결이라는 해석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황 교수 신화를 만들어온 조·중·동이 황 교수 지키기에 나선 것이고, '일그러진 애국주의'도 그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황 교수 논문의 진위논란이 마치 '보수 대 진보'의 구도처럼 번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구도였다. 과학적 진위를 둘러싼 과학적 논란이 어떻게 보수-진보의 정치적 구도로 전개되었던 것일까.
난자 문제에 따른 생명윤리 논란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진보론자들이 < PD수첩 > 옹호에 나서는 것이 이해될 만도 했다. 그러나 이미 논란은 생명윤리 문제를 벗어나 논문의 진위 여부를 다투는 단계로 가버리지 않았던가.
생명윤리 논란과는 달리 진위 논란은 가치나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과학적 영역의 문제였다.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결과를 말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황 교수 논문의 성과를 부정할 과학적 근거가 채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진보론자들은 황 교수를 그렇게 몰아세워야 했을까?
애정이 없었다
의혹이 있으면 규명해야 한다는데 성역이 있을 수 없다. 황 교수도 그로부터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유감스러웠던 것은, < PD수첩 > 이후 진보론자들의 의혹 제기를 보면 황우석이라는 세계적 과학자, 그리고 그가 내놓은 연구성과에 대한 애정같은 것을 읽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난치병 치유'라는 목적조차도 정상 참작의 사유가 되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황 교수팀은 논문조작을 할 수 있는 범죄 혐의자들로 시종 다루어졌고, 그들을 향한 의혹제기는 이미 '애정어린 비판'이 아니었다. '일그러진 애국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 PD수첩 >과 격렬하게 충돌하게 되었던 정서적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날선 논리와 비판을 앞세우기 전에, '집단적 광기'라고 규정하기 이전에, '일그러진 애국주의'에 담겨있던 마음들도 한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황우석이라는 한국의 자존심을 그렇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어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진보론자들은 그 앞에서 너무도 차가운 모습으로 서있었다.
과학적인 영역의 문제에서조차 정치적 접근법을 택한 진보론자들의 대응방식은 무척이나 낡은 것이었다. 황 교수 지키기에 나서는 것은 주류언론이고, 황우석이라는 '우상'을 '이성'으로 깨뜨리는 것은 비주류 언론이라는 식의 발상. 그같은 발상이 지속되는 한 주류언론과 비주류언론의 위치가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비감한 예감마저 들었다.
과학기술과 독점자본과 국가의 유착이라는 고전적인 진보이론의 틀로 황우석 현상을 보는 것이 가능하며 현실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가.
진보론자에게 던져진 성찰의 과제
이번 논란의 과정에서 필자가 발견한 것은 '화석화(化石化)된 진보주의'였다. 진보론자들은 판에 박은 정치적 예단으로 자신들만의 '좁은 연대'를 시도했다. 그러나 합리성이 결여된 그같은 정치적 연대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과학적 진위의 문제조차도 정치적 가치의 문제로 환원시키려 했던 오류의 결과였다.
아직 모든 결말이 맺어진 것은 아니다. 진위논란의 최종 결론은 조금 더 기다려봐야 명확해질 모양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놓고 봐도, < PD수첩 >을 거의 맹목적으로 옹호했던 진보론자들 또한 큰 상처를 입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일그러진 진보주의'의 실패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진보론자들의 사고 역시 변화해야 한다는 성찰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과 관성에만 갇혀있는 한, 미래는 이들의 것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