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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28 18:26최종 업데이트 05.11.29 10:27

바람 부는 날 수원성에 오르다

세계문화유산 화성

며칠 전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경주의 석굴암과 종묘 그리고 팔만대장경판전, 수원의 화성과 창덕궁에 이어 천년을 이어온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 보존문화재 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소식이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의 세계적인 가치성을 인정해준 것이다. 무형 문화재의 인정과 더불어 휴일 오후 천천히 유형문화재를 찾아 나섰다.

담장과 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이란 전쟁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안녕과 평화를 위한 건축물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장안문
장안문 ⓒ 우관동
역사 깊은 문화유적이 살아 숨쉬는 수원은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이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지역의 입지적 특성을 살려 건설한 계획도시로 수도 서울 남부의 관문 역할을 했다.

ⓒ 우관동
당쟁의 회오리 속에서 뒤주 속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마쳐야 했던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의 유택인 영우원을 1789년(정조13) 풍수지리상 최길지의 명당으로 지목된 수원 화산(현재 화성의 용주사 옆 융건릉)으로 옮기면서부터 정조대왕은 수원 백성들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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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수원의 새로운 읍치를 팔달산 기슭(당시 지명은 신기리)으로 옮기면서 행정·치안기관인 관아와 교육기관인 향교, 교통기관인 역참, 상가, 도로, 교량 등 도시 기반 시설을 마련하고 민생 대책을 강구했다.

-사도세자(장헌세자) 장조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현경왕후)를 모신 능은 융릉(隆陵)이고 정조대왕과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능은 건릉(健陵)이다.

정조대왕의 효는 대단히 극진하였다. 전해 오는 일화를 따르면 "정조대왕은 그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죽음을(뒤주 속에 갇혀 죽음) 애석해하며 양주 배봉산에 있는 영우원을 현재의 화산으로 옮겼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능 주변 소나무에 송충이가 대단히 번식하여 소나무를 갉아 먹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행차를 서둘러 산에 와보니 송충이의 기승이 목불인견이라, 정조가 진노하여 송충이를 잡이 깨물면서 '아무리 미물일망정 네 어찌 내가 부친을 그리워하며 정성껏 가꾼 소나무를 갉아 먹느냐'고 꾸짖고 돌아서자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져 송충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융건능은 용주사와 함께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유적으로 효(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자랑거리이며 언제 둘러보아도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서장대와 서노대
서장대와 서노대 ⓒ 우관동
서장대는 팔달산의 제일 높은 산마루에 있으며 위에 올라가서 굽어보면 팔방으로 모두 통한다. 석성의 봉화와 황교의 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산 둘레 백 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 자리에서 변화를 다 통제할 수 있다.

화성은 정조의 극진한 사랑을 받던 실학의 대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그 당시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유학에 반하여 정면 대응하고 나서서 정치, 경제 등 실제 생활에 필요한 학설을 주장한 실학의 대가 정약용. 그 시대에 새로운 학설 <실학>을 주장한다는 것은 목숨을 포기하는 행위와 다름없었지만 극진한 정조의 사랑으로 잠시 자리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끝없는 귀양살이로 이어지게 된다.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 ⓒ 우관동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소멸되고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 우관동
화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동포루
동포루 ⓒ 우관동
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 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 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 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저녁 노을
저녁 노을 ⓒ 우관동
수원 팔경의 하나인 서호낙조. 서쪽으로 해가 기울며 수원 농촌 진흥청 옆의 서호가 저녁 빛에 어슴푸레 보인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서포루에서 본 서장대
서포루에서 본 서장대 ⓒ 우관동
성벽은 외측만 쌓아올리고 내측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성곽을 만들었다.

용연
용연 ⓒ 우관동
화홍문 근처의 언덕에 있는 방화수류정 옆의 연못인 용연. 정자와 버드나무 사이에 보름달이 수면위에 비추어지는 아름다운 정취를 "용지대월"이라 하여 수원팔경의 하나로 꼽는다.

봉돈
봉돈 ⓒ 우관동
성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 많은 돌을 다 어디서 가지고 왔을까? 돌을 다루는 선조들의 기술이 아직도 놀랍기만 하다.

봉돈은 정찰과 척후의 임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이상 징후 발견시 멀리 육지나 바다에 상황 전달을 하는 성안에 있는 봉화대이다.

성벽을 따라 성안의 이동로에는 많은 이들이 운동복 차림으로 열심이 성안을 따라 뛰거나 걷고 있다. 관광 답사를 하는 이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범위라면 성도 튼튼히 다져지고 몸도 튼튼, 결국은 나라가 튼튼해지고 부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정조대왕의 효심을 생각하며, 지금은 안 계신 내 부모에 대한 불효로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어둠 속에 묻힌 성을 따라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수원팔경

화산두견: 화산의 두견새 울음소리

소나무 꽃가루가 날리는 3월이 오면 진달래꽃이 화산(현 수원)을을 온통 물들이고 두견새가 화산을 날며 울어댄다. 화산에는 사도세자가 잠들고 그의 아들 정조대왕 또한 유언에 따라 옆에 묻혔으니 저승에 가서도 효성을 비치려는 뜻

화홍관창: 화홍문의 비단결 폭포수

화홍문 깊은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수원천 맑은 물은 화홍문 일곱개 수문의 폭포수가 되어 무지개 빛으로 부서져 내린다. 또한 수원천의 물줄기는 천변의 수양버들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서호낙조: 서호 노을에 드리운 산그림자

노송가지가 수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경관을 따라가면 높이 2장이나 되는 폭로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그 위에는 아담한 황이정이 있다.

광교적설: 광교산에 눈쌓인 모습

한겨울의 백설도 장관이거니와 시루봉에 새봄이 찾아올 무렵의 춘설은 또한 비경이다.

남경장루: 긴 제방에 늘어선 버드나무

남경은 화홍문에서 화홍산 앞까지 이르는 수원천의 긴 제방이며 그 둑 양면에 늘어서 있는 수양버들을 일러 장류라고도 한다.

팔달정람: 안개에 감싸여 신비로운 팔달산

산 정상을 묽게 물들이는 저녁노을 또한 가경이어서 '팔달모운'이라고도 한다.

용지대월: 용지에서 월출을 기다리는 경치

용지는 방화수류정 아래 연못을 말하며 방화수류정의 그림자가 수면에 떠오르면 무아경을 이루게 하는데, 수원천의 물이 용지를 거쳐 용머리를 본 따서 만든 돌구멍으로 흘러 보냈기 때문에 일명 용지문이라고도 한다.

북지상면: 북쪽 연못의 흰색 붉은색 연꽃

지금의 일왕저수지인 북지의 본 이름은 연석거 또는 고구정으로서 흰색, 붉은색의 연꽃이 수면에 가득하였다. 연못이 만발하였을 때 찬란한 광경을 영화정 정자에서 바라보면 저절로 취할 정도였다 한다.


 

덧붙이는 글 | 장안문 옆 관광안내소의 친절한 안내와 팜플렛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화성의 전체길이는 약 6km. 손쉽게 둘러보기(화성 열차이용)

임금을 상징하는 용머리를 상징하는 동력차와 관광객 탑승차량 3량으로 구성된 화성관광열차는 앞부분의 경우 임금(정조대왕)을 상징하고 임금의 어가를 형상화한 객차로 54인승이다.  

운행시간은 매일 오전 10:00 ~ 오후 17:50 (눈.비오는 날과 영하의 날씨와 매주 월요일은 운행하지 않는다.) 

운행구간 : 팔달산(강감찬장군동상) - 화서문- 장안원- 장안문 - 화홍문 - 연무대(3.2km) 

소요시간 :  편도 30분(팔달산↔연무대) 

매표소(승하차): 팔달산(228-4683), 장안공원(228-4685), 화홍문(228-4684), 연무대(228-4686) 

승차료: 성인 1500원, 청소년 1100원 어린이 700원

주변 둘러볼 곳: 화성 행궁, 광교산, 원천 유원지, 융건릉, 용주사, 한국 민속촌. 
관광 문의 안내소: (관광안내 대표전화 지역번호 031) 1330번
 
*우관동 기자의 블로그에도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http://blog.daum.net/korea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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