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숨어 있는 소수의 아름다움
나는 세상을 꾸미고 있는 많은 색깔 중에서 빨간색을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자신을 불태우고 싶어한다. 자신을 불태우는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존재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을 기꺼이 불태우려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태운다는 사실이 내포하고 있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는지 모른다.
빨간색은 명백하다,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관련도 없다 라는 의미로 쓰인다. 새빨간 거짓말, 빨가숭이라는 말이나 단심(丹心) 따위의 말이 거기서 생겨났다.
빨간색이 가진 강렬함은 때로 광기를 뜻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 중엔 빨간색만 보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특이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들은 광기를 유발시키는 대상보다 오히려 자신의 광기가 더 빨갛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가을은 붉게 물든 나뭇잎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러나 나뭇잎만 아름다움을 독점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게 자연의 이치다. 눈 돌려 바라보라. 나무 열매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뭇잎들 속에서 수적으로 소수인 열매가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소수에게는 다수가 갖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것은 가을 풍경 뿐 아니라 세상살이를 관통하고 있는 불변의 원리기도 하다.

▲백당나무 열매. 송시열이 제자를 가르쳤던 서당인 남간정사 개울 옆에서 찍었다. ⓒ 안병기
백당나무는 산이나 들의 습지에서 자라는 인동과의 낙엽활엽관목이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끝이 뾰족하고 뒷면에 잔털이 있다. 꽃은 5∼6월에 흰색으로 피고 줄기에 꽃자루가 아래에서 위로 차례로 달린다.
사진을 찍은 곳은 우암 송시열이 제자를 가르쳤던 서당인 남간정사 돌담을 따라 흐르는 개울가인데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어린 가지와 잎에 털이 없는 것을 민백당나무, 꽃이 모두 무성화로 된 것을 불두화라고 하는데 주로 절에서 가꾼다.

▲산딸나무 열매. 남간정사에서 촬영 ⓒ 안병기
산딸나무란 이름은 열매 모양이 딸기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산딸나무의 꽃이 흰색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으나 꽃잎처럼 보이는 네 장의 하얀 잎은 꽃잎이 아니라 포(苞)다. 꽃은 포로 둘러싸여 있는데 마치 열매처럼 보이는 부분에 아주 작게 핀다. 서양에서는 호랑가시나무와 더불어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 나무와 같은 종류라 하여 신성시 한다고 한다.

▲산수유나무 열매. 동네 소공원에서 촬영 ⓒ 안병기
산수유나무는 층층나무과의 낙엽교목이다. 나무껍질은 불규칙하게 벗겨지며 연한 갈색이다. 열매를 산수유라고 하며 한방에서 주로 자양강장 등에 사용한다. 한때는 이 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자식 대학 공부를 시킬 수 있다고 해서 '대학나무'라고도 불릴 만큼 귀한 열매였으나 요즘 들어서는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좀작살나무 열매. 남간정사 뒷담 근처에서 촬영 ⓒ 안병기
마편초과에 속하는 떨기나무인 좁작살나무는 자주색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다. 잎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 또는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는 중앙 이상에 톱니가 있다. 열매가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심기도 하며 작살나무와 같으나 작기 때문에 좀작살나무라고도 한다.

▲청미래덩굴. 남간정사 뒷산에서 찍음. ⓒ 안병기
산지의 숲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굵고 딱딱한 뿌리줄기가 꾸불꾸불 옆으로 길게 벋어간다. 줄기는 마디마다 굽으면서 2m 내외로 자라고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다. 열매는 둥글며 지름 1cm 정도고 9~10월에 붉은색으로 익으며, 명감 또는 망개라고 한다.
청미래덩굴은 이름이 많다. 경상도에서는 망개나무라고 부르고 황해도에서는 매발톱가시, 강원도에서는 참열매덩굴, 전라도지방에서는 명감나무, 종가시덩굴로 부른다.
열매는 식용이며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이뇨나 해독에 효능이 있다 하여 뿌리를 약재로 쓰며 요즘 꽃가게에서는 꽃꽂이 재료로 많이 판다. 나 어렸을 적엔 한 겨울 청미래잎에 싸서 파는 '맹감떡'이 별미에 속했다.

▲찔레나무 열매. 동네 소공원에서 찍음. ⓒ 안병기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관목인 찔레나무는 산기슭이나 볕이 잘 드는 냇가와 골짜기에서 자란다. 높이는 1∼2m이고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가지는 끝 부분이 밑으로 처지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으며 잎은 어긋난다.
꽃은 5월에 흰색 또는 연한 붉은 색으로 피고 새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봄에 찔레순으로 허기를 달래던 추억이 있어서인지 찔레를 소재로 한 노래가 많다. 이연실이 부른 전래동요인 <찔레꽃>과 장사익이 부른 <찔레꽃>이 들을 만하다. 그리고 국립국악 관현악단원인 김희정이 연주하는 무반주 가야금 파르티타 <찔레꽃 변주곡>도 아취가 있다.

▲배풍등 열매. 남간정사 뒤 약수터 근처에서 찍음. ⓒ 안병기
덩굴성 반관목이며, 줄기의 밑부분만 월동한다. 윗부분이 덩굴성이며 가는 털이 난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거나 긴 타원형이며 밑에서 갈라지는 것도 있다.
유독식물이며 열매는 해열·이뇨·거풍 등에 사용한다.

▲구기자 열매. 동네 소공원에서 찍음. ⓒ 안병기
구기자는 마을 주변에서 야생으로 재배하는데 다른 물체에 기대어 자란 것은 4m에 이르기도 한다. 옛날에는 울타리 삼아 구기자를 심는 집도 있었다. 줄기는 비스듬히 자라고 끝이 밑으로 처진다. 흔히 가시가 있으나 없는 것도 있다.
6∼9월에 자줏빛 꽃이 1∼4개 잎겨드랑이에서 나와서 피고, 화관은 종 모양으로 5갈래로 갈라지며 끝이 뾰족하다. 폐와 신장의 기능을 좋게 한다 하여 가을에 열매와 뿌리를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쓰는데, 열매 말린 것을 구기자라 하며 뿌리 껍질을 말린 것을 지골피라 한다. 재래종을 비롯하여 청양종, 일본과 중국에서 들여온 일본1호, 중국1호 등이 있다.

▲주목 열매. 동네 길가에서 찍음. ⓒ 안병기
주목은 상록교목이며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나무이나 근래에는 가로수나 정원수로도 심는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큰가지와 원대는 홍갈색이며 껍질이 얕게 띠 모양으로 벗겨진다. 잎은 줄 모양으로 나선상으로 달리지만 옆으로 벋은 가지에서는 깃처럼 2줄로 배열하듯 난다. 한국산 주목씨눈에서 항암물질인 택솔을 대량 증식할 수 있음이 밝혀져 신약으로 개발된 바 있다.

▲산사나무 열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찍음. ⓒ 안병기
아가위나무라고도 한다. 나무껍질은 잿빛이고 가지에 가시가 있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에 가까우며 길이 6∼8cm, 나비 5∼6cm이다. 가장자리가 깃처럼 갈라지고 밑부분은 더욱 깊게 갈라진다. 꽃은 5월에 흰색으로 피고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꽃잎은 둥글며 꽃받침조각과 더불어 5개씩이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산사자라고 하며 건위제·소화제·정장제로 사용한다. 민간에서는 고기를 많이 먹은 다음 소화제로 쓴다.
볼품없이 자란 나무의 열매가 더 단단하다
나무는 우리 인간에게 많은 것을 준다. 나무는 우리에게 그늘을 허락하고 열매마저 나눠준다. 묵묵히 배려하고 생색내지 않고 아낌없이 준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나무를 닮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누가 뭐래도 성자일 것이다.
숲은 나무라는 개별 존재로 이뤄져 있지만 군집을 이루며 산다. 나무라는 말 못하는 생물은 개인과 전체를 아우를 줄 아는 덕목을 지녔지만 우리 인간은 어떤가. 그런 인간들을 두고 정희성 시인은 <숲>이라는 시에서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어도 숲이 되는데 우리는 왜 숲이 아닌가"라고 한탄한다.
그런가 하면 신경림 시인은 '나무 1'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신경림 시 '나무1' 전문
허우대가 멀쩡하다고 우쭐대지 말 것. 볼품없이 자랐다고 기죽고 살지 말 것. 스포츠 선수만 역전에 사는가. 사람은 다 누구나 역전에 산다. 산에 가시거든 단풍 좋다고만 하지 말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가 얼마나 단단한 열매를 맺는지도 바라보고 오시라. 그 위안 한 가지만으로도 기름값 들여 산에 오른 보람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