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7월이후 올해 4월까지 네이버에 실린 문희준 인터뷰 기사에 32만 건 이상의 독자의견이 달렸다. ⓒ 네이버닷컴
본래의 뜻과 달리 인터넷에서 전혀 엉뚱한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이 있다. 요즘은 '성지순례'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성지를 참배한다"는 뜻과 달리 네티즌들이 새롭게 공유하고 있는 '성지순례'는 화제의 인터넷 기사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자신의 방문 기록을 남기고 다른 네티즌들의 순례 흔적을 찾는 행위를 말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두 건에 불과했던 성지순례 기사가 올해 들어 대여섯 건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있고, 해당 기사들이 모두 특정 포털사이트 뉴스에 집중됐다는 것이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사의 주인공들이 네티즌들로부터 욘사마를 빗댄 '∼사마'라는 애칭을 얻은 것도 공통점이다.
<디시뉴스>는 12일 "네티즌 사이에 '성지 순례' 4종 세트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몇몇 사례를 언급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5종, 6종 세트도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효시 논란... '디시의 전설, 쿠기닷컴' vs <조선>의 '문희준 인터뷰'
네티즌들 사이에 '전설의 시작' '성지순례의 효시'로 불리는 기사는 2004년 7월 1일 네이버에 게재된 <조선닷컴>의 가수 문희준 인터뷰. 디시인사이드의 게시물 '디시의 전설, 쿠키닷컴'을 성지순례의 '진정한 시초'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12일 현재 32만건을 넘어선 '문희준 독자의견'은 당분간 깨지기 힘든 대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댄스그룹 멤버에서 록 가수로 변신한 뒤 '무뇌층'으로 희화화되는 등 안티 팬들의 사이버 공격에 시달렸던 문희준이 <조선닷컴> 인터뷰에서 "제 '안티'들 대부분이 초·중학생이에요", "록 자격증이라도 있다면 따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한 것이 안티팬들의 분노를 샀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다음날 오전에 이미 20만개를 넘어선 독자의견이 달린 것으로 보아 안티팬들이 문희준을 괴롭히기 위해 도배질 등으로 댓글 숫자를 크게 부풀렸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32만건이 넘는 포털사이트 뉴스 독자의견 수가 크게 부풀려졌다고 해도, 정작 기사를 처음 제공한 <조선닷컴>의 100자평이 76건에 불과하다는 것은 포털사이트의 막강한 영향력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문희준 독자의견'이 한차례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성지순례 기사들이 네이버에 집중되는 현상이 빚어졌다.
문희준과 같은 소속사(SM 엔터테인먼트)에 있는 5인조 댄스그룹 동방신기는 작년 8월 일부 팬들이 인터넷에서 모 신인그룹을 깎아내리고 동방신기를 떠받드는 바람에 안티팬들의 애궂은 표적이 되고 말았다. 동방신기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도 12일 현재 3만건에 육박하고 있다.
클릭B 김상혁 기사도 새로운 '성지순례' 후보
해가 바뀌자 이번에는 정치권 인사가 성지순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월 16일 밤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 중년여성과 함께 있다가 YTN 취재진에 발각됐는데 "외국에 다녀오는 길에 사달라고 부탁한 묵주를 전해주기 위해 여성을 만났다"고 설명하는 바람에 '묵사마'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게 됐다.
YTN 기사에는 "성지를 더럽히는 자는 묵사마님의 묵주 고문을 받을 것이오"(6sama) "성지순례중이니 말시키지 마십시오"(wolflake)라는 내용의 진지한(?) 리플들이 2만2000건 이상 달려있다.
지난달 30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폭행 사건은 일개인의 튀는 행동을 다룬 기사도 성지순례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사건 개요와 네티즌 반응을 정리한 <오마이뉴스> 기사에 대한 네이버 독자의견 수가 4만5000건에 육박했고, 폭력을 휘두른 서울대 학생은 '철사마'라는 별명을 덤으로 얻었다.
이밖에 11일 뺑소니 사고를 내고 한때 행방을 감췄던 그룹 '클릭B' 김상혁 사건을 처음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도 성지순례 기사로 떠오르고 있다. 덕분에 김상혁도 '뺑사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느닷없이 불붙은 '성지순례' 붐을 놓고 "비판의 대상으로 몰린 사람들을 쉽게 잊지 않으려는 캠페인"으로 이해하는 시각도 있지만 성지순례가 하나같이 네거티브 양상으로 흐르는 것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