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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칼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8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는 15일 총선까지 10여일이 채 남지 남지 않았습니다. 전북대 정태석 교수(사회교육학부)는 노무현대통령 탄핵이후 촛불집회 등으로 이어지는 시민들의 정치문화 혁신의지를 높게 평가하면서 이번 선거를 ‘의회민주주의 대 국민주권주의,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각 정당들은 이념과 정책에 따라 국민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경쟁에 나서야 한다...편집자 주


의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지도 이십여 일이 넘어서고 있다. 그동안 국민주권의 원칙과 헌법정신을 거스른 의회의 탄핵결정에 대한 다수 시민들의 분노는 연일 이어지는 촛불집회를 통해 분명히 표출되었다. 이제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미래를 위해 이러한 시민들의 에너지를 제도개혁과 정치문화의 혁신으로 이어가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탄핵 정국은 의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도록 하여 시민들의 주권의식을 고취시켰고, 또 감추어져 있던 국회의원의 본색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정부권력과 의회권력의 갈등이 낳을 수 있는 모순, 의회민주주의가 국민주권을 거스르는 모순,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제도의 한계 등이 드러났고, 그동안 반공주의, 지역주의, 연고주의, 부패정치 속에서 수구보수 지배세력의 본질이 어떻게 왜곡되고 감추어졌는 지를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사실 노대통령의 당선은 새로운 정치문화와 개혁에 대한 다수 시민들의 기대를 반영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인한 반미감정과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반대하는 반전의식의 확산, 시민들의 개혁에 대한 열망 등은 학벌도 연줄도 없는, 서민적이고 개혁적인 이미지의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지배세력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하지만 이런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기존의 지배세력들에게 엄청난 자존심의 손상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수구보수 세력은 처음부터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들의 대변지인 조선일보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대통령을 깎아내리면서 반(反)노무현 정서를 확산시키려고 발버둥 쳤다. 탄핵은 바로 수구보수 세력의 이러한 정서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의회에서의 다수에 기반하여 집권 초기부터 수시로 탄핵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대통령을 압박했던 것이다.

물론 진보적 입장에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미정책, 대북정책, 노동정책 등에서 개혁성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성향으로 인해 다수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고, 이로 인해 다양한 개혁입법들이 정치적 타협 속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또한 대통령의 정치개혁 의지는 민주당 구세력들에 의해서도 견제받았다. 그래서 당내 개혁의 노력은 제지당했고 그 결과는 열린우리당의 분당과 대통령의 탈당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탄핵은 바로 이러한 감정적 대립구도 속에서 준비된 것이었고,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선언은 준비된 탄핵을 성사시키는 촉매제역할을 했던 것이다.

탄핵의 부당성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적되었다. 탄핵은 의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주권자들인 시민들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탄핵에 대한 다수 시민들의 거부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읽혀질 때, 민주주의와 정치의식의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의회주의의 형식논리에 대한 국민주권 원칙의 비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탄핵을 정당화하면서 밀어부친 데에는 의회주의의 형식논리가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논리의 정당화는 보수언론에 의해 헌법학자의 권위를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서울대 교수를 지낸 헌법학자 김철수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국회의 의사와 여론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는 국회의 의사를 국민의 의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회의 결정이 국민의 결정보다 우선한다는 이러한 논리는, 의회의 결정도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결정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 헌법 정신을 무시하는 엘리트주의적 발상이며, 기득권 옹호를 위해 법의 정당성 근거를 무시하는 법철학의 빈곤을 드러낼 뿐이다.

탄핵에 대한 시민의 거부는 민주주의와 정치의식 발전의 계기

민주주의의 원리에 비추어보면 법은 주권자들의 합의를 제도화한 것이다. 따라서 법은 기본적으로 주권자들의 의사를 반영해야 하며 사회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주권자들의 의사도 반영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헌법기관들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운영되어야 한다. 헌법의 제정이나 개정이 국민투표에 의해 최종적으로 확정되도록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회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과 의회는 모두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헌법기관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두 기관이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어서 충돌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탄핵을 통해 의회의 다수세력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탄핵을 남용할 수 있으며 주권자인 국민의 다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문제가 드러났다.

나아가 탄핵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리는 헌법재판소의 경우도 민의를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는 재판관 선출 절차와 수를 지니고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탄핵을 계기로 헌법기관들이 주권자들의 의사를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보완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둘째는 국회의원들의 의사와 국민의 의사가 불일치하도록 하는 선거제도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지역구 선거제도는 정당에 대한 지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렵게 하며 정당 지지율이 의석수에 적절히 반영되지 못하도록 한다.

또한 계급, 성, 환경, 소수자 등 지역이 아닌 다른 선택기준들에 따른 다양한 의사들이 반영되기 힘들게 한다. 이러한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의 확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물론 다양한 쟁점들이 일관된 기준에 의해 나뉘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념과 정책에 따른 정당 선택이 모든 불일치를 해소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례대표제도는 이러한 불일치를 줄일 수 있는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한편 최근 탄핵 정국에서 선거제도의 개혁과 국민소환제, 국민발의제 등에 대해 각 당들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와 더불어 당내 민주주의를 법제화하여 부패정치와 보스정치와의 단절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인물강조는 수구보수정당의 지배유지 전략일뿐

셋째는 의회주의와 연루되어 있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동안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자신들이 소위 전문가 또는 지식인으로서 국민들의 의사를 잘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정경유착과 부패정치의 역사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기 보다는 지식과 전문성을 빙자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해왔다는 점이 드러났다.

특히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서민과 개혁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기업주나 부유층과 결탁하여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반공주의, 지역주의, 자유시장 논리를 동원해 왔다. 이 점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탄핵 찬성 세력들이 친일세력의 후예, 친미반공주의 세력, 보수적 기득권 세력들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탄핵은 지금까지 감추어져 왔던 기득권 세력들의 면모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노무현 정권이 주도한 부동산 세제 개혁, 재벌 개혁, 친일파청산, 대북 정책 등 각종 개혁입법의 발목을 잡아왔다.

민주당 구주류는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거나 당내 개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기득권 유지에 몰두하였다. 그동안 국회는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는커녕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익집단의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하겠다. 그리고 지역구 선거는 이러한 지역 엘리트들과 유지들의 권력 경쟁에 불과했다.

여기서 우리는 지역구 선거에서 인물투표가 가지는 허구성을 꿰뚫어보아야 한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소위 깨끗하고 신선하다고 하는 한나라당의 개혁세력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정당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인물에 대한 강조는 결국 수구보수 정당이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지배를 유지하려는 전략일 뿐이다.

넷째는 국회의 의사와 국민의 의사 간의 불일치를 가져온 구시대적인 정치문화에 대한 반성이다. 다수의 시민들은 그동안 반공주의, 지역주의, 연고주의, 부패정치, 돈 선거 속에서 자신들의 진정한 이익과 의사가 무엇인지를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었다. 여기에는 지역구 선거제도도 한 몫을 했다.

왜 영남의 노동자들은 기업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을 지지하였고, 호남의 노동자들은 기업주와 시장경제의 편을 드는 민주당을 지지하였는가? 왜 영남의 농민들은 농업시장개방을 주장하는 한나라당을 지지하였는가? 왜 영남의 여성들은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한나라당을 지지하였는가? 왜 노동자와 서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않았는가? 왜 영남과 호남의 시민들은 부패정치에 물들어 있고 마침내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지지하였는가?

왜 영호남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을 지지 하지 않았는가

탄핵 정국은 구시대 정치문화 속에서 시민들이 수구보수 지배세력들에 의해 얼마나 속고 살아왔는지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시민들의 정치의식의 변화는 조금씩 감지되고 있었고, 탄핵 반대 촛불시위는 이러한 변화를 표출한 사건이었다.

김대중 정권의 대북화해정책, IMF 구제금융 시기의 실업과 노동불안정, WTO와 FTA에 따른 시장개방, 이라크 전쟁 등을 겪으면서 시민들은 서서히 자기 이익과 의사를 분명히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개혁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탄핵 결정 이전부터 실질적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1위를 차지했고 탄핵 반대 여론이 60%를 넘었다는 점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변화를 읽지 못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탄핵 무효와 민주 수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접하면서 방송과 여론조사를 탓하거나 대중선동, 포퓰리즘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새로운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인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국민이 친북, 반미성향의 이 정권과 사회단체로 위장한 급진 세력에게 이 나라를 송두리째 넘겨줄리 만무하다고 확신한다.” 이것은 한나라당의 시대의식이 여전히 70년대 언저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나라당은 오히려 탄핵을 통해 자신의 지지기반인 친미, 반공 세력과 보수 세력의 의사를 잘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의 본색을 알지 못했던 시민들이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소위 평화개혁세력을 자처했던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공조하여 위험한 불장난을 함으로써 전통적 지지층으로부터도 외면당하는 엄청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탄핵 정국에서 시민들의 반응은 새로운 정치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역주의적 동원을 거부하였고, 북한의 지령 운운하는 색깔론을 통해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보수단체들과 보수언론의 공작에도 코웃음을 치고 있다. 민주화의 진전과 남북관계의 개선 등이 다수 시민들의 정치의식의 성숙을 가능하게 했다고 하겠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아마도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이 자신들의 지지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과거의 상황이었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변해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은 수구적, 보수적 입장에서의 비판과 개혁적, 진보적 입장에서의 비판이 더해진 결과였던 것이다. 높은 탄핵 반대 여론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탄핵반대와 촛불집회 의미를 진정으로 살려나가는 길

결국 그들이 결집시킬 수 있었던 사람들은 기껏해야 수구적, 보수적 시민들 또는 전통적 지지층뿐이었고, 다수의 시민들은 지역주의적 동원을 거부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높은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높은 탄핵 반대 여론과 촛불집회의 의미는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하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과 탄핵 반대에 대한 높은 지지율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친노 대 반노의 구도와는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구시대 정치와 새로운 정치의 대결, 의회민주주의 대 국민주권의 대결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잠재되어 있는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을 읽어내야 한다.

그동안 시민들의 낮은 정치의식과 주권의식은 의회주의와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수구보수 정치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제 다수의 시민들은 탄핵 정국을 통해 정치참여와 주권행사를 제약해온 의회주의의 한계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을 통해 구시대 정치문화와의 단절, 대중정치, 시민사회정치, 참여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시민들은 진보정치가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토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시민들은 이제 진정한 자기 이익과 의사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각 정당들은 구체적인 현실 문제들에 대해 이념과 정책에 따라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설득하고 지지를 호소하려는 경쟁에 나서야 한다.

선거는 이제 구시대적인 정치문화의 청산을 넘어 이라크 파병, 대북정책, 국가보안법, 대미외교정책,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재벌정책,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문제, 실업, 복지정책,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 금융시장개방, 외국인노동자정책, 환경, 인권 등 다양한 현실 문제들을 둘러싼 이념과 정책들 간의 토론과 경쟁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보정당들은 이러한 토론과 경쟁에 참여하여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고 대중들의 지지 획득에 힘씀으로써,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이루어지는 선진적인 정치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시민들의 탄핵반대와 촛불집회의 의미를 진정으로 살려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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