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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칼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7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회 야3당의 노무현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대해 전 국민적 반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 박은홍 부소장은 한국과 비슷한 '의회쿠테타'를 경험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의 사례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의 모범이 되는 '한국적 민주주의 모델'을 만들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 지난 13일 밤 약 8만에 이르는 인파가 광화문에 모여 노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시아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네시아이다. 1998년 5월, 32년간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독재자 수하르또가 권좌에서 물러났다. 적지 않은 인도네시아 전문가들조차도 수하르또 군부독재의 퇴진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인도네시아의 민주화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현 대통령인 메가와띠는 야당의 수장으로서 민주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인도네시아의 행보는 그때의 감격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를테면 소수종족의 인권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아태지역문제에 대해서도 메가와띠는 군부의 논리를 따라 강경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와의 대화도 거부하고 있다. 그녀의 관심은 수하르또 군부독재 시기에도 일관되게 얘기되던 '하나의 인도네시아'에 있을 뿐이다. 민주화 이후의 종족·종교간 분쟁, 잇달은 폭탄테러로 국가안보 상황이 연출되면서 군부는 자신의 입지를 이미 굳힌 상태이다.

위기 맞는 아시아 민주주의

이러한 군부에 대해 적지 않은 인도네시아 지식인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왜냐하면 민주화 직후 군부에 대해 가장 적대적 입장을 취하였던 와히드 대통령 시기에 폭탄테러가 집중적으로 일어난 반면, 민주화 세력의 기대를 버리고 군부에 의존하고 있는 현 메가와띠 집권시기에 들어와서 폭탄테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아시아에 '황색바람'을 일으킨 코라손 아키노는 집권말기에 오면서 군부와의 관계를 돈독히 다졌고, 마침내 군을 대표하던 라모스가 대통령이 되는데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뒤이은 에스트라다의 집권은 그의 출신배경이 지나치게 서민적이라는 점에서 신선했다. 그에게 고착화된 '과두민주주의'를 혁파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민사회의 기대도 있었지만, 그는 문란한 도덕성으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를 등에 업은 과두엘리트들의 표적이 되어 무력하게 거꾸러졌다.

뒤이은 아로요의 집권은 전통적인 과두엘리트의 복귀를 의미했다. 그가 내건 '강력한 공화국'이라는 슬로건은 형식적으로나마 연고사회를 수술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의 제도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자신의 발등을 찍는 거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녀 역시 불법선거운동, 부패관행과 연을 끊지 못함으로써 비난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여기에다 9·11 테러 이후 아로요는 필리핀의 식민종주국이었던 미국의 군대가 10년만에 다시 필리핀에 모습을 보이도록 하였다. 때문에 필리핀 민주주의는 "양키 고홈, 아로요 고홈"이라는 외침을 들어야 했다.

민주화 이후 '강력한 국가' 이미지 창출에 노력한 정치인은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에 그치지 않는다. 사상초유로 절대의석을 차지한 타이사랑당의 탁신수상 역시 'CEO 국가경영'을 기치로 국가의 강력한 리더쉽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자연히 태국의 비판적 지식인들과 저항적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업방식의 국가운영을 기치로 내건 탁신 행정부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나아가 탁신 행정부는 시민사회를 국가에 순응시키기 위해 대중매체를 은밀히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효율적' 행정의 강화는 경제성장의 전제조건이 되는 정치·사회 질서를 확보하는 과정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최근 'CEO형 국가경영'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이 아니라 탁신 수상의 소유하에 있는 친나왓 재벌그룹이라는 물적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비판적 지식인들은 이를 '정책부패'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꼬집는다.

한국에 쏠리는 기대

이렇듯 민주화 이행과 함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아시아의 민주주의가 보수로 회귀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수화 물결과 대면하고 있던 아시아의 시민사회는 한국에서 일어난 역동적인 정치개혁 과정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노무현 행정부의 출범은 우리의 눈에 비치기에 여전히 부족한 측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로부터 부러움을 살 수 있었다. 노 정부의 출범은 인도네시아에서 볼 수 있는 군부의 부활도, 필리핀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과두엘리트의 복귀도, 태국에서 볼 수 있는 자본가의 직접적 지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모델'의 행진은 지난 3월 12일 엄청난 장애에 부닥쳤다. 시민사회는 이를 '의회쿠테타'라고 명명하고 있다. 아시아를 들여다보자면 '의회쿠테타'는 한국에 앞서, 군부와 타협하지 않고 시민사회와 직접 대면하려고 하였던 인도네시아 와히드 대통령이 의회의 탄핵으로 퇴진해야 했던 2001년 7월 28일에 벌어졌다. 당시 와히드 대통령은 '의회쿠테타'를 막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려고 하였으나 군과 경찰은 그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와 유사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인도네시아야말로 민주화 이행 초기에 비교적 진보적인 행정부를 경험하였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민주주의 보수화 막는 '한국모델' 만들어야

그렇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인프라는 훨씬 탄탄하다. 군부의 부활도, 자본가의 직접적 지배도, 전통적 과두엘리트들의 역공도 차단할 수 있었던 한국 시민사회와 국민들의 역량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과거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행정부 쿠테타'로 유린을 당했다. 그러나 재민주화를 경험하고 있는 아시아는 '의회쿠테타'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는 부활한 의회민주주의가 자유주의로 위장한 극우세력의 보호막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 박은홍 교수 (성공회대)
ⓒ 오마이뉴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지주계급의 포로가 된 필리핀의 과두민주주의 선례가 그렇고, 마피아세력과 돈독한 관계에 있는 재력가들이 정치권력까지 움켜쥐도록 한 태국의 금권민주주의가 또한 그렇다.

때문에 민주화 이행 과정에 있거나 이를 앞두고 있는 아시아 각국들에게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의회쿠테타'는 남의 일이 아니다. 행정부가 조금이라도 진보적 모양새를 갖추려고 하면 이들 의회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걸고 '합법적 거사'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역사적 과제는 일국적 수준을 넘어선다. '의회쿠테타'로 표현되는 민주주의의 보수화를 차단시키는 '한국모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웃 아시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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