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어디 아픈 데 없었어요?"
"아니오. 그 사람 신체는 아주 건강해요… 아무래도 신경쇠약이 아닌가 싶어요."
정희연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후 구급차는 H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병동 앞에 정지했다. 앞좌석에서 내린 두 사람이 밖에서 문을 열었다. 그들은 한동규가 누운 들것을 끌어내 응급실을 향해 달려갔다. 동섭 일행도 서둘러 뒤를 따랐다.
그들은 동규를 병원 침상에 내려놓은 후 데스크 뒤에 허리를 굽히고 무엇인가를 쓰는 간호사에게 다가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남은 사람을 한 번 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우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서를 대신해 전주댁이 그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했다.
몇 분 후 간호사의 연락을 받은 의사가 나타났다. 앞머리가 벗겨져 있어 옆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아래쪽 눈에 흰자가 많은 사십 대 후반의 남자였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본 후 보호자를 찾았
다.
"그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의사의 말에 정희연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애들 삼촌 제사를 지내고 나서부터였을 거예요. 애들 아빠가 속에서 열이 올라 기분이 붕 떠있는 상태라고 말해줬어요. 그래서인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어요. 일을 하러 가야 한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면 서 말이죠… 얼마 동안 잠을 자더라도 조금만 자면 깨고, 조금만 자면 깨고 도저히 잠을 자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무슨 일이든지 하면 잘 될 것 같다, 집에 돈이 수북수북 쌓인 것처럼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뒤로 길의 거지들에게 돈을 뿌리기도 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술을 사 주는 일이 일어났어요. 저는 이거 큰일났다고 생각을 했죠. 하지만 저 혼자서 어떻게 해요? 이웃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 혼자 밖에 없는데. 그러다가 며칠을 지나니까 좀 가라앉았어요. 잠도 좀 자고요…… 그런 것을 보면서 저는 애들 아빠가 보이는 증세가 죽은 삼촌이 죽기 전에 보인 것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때 삼촌이 보인 행동은 정상인이 보기에 얼마나 칠칠맞고 형편없는지 꼭 모자란 사람이나 하는 짓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애들 아빠하고 저하고 애들 삼촌을 상대로 얼마나 싸우고 난리를 쳤는지 몰라요. 사람이 제발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말이죠… 그런데 애들 아빠가 똑같은 행동을 하다니 정말 견딜 수가 없어요."
"일단 병동으로 옮겨요."
의사가 데스크에 앉은 간호사에게 말했다. 잠시 후 남자 간호사 둘이 나타나 한동규가 누워 있는 침대를 밀고 안으로 사라졌다.
"본인이 의식을 찾은 후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해 봐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입원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의사가 차분한 투로 말했다.
"그럼 언제쯤 면회가 될까요?"
정희연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환자의 상태를 보아가면서 전화도 허용하고 면회나 외박도 줍니다."
"……."
"일단 집으로 돌아가셨다가 궁금한 점이 계시면 이 쪽으로 전화를 주십시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이번엔 전주댁이 물었다.
"경과를 보아가면서 말씀을 드려야 하겠지만 이번이 처음이라니 쉽게 회복이 될 듯도 싶고……."
잠시 후 의사가 환자를 진찰한다며 안으로 들어가자, 정희연은 인턴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물었다.
"그러면 면회를 자주 오면 쉽게 나을 수도 있습니까?"
"아니오. 당분간 면회를 와도 면회를 할 수가 없을 겁니다. 환자를 자극시키면 치료가 지연될 뿐입니다."
정희연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전주댁이 그녀의 어깨를 껴안듯이 잡고 등을 탁탁 두들겼다.
"그렇지만 나을 수 없는 병은 절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곳에서 나가면 다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턴으로 보이는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면 열에 들 뜬 상태가 가라앉아야 합니까?"
정희연이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예, 그래야 합니다."
"얼마 전이 바로, 애들 삼촌이 산에서 발을 헛디뎌 죽은 날입니다."
정희연은 조금 전에 의사에게 했던 말을 보충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애들 삼촌이 죽기 전에 꼭 이런 증세를 보였습니다. 집에 가지고 있는 돈을 가지고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술을 사 주고, 집에 많은 돈이 있다고 사람들을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나 애들 아빠하고 많이 싸우기도 했고 사람이 저렇게 칠칠치 못한 짓을 하고 돌아다닌다고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병이었다니……."
대학병원을 나와 언덕길을 내려오는 동안 차고 매서운 바람이 그들을 할퀴고 지나갔다. 제수는 서러운 생각이 드는지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 주저 않고 싶은 기색이다. 이것을 보며 동섭은 제수가 불행한 집안에 들어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이라 싶었다.
옆에서 그녀를 부축하며 걷는 전주댁에게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오로지 이것은 한씨들의 잘못이야. 두 여자에게는 죄가 없어.
"사람이 얼마나 난폭하게 굴고 잔소리를 하고 두들겨 패던지…… 어쨌든 그 사람은 그저 잘한다, 잘한다 하고 칭찬을 해야지 조금만 나쁘게 말하면 그건 큰 일이 나요. 친정에서 '자네 술 좀 조금만 먹고 건강도 좀 생각하게'라고 한 적이 있는데 뭐가 그리 서운한지 술을 먹고 가서는 친정을 개판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러니 친정 식구들한테 이런 일은 알리지도 못하고……
그 뒤에 몇 번이나 이혼을 하려고 생각했어요. 애들 좀 잘 거둬주고 남자를 잘 보살펴 줄 사람이 나타나면 이혼을 해야지 생각을 했어요. 아니, 이혼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도저히 겁이 나서 할 수가 없어요. 저 사람은 내가 이혼해서 친정에 가 있으면 나도 죽이고 친정 식구들도 모두 죽일 거라고 협박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그대로 할 사람이에요. 나를 그냥 놔둘 사람이 아니에요."
동규가 그런 놈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제수의 입을 통해 듣게 되자, 동섭은 자신이 그런 일을 저지르기나 한 것처럼 죄송한 마음이었다. 여자라고 늘 착하고 고분고분하리라 여기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남자들의 생각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혼을 허면 되겄는가? 애들도 있는디……."
전주댁이 동서의 옆에 바싹 붙어 걸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밉고, 어찌 잘못돼서 죽어버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저렇게 병원에 누워 있으니 내버리고 갈 수도 없고……."
"그래, 왜 그런 맘이 안 들겄어."
"하여튼 그 사람한테는 절대로 나쁜 소리,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하면 안돼요… 그런데 저 사람이 사실 뭐 볼 게 있어요. 키도 작지, 배운 것도 없지… 인물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정도로 생긴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어요. 당장 길거리에 나가 봐요! 그 사람보다 잘 생긴 사람들이 길에 널려 있어요… 밖에 나가면 여자고 남자고 따르는 사람이 많다네요. 하지만 그것도 돈이 있을 때 얘기지요, 안
그래요?"
전주댁은 잠자코 동서의 말을 듣고 있다가 이해가 간다든 듯 한 번씩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이 옆에 있던 동섭을 반성적으로 몰아간다. 인정하기 싫지만 동섭에게도 동규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도 늘 전주댁에게 좋은 소리만 듣고, 제왕처럼 떠받들고 살아주기를 바랐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남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도취된 감정이 그것을 원했던 것일까? 이윽고 세 사람은 아파트로 돌아왔다.
"집안이 어수선해요. 남편이 저러니 집안 살림에 재미도 없고……."
두 사람이 거실 소파에 앉는 것을 보며 동섭은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커다란 거실에 욕실이 하나 있고, 방이 모두 셋이다.
"애들은 아직 학교에서 안 왔는갑네."
전주댁의 말이 거실 쪽에서 들려온다. 제수의 말이 이어진다.
"애들도 아빠가 늘 술 먹고 행패 부리고 사고나 치니까 별 관심도 없어해요."
이 말에 동섭은 영수나 창수를 생각한다. 그도 동규 내외처럼 아이들 일에 그다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다 ― 그 때는 다들 그렇게 키웠지 않았는가! 그는 굳세고 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농사일이 힘들 때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늘 술에 취해 현실을 잊으려고 했었다 ― 아이들은 어쩌면 내게 허약한 정신을 배운 것일까? 동섭은 어두컴컴하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아이의 방을 나와 욕실로 들어간다. 욕조는 노란 칠이 벗겨져서 시멘트가 드러나고 수채 구멍에는 검은 머리카락이 널려 있다.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사 놓았는데, 오래된 아파트라 손볼 데가 많아요."
뒤에서 정희연의 말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