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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준이 폐암 선고를 받고 몇 년을 더 살았던 것에 비하면 박성기의 종말은 얼마나 조급하게 다가온 것인지 몰랐다. 동섭은 박성기가 앓았던 췌장암이 다른 암에 비해 유예기간이 짧다는 것을 알자 막연한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췌장이 몸의 어느 곳에 붙어 있으며 암에 걸렸을 때 어떤 식으로 고통이 오는지 사람들에게 들으려고 했다. 사람들의 말은 가지각색이었다.
명치에서부터 양 옆구리에 걸쳐 긴장감과 저항이 느껴지면 일단 췌장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쉬 피로하고 안색이 나쁘고 원기가 없으면 의심해볼 수 있다고도 말했다. 각기 다른 말에 그는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숙자가 박성기를 병원으로 옮기게 된 것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입술과 손톱이 보라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어느 것이 맞는가, 아니 어느 것이 초기 증상이고 어느 것이 후기 증상인가.
"도저히 병원에 오래 놔 둘 처지가 아니었드리야. 전세방이라도 빼서 치료를 받았으먼 좀 더 살 수도 있었지만 애들 고모가 반대했다네."
전주댁은 병명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증상도 모르고 있었지만 뜻밖의 일을 알고 있었다. 순간 동섭은 보호자의 요망에 의해서 회복 불가능한 환자로부터 분리되고 있을 산소호흡기, 그 장면을 절망의 눈으로 쳐다보았을 박성기를 그렸다. 성기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난한 사람은 생명을 잠시 연장하는 돈도 지불하기가 힘든 빌어먹을 세상! 이라고 했을까.
"그러먼 돈이 없어서 죽었단 말인가?"
동섭은 자신도 모르게 개탄한다. 하긴,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 사람들 몰래 떠난 사람이 그간 돈을 모았으면 얼마나 모았을 것인가. 하여튼 박성기의 갑작스런 죽음은 동섭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주변에서 사라진 많은 사람들을 생각나게 했다.
가장 최근에 죽은 동생 동휘를 비롯하여 장모인 임춘복 여사, 폐암으로 죽은 사촌형 한동준, 그 전에는 박성기의 부친과 둘째 아들인 창수, 또 그 전에 어머니인 파평 윤씨, 경운기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동서 강종문을 떠올린다. 이런 일련의 죽음들이 예시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 분명히 그는 예시라고 느꼈다.
그는 조상의 혼령은 모르지만 조물주(자연의 신)가 존재한다는 것은 믿고 있었다. 그에게 조물주는 보상과 형벌과 형벌을 주관하며 꿈을 통해 예시를 내리는 존재였다. 이것이 어쩌면 한씨 가에 가해진 형벌이며, 한씨 집안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전염이 된 것이 아닐까. 오백 년 이상을 이어온 한씨 가계를 말살하려는 조물주의 의도일까.
나약하고 퇴화되어 버려서 더 이상 병에 대한 어떤 저항력도 가지지 못하게 된 집안에 대해 조물주는 무자비한 철퇴를 내려 절멸을 고하려는 것일까.
박성기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고향인 대영면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장에 다니거나 가게를 하거나, 신문사 등의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시골에서와 달리 그들이 할 일은 없었다. 주검을 목욕시키고 수의를 입히고 염을 하는 일, 관과 상복을 가져온 것은 장의사였다. 일을 끝낸 장의사는 한숙자와 박수철에게 장지를 어디로 정할지 물었다.
"글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두 사람은 남편이자 아버지의 주검을 고향의 선산에 모시고 싶었지만 조문객들 앞에서 선뜻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박성기는 고향 사람들에게 빚을 갚지 않은 한 죄인이었고 고향 사람들의 허락 없이는 죽어서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조문 왔던 사람들이 힘이 되어준 것은 이때 조문 온 사람들이 힘이 되어 주었다. 두 사람이 망설이는 이유를 눈치 챈 사람들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이제 고인은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죽은 사람에게 이승의 죄를 물을 수는 없으니까요."
두 사람은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갖가지 표현을 찾았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이야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요."
한숙자는 가까스로 이런 말을 찾아냈다.
"사람들이 마을에 차를 못 들어오게 막으면 어쩌지요."
수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도 걱정하지 말게. 우리가 모두 고향 선산까지 내려갈 테니까."
그 중 가장 나이가 든 조영기가 말했다. 그런데 영구차에 시신을 싣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도 전에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사람들 속에 앉아 있던 한동규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아, 왜 그러지요? 큰일이네."
"어서 119에 전화를 해요."
서로에게 물으면서 사람들 중 하나가 한동규를 업고 방으로 갔다. 그런 뒤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할 수 있는 조치를 하려고들 했다. 옷을 느슨하게 하고 혁대를 풀었다. 팔다리를 주무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계단 앞에 서 있던 동섭은 정희연이 나오자 물었다.
"대체 어찌된 일이요?"
"일을 한다고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신경쇠약이 왔는가 봐요."
제수는 눈물을 글썽이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린다.
"괜찮아?"
전주댁이 부축하려 했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말했다. 방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구급차가 오면 곧바로 싣고 떠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동규를 업고 마당으로 나왔다.
구급차는 빨리도 도착했다. 연락을 한 지 채 5분이 되지 않아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차가 정지함과 동시에 가운을 입은 남자 두 사람이 들것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한동규를 구급차용 들것 위에 뉘이자, 흰 가운을 입은 남자 둘이 구급차 안으로 옮겼다. 그 뒤를 정희연이 뒤따라 가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제발 누가 같이 좀 가줘요!"
정희연은 슬픔과 공포 때문에 악을 쓰고 있었다. 동섭은 전주댁과 함께 구급차로 달려갔다. 두 사람이 구급차의 뒤칸에 타자, 밖에서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했다. 녹색 커튼이 쳐진 구급차 안을 밝힌 것은 차의 지붕에 달려 있던 실내등이었다. 그 아래에서 가운을 입은 남자는 한동규의 눈을 까뒤집어 작은 전등으로 비춰본 후 거품이 뿜어져 나오는 입안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