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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08 13:17최종 업데이트 04.03.08 15:12

<장편연재소설>무대일가 142회

"예, 모두 다 사돈이 잘 뒷받침을 해 주어서 그렇지요.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금방 일어섰겠습니까?"

미리 할 말을 준비하고 있던 전주댁이 재빨리 응수한다.

"아닙니다. 제 아들 겉으면 그런 일은 아마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우리 큰며느리가 앞장서서 일을 추진하니까 가도 하는 수 없이 뒤따라 간 겁니다."
"촌에 있을 때도 그런 말을 한번씩 했어요. 도시에 나가먼 무얼 하든 자신이 있다고요."
"남자 못지 않은 배포도 있고. 원래가 관상에 복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 큰며느리가."

대화를 하는 중간중간 동섭은 안우성이 따라주는 막걸리를 마신다. 전주댁도 한잔 받아 약간 몸을 틀어 마신다. 안우성의 사뿐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일을 위해서는 사돈이 필요했다. 정말 배짱이 맞아! 전주댁이 눈짓을 하자 동섭은 안우성에게 따뜻하게 데운 정종을 따라 준다.

이윽고 두 사람 사이에 이장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정말 저는 사돈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랬습니다. 그런 일은 웬만한 남자도 할 수 없는 일인데 그런 일을 시작허시다니……."

지금껏 전주댁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멋지고 호탕하게 살았을 것인가! 그 때마다 그녀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본의 아니게 남편 험담을 하는 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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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지요?"

동섭의 물음에 안 사돈은 수줍은 듯 짧게 예, 하고 대답한다.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군. 전주댁은 이렇게 생각하며 여닫이문으로 고개를 돌린다. 문 위에 붉은 색의 부적이 붙어 있다. 그 위로는 얼마 전에 죽은 안우성의 부친과 그보다 앞에 죽은 모친의 흑백 초상화가 있다.

"제가 언제 이 사람하고 일을 한 번 같이 한 적이 있는디, 이 사람은 경찰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사람이요. 그래서 그런가 몰라도 대단한 풍수입니다. 글고 다른 사람보다 돈도 더 많이 주어야 헙니다."

안우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평생 이런 남자와 한 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전주댁에게 또다시 일어난다.

"그런 것은 괜찮습니다. 돈은 얼매가 들어도 좋습니다."
"그래요. 그러먼."

안우성이 전화번호를 적어 가지고 온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우성은 마루를 통해 건넌방에 들어갔다가 금방 돌아와서 전주댁에게 메모지를 건네준다.

"거기로 전화를 해서 제가 소개를 했다고 하면 알아들을 겁니다."

이것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고 화제는 다시 신변적인 것으로 돌아갔다. 오후 두 시경이 되자 두 사람은 사돈댁을 나선다. 두 사람이 거절함에도 불구하고 안우성 내외는 다리까지 배웅을 나온다.

"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세요."

안우성의 말에 전주댁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인다. 정자나무를 지나며 전주댁이 뒤를 돌아보았다. 안우성 내외가 등을 보이고 걸어가고 있다.

"사돈은 옛날부터 나하고 배짱이 잘 맞아요. 말을 하면 탁탁 통하고."
"그래 맞아, 무슨 일이든 배짱이 안 맞는 사람하고는 일하기가 힘들제."

동섭은 그녀의 기분을 잘 맞추어 준다.

"내일부터 당장 일을 시작해야겄어. 일단 풍수를 구영리에서 만내가지고, 장탯재 가서 자리를 잡아 놓고, 그 놈을 만나러 가야겄어."

약간 입술을 오므리자, 전주댁의 강한 의지가 밖으로 드러낸다. 실지로 그녀는 집에 돌아와 풍수와 통화를 했고 다음 날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까지 정해 두었다.

다음 날 구영리에서 두 사람이 만난 풍수는 머리가 히끗히끗하고 얼굴이 사각으로 보일 정도로 강한 턱을 가진 남자였다. 두 사람은 풍수를 장탯재로 데리고 갔다.

걸어가는 도중 전주댁은 그간의 사정을 세세하게 들려주었다. 사정을 알아야 제대로 도움을 받지, 하는 심정에서였다. 풍수는 약간 다혈질이었다. 전주댁의 말에 몇 번이나 흥분한 풍수는 저런 몹쓸 놈들, 이라고 내뱉었다. 그런 뒤 자기는 이런 경험이 많으니 믿어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주댁은 드센 노씨 형제를 상대로 풍수가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장탯재에 도착해서 풍수는 주변의 산과 들, 물을 휘둘러 본 후 길과 반대쪽인 남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몇 군데 나경을 놓고 좌향을 계산한다. 옆에서 전주댁은 가끔 풍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천반봉침이라는 말이나 육십갑자 중에 나오는 갑자, 을축, 계축 하는 따위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무슨 말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바로 이 자립니다."

장탯재 산을 돌아다닌 끝에 자리를 선택한 풍수가 두 사람에게 뫼를 쓸 자리를 짚어 주었다.

"여기요?"

한 번도 묏자리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자리라 전주댁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자, 여기 한 번 서 보세요."

전주댁은 풍수가 시키는 소나무 숲 앞에 서서 아래를 보았다. 너른 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건너편의 산과 덕산리와 구영리 사이를 흐르는 냇물이 눈에 훤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하루 종일 햇빛이 비치는 남향이었다.

"그래, 괜찮아 보이네요."
"여기가 이 산에서는 제일 좋은 자립니다."

이제 남은 일은 스스로 결정권을 장악하고 이번 사건을 뒤에서 조종해 온 대성을 만나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남원행 버스에 올랐다.

"여섯 시면 대성이 일이 끝난께 우리가 먼저 도착할 것 같네요."

버스 안에서 시간을 따져 본 후 전주댁이 말했다.

"그러면 회사로 찾아갑시다. 회사 정문 앞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면 되니까요."

풍수는 바쁜 사람이었고 또 기다리는 고객이 있을 수도 있었다. 전주댁은 풍수의 말에 동의했다. 약 40분 후, 세 사람은 남원 시가지에 닿기 전에 버스에서 내렸다.

길 오른 편에 전력공사의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있었다. 그들은 수위실에 가서 면회를 신청하고 음료수와 과자를 파는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퇴근시간이라 면회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전주댁은 풍수에게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두고 보면 알겠지 싶어 기다리기로 했다. 그 때 동섭이 담배를 빼들었다. 문득 전주댁은 풍수에게 담배 한 갑도 사주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무슨 담배를 피우십니까?"
"나는 담배 끊었으니 신경 쓰지 마요."
"그러먼 음료수라도 드셔야지요."

전주댁의 눈짓에 동섭이 판매대 앞으로 가서 인삼드링크를 한 병 사 가지고 돌아와 풍수에게 건네준다. 전주댁은 문 쪽만 쳐다보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색 작업복 차림의 대성이가 약간 불량스럽게 팔을 내흔들며 내리막을 내려오는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와요!"

전주댁의 낮은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대성이 안으로 들어온다.

"언제 오셨습니까?"
"좀 전에 왔다. 너하고 헐 이약이 있어서."

전주댁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조카를 본다. 오늘은 각단을 내자.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무슨 일인데요?"
"우리가 지금 할매 모실 곳을 보고 오는 길인디 너한테 허락을 좀 받으러 왔다."
"어디 다 쓸라고요, 이모!"
"이 분이 풍수 어르신인디, 좀 전에 이 분하고 장탯재 선산에 가서 덕산이 보이는 쪽으로 소나무가 좀 있든디, 거기다 자리를 봐두고 왔다."
"내가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가 있간디. 서울에 있는 성하고도 의논을 해야제."

대성이 능글맞은 웃음을 짓자, 전주댁은 이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라 싶다.

"쓸데없는 소리는 허지 말고, 된다 안 된다 결정을 해, 이 자리에서!"

이 때 두 사람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풍수가 나선다.

"내가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들으니까 원래 그 산이 자네 외갓집 선산이었다고 들었네. 그리고 외갓집 선산에 모신 자네 조상들 묘하고 비도 보고 오는 길이네."
"그래서 그것이 어쨌다는 말입니까?"

대성의 얼굴이 붉어지며 말투도 불손해진다. 그럼에도 풍수의 말투는 흐트러지거나 몸짓은 주눅이 들지 않는다.

"뭐 어쨌다는 것이 아니고, 이 아주머니 말씀은 자네한테도 외할머니 되는 분을 선산에 모시도록 해달라는 거지."
"그 산이 제 앞으로 된 것도 아니고 성하고 의논을 해 봐야 됩니다. 어머니 말씀도 들어봐야 하고요."
"자네 말이 틀린 것은 물론 아니야. 하지만 말일세. 법적으로 장남인 양자로 하여금 선산에 대한 반환청구 소송을 내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러면 판사들이 어떤 판결을 내릴 것 같나?"

풍수의 말에 대성이는 잠시 멍한 기색이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옆에서 듣고만 있던 전주댁은 하마터면 아하, 하는 탄성을 지를 뻔했다.

"아니 제가 언제 외할매 산소를 못 쓰게 했습니까? 의논을 해 봐야 한다고 했제."
"그래, 써도 된다 이 말이제?"

전주댁이 다그쳐 묻는다.

"예, 아무 데나 쓰시고 싶은 데 쓰세요."

드디어 대성의 허락이 떨어졌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니. 이쪽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전주댁은 속이 후련해진다. 그간 미워했던 조카를 용서할 마음도 생긴다.

다음 날부터 전주댁은 이장 계획을 착실히 추진시켜 나갔다. 이장 날짜를 받고 인부를 사고 음식을 장만했다. 그런데 막상 묘를 이장할 준비가 모두 갖추어졌을 때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대성이 그 자리는 줄 수 없으니 다른 묏자리를 잡아서 쓰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전주댁은 대성이 심사를 알 것도 같았다. 좋은 자리라고 하니까 욕심이 나서 그러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몇 번 대성이와 싸우다 지친 전주댁은 다시 풍수를 앞세웠다. 그리고 풍수는 전주댁의 기대대로 묏자리를 되찾아왔다.

어쨌든 이런 복잡다단한 과정 끝에 고 임춘복 여사는 다사롭고 고운 햇빛이 드는 선산에 자리를 잡고 누울 수 있었다. 그 후 전주댁은 장수댁과 논의해서 고 임춘복 여사 묘 앞에 상석을 놓고, 비석도 세워 놓았다.

"세상에 이런 효녀가 또 있을까, 잉?"

이후 동섭은 전주댁을 향해 장난삼아 한 번씩 빈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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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문학세계》에 「매직을 훔친 아이」가, 《문학과 창작》에 「리오그란데를 찾아서」가 당선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으로 「장례식에의 초대」, 「로터리에 앉아 있던 새」 해양문고 「우리 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 에세이 <지금은 별을 보며 한걸음 내디딜 때>가 있다. 현재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양산에 거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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