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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04 13:06최종 업데이트 04.03.04 14:50

<장편연재소설> 무대일가 140회

"어찌된 일인지 자세히 좀 말씀해 보세요."

이번 일의 발단은 영수가 밥상을 들고 아랫방으로 가는 것을 본 전주댁이 인자 마누라한테 밥까지 갖다 바치냐, 고 조롱한 것 때문이다. 영수는 성질 급한 닭처럼 흥분해서 어머니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모퉁이로 끌고 갔다.

"가만히 있어, 가만히 안 있으먼 쳐죽일 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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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잡힌 전주댁은 금방이라도 죽일 것 같이 눈을 부라리며 말하는 아들에게 질려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임실댁이 집안에 들어왔다.

"둘이 거기 서서 뭐해?"

영수는 전주댁을 옷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영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억지 웃음을 띄우며 아랫방으로 되돌아갔다.

전주댁의 마른 볼 위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경수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서너 차례 고개를 저었다.

"밥이나 먹고 나서 말해도 될 것을 애 밥도 못 묵게……."

동섭은 분위기를 바꾸어볼 셈으로 경수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학교는 잘 다니고 있냐?"

"학교 졸업하면 방송국에 취직할 생각입니다."

"그럼, 뭐가 되는 거냐? 아나운서가 되는 거냐?"

"아직 무엇이 될지는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응, 그래! 어서 묵어라."

그 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영수가 들어온다. 동섭은 장남의 얼굴을 본 순간 가슴이 파르르 떨린다. 내가 저 자식을 어찌 내 맘대로 한다는 말인가.

"그래, 너 왔구나! 별 일은 없고?"

경수는 일어서려다 영수의 제지에 다시 앉는다.

"그간 별일 없었습니까?"

"자, 어서 밥 묵고 이야기해라."

동섭은 또 다시 가슴이 떨릴 것 같아 영수를 똑바로 보지 못한다.

"그래, 밥 먹고 이야기해라."

영수는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린다. 동섭은 가능하면 영수 쪽은 보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다. 자식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영수는 세 사람이 밥을 먹는 동안 묵묵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한 번씩 웃음을 터트린다.

이윽고 식사가 끝났다. 동섭은 담배를 꺼내려다 영수가 앞에 있다는 생각에 도로 주머니에 밀어 넣는다. 언젠가 영수는 아주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방에서 웬 담배냄새가 나는지, 원! 하며 혀를 톡톡 찼다. 이후로 동섭은 방에서 담배 피우는 일을 삼가고 있다.

"형수님은 잘 계시지요?"

식사를 끝낸 경수가 돌아앉는다.

"응, 그래."

영수는 목소리에 형다운 무게를 얹어 짧게 대답한다.

"형한테 한 가지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경수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말의 속도도 빨라져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영수는 명랑한 데다 빙글빙글 웃는 빛이다. 상을 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동섭은 자리에 눌러 붙어 있기로 작정한다.

"그래, 뭔데 말해 봐!"

"아버지, 어머니가 형 때문에 도저히 집에서 살수가 없대요. 어찌된 일입니까?"

그 순간 영수의 얼굴이 참혹할 정도로 일그러진다. 동섭은 당혹함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제 한바탕 치고 박고 난리가 나겠군. 적어도 그는 이렇게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무거운 정적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다.

그런데 그 때 어린아이가 엉엉 울 때와 비슷한 울음이 영수에게서 터져 나온다.

어안이 벙벙해진 동섭은 영수와 경수를 번갈아 쳐다본다. 경수가 주먹을 날렸나. 당황한 경수의 얼굴은 보니 분명 아니었다. 전주댁의 얼굴에도 난감해 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이 때였으리라. 또 다른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그것은 경수의 울음소리였다. 영수의 것과 달리 구슬프기 짝이 없는 집 잃은 염소의 울음이다.

"왜 우리 집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전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자 무색해진 동섭은 돌아앉는다. 정말 이상하게 되어버렸어. 문득 그는 두 사람이 부러워진다. 나도 이렇게 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간 그의 감정은 눈물을 끌어올릴 정도로 빠르고 격렬하게 솟아오른 적이 없다.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서 괭이나 도끼를 집어 든 적은 있었지만. 그의 감정은 늘 다른 사람의 것보다 느렸고 분명한 배출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쉽게 노하지만 쉽게 울 수는 없다?

오랫동안 두 사람의 울음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을 진동시켰다. 두 울음소리 중 먼저 그친 것은 아이가 우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한바탕 울어 젖힌 영수는 스스로 방을 걸어나간다. 경수의 울음도 곧 그쳤다.

"클 때는 그래도, 그 놈이 삼형제 중에 제일 순허고 착헌 놈이었는디……."

영수가 사라진 방문으로 눈길을 주며 전주댁이 푸념했다. 이 말에 대꾸를 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빠져 있다. 잠시 후 전주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경수도 뒤를 따른다. 경수가 전주댁을 위로해 주기 위해 나간 것이라 생각한 동섭은 새마을(담배)을 꺼내 불을 붙인다. 그런 후 방문을 열어 젖힌다.

마루에 걸터앉은 전주댁의 가냘픈 어깨와 바위처럼 큼직한 경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전주댁은 약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 것이 옥잠봉에서 솟아오른 달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달, 달이라는 생각에 동섭은 마루로 나간다. 그는 조금 전에 전주댁이 보았고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생각을 품고 바라보고 있을, 막 보름을 지나 이지러지기 시작한 달을 보았다. 순간 그는 달의 인력에 의해 바닷물이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해냈는데 문득 인간의 운명도 달에 의해서 조종되는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달이 차 오르고 이지러지기를 반복하듯 인간 개개인이나 집안이나 국가도 그것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그 때 실오라기 같은 것이 달 속에 나타나더니 검은 무늬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것은 계수나무 같기도, 토끼 같기도, 선녀가 산다는 달의 궁전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워낙 빠르고 연속적으로 모양이 바뀌었기 때문에 한 가지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얼마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전주댁이 입을 연다.

"이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좀 알 것 같은디… 그래 미립이 나먼 사람이 죽을 때가 가까진다드만……."

"제 생각에도 한 집에 살면서 이렇게 사시느니 차라리 이 동네를 떠나 다른 데 사시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경수의 말에 동섭은 한숨을 푹 내쉰다. 누군가가 이 집을 떠나야 한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나갈 차례였다. 전주댁도 덩달아 한숨을 내쉰다.

"그 동안에는 저러다가 좋아지겠지 허는 맘도 있었고 낯설고 물 설은 타동네 가서 살라고 생각허먼 눈물이 먼저 쏟아져서 그리도 못 허고 있었는디, 요새 며칠 들어서 내가 그 놈을 못 젼디서 다른 데로 가야겠다고 생각은 허기는 했제. 해도 내가 저 놈을 저렇게 내뿌리두고 가먼 되겄냐?… 자식은 부모를 버리는 일은 있어도 부모가 자식을 버리든 못 헌다."

"그래도 어떻게 사시려고?"

"이보다 더 헌 일도 여지까지 젺고 살았는디, 자식 땜시 고향을 떠나먼 그 놈은 무슨 낯을 들고 여그서 살겄냐. "

전주댁의 말에 동섭도 거들고 나선다.

"그래, 저 놈도 저리 우는디, 없었던 일로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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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문학세계》에 「매직을 훔친 아이」가, 《문학과 창작》에 「리오그란데를 찾아서」가 당선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으로 「장례식에의 초대」, 「로터리에 앉아 있던 새」 해양문고 「우리 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 에세이 <지금은 별을 보며 한걸음 내디딜 때>가 있다. 현재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양산에 거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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