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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날이 왜이리 가문가 모르겄어?"
자리에 누운 동섭은 파리똥이 앉아 더러워진 천장을 보고 있다. 등을 돌린 전주댁은 모로 누워 있다. 농사에는 물이 필요하고 그것은 곧 비를 의미한다. 비는 이 지방에 적절히 내린 적이 거의 없다.
가문 날씨가 내내 이어지다가 7월에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그런 뒤 다시 가물었다. 특히 3∼4년 주기로 심한 가뭄이 이어졌다. 월암에서는 산 정상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청솔가지를 태우는 대신 여자들을 동원했다.
여자들의 음기로 하늘의 양기에 대항하는 주술이다. 온 동네 여자들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쌀을 까불 때 쓰는 키를 들고 저수지 둑에 모였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둑에 모이면 의식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고 소금 얻으러 가는 오줌싸개 아이처럼 머리에 키를 썼다. 그런 뒤 하늘을 향해 일제히 맹렬하게 우는 것이다. 의식을 끝내고 난 뒤 전주댁은 몇 번이나 비가 쏟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정 가물먼 기우제라도 지내야 되겄제."
"그러먼 또 저녁에 여자들이 챙이를 쓰고 수리잡 가에 가서 우는가?"
"그렇게 궁금허먼 직접 와서 보제, 왜?"
"아니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저수지 물이 다 빠지고 해서 허는 말이제."
동섭은 '수리잡안'으로 갈 때 본 저수지를 떠올린다. 월암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그는 몇 번이나 가뭄을 겪었지만 이번처럼 저수지가 심하게 바닥을 드러낸 것은 보지 못했다. 물이 차 있을 때의 저수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처럼 보이지만 바닥을 보고 나면 그런 신비는 사라져버린다. 거기에는 지옥에나 있을 법한 회색 뻘이 갖가지 죽은 것들을 품고 있다.
일제시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붉게 녹이 슨 연장, 홍수 때 상류에서 내려온 옷가지와 썩어서 검게 변한 나무 등 버려지거나 쓸모 없어진 것들이다. 저수지가 군데군데 바닥을 드러내면 고기들은 물웅덩이에서 흥부네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근방의 낚시꾼들은
"이 놈의 데도 살 곳이 못 되는 갑서."
동섭이 영수로 인해 마음 상한 분풀이를 하자, 전주댁이 당치도 않다는 듯 받는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 어디를 나가? 젊었을 때라먼 모르지만."
"아랫방 저 놈은 한 번 나갔으먼 자리를 잡고 살았으먼 되는디 뭔 지랄 헌다고 돌아와 가지고……."
영수가 이삿짐이 실린 트럭을 몰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자 동섭 내외는 모른 체하고 방에 들어앉아 있었다.
동섭은 한 번 마음을 정한 후 다시 그것을 번복하기 위해서는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종류의 사람이었고, 변덕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일은 정말 황당했다. 하지만 늘 자신감이 넘쳤던 전주댁은 달랐다.
그녀는 현실을 거부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안 된다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서 판단을 내리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유형이었다.
영수가 돌아온 이후 약 한 달간은 별다른 분쟁이 없었다.
"지 놈도 낯가죽이 있으니까 옛날처럼 못하는 것이겠지."
전주댁의 말에 동섭은 동의할 수 없었다. 영수가 짐을 싣기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었다. 앞으로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얼마 지난 후 그것은 사실로 나타났다. 영수 내외는 두 사람을 숫제 부모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영수는 어찌 보면 마을 동쪽길 모퉁이에 사는 맹 양반의 아들 맹철구와 닮았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맹 양반을 닮은 맹철구는 약간 모자라거나 바보처럼 보였다. 그래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고 이용당하기도 했다. 그러던 맹철구가 집안에서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약간 철이 든 고등학생 무렵이다.
맹철구는 동생들에게 지겟작대기를 휘두르고 부모에게 돈을 내 놓으라고 협박을 일삼는 폭군이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동네에서는 말이 많았지만 두고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사회적인 일이 아니라 가정사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맹 양반내외는 철구를 결혼시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고작 육십을 넘긴 나이였다. 동네 사람들은 젊었을 때의 고생이 두 사람을 일찍 죽게 했다고들 했다. 하지만 전주댁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식과의 불화를 겪기 전까지만 해도 동섭은 맹 양반네 일쯤이야 재미있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었다. 그까짓 일 가지고 뭘 그래, 라고 등한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막상 당사자가 되자, 그는 그까짓 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일은 수시로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또 다시 그 상황이 재연되고 있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두 사람을 위해 싸워온 명자도 약간 냉담해져서 전화로 하소연을 시도하는 전주댁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었다.
명자는 며느리 흉을 보는 전주댁에게 콩가루 집 안이 되지 않으려거든 이제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그런 행동은 형제간의 우애를 망칠 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늘 한 목소리만 내고 살아. 이런 생각을 하며 전주댁은 생각 끝에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던 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끝나자, 전주댁은 주말에 경수가 온다고 동섭에게 알려주었다.
경수가 오기로 한 토요일이 되자, 전주댁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며 동섭에게 몇 가지 주문을 한다. 경수가 올 때까지 저녁을 먹지말고 기다리자는 것, 경수에게 지금까지의 자잘한 일을 말해도 막지 말라는 것이다. 동섭은 군말 없이 동의한다.
경수가 마당에 들어서서 어머니, 하고 부른 것은 저녁 아홉 시경이었다. 이 소리를 듣자마자, 전주댁은 방문을 열고 뛰어나가 막내아들을 맞아들인다.
"어서 들어 와라! 너 오면 먹는다고 기다리고 있다."
전주댁은 경수의 손을 잡고 잠시 눈시울을 적신 후 저녁상을 가지러 부엌으로 갔다.
"그래, 어서 와라."
동섭은 과연 영수를 물리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 몇 번이나 경수의 얼굴을 쳐다본다. 경수는 앞머리가 숱이 적어 대머리의 징조가 보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약간 치켜 올라간 눈에서는 힘과 광채가 느껴진다. 곧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세 사람은 둥근 상을 앞에 두고 식사를 시작한다.
"우리만 먹어요?"
경수가 수저질을 하다 말고 방문을 쳐다본다.
"아래채 사람들은 따로 채리서 묵은께 우리끼리만 묵으먼 돼."
전주댁이 숟가락 든 손을 내저었다.
"어머니는 참, 밖에서 들으면 어쩌라고?"
"듣든가 말든가. 내가 어디 못할 소리하는 거냐. 세상에 어제는 그 놈이 내가 뭐라고 해로운 소리를 했다고 때리 죽일 것 겉이 흐더랑께. 그 때 마침 누가 찾아왔은께 망정이지 잘못됐으먼 내가 그 자리에서 죽었당께."
"아니, 그런 놈을 가만 둬, 그 자리서 때리 죽이부리제."
흥분된 동섭은 당장 어떻게 할 것처럼 눈을 크게 뜬다.
"말만 허지 말고 어떻게 해 봐, 그러먼. 세상에 자식 하나 맘대로 못하고도 무슨 애비라고… 이러다가 내가 말라 죽겄어."
정곡을 찔린 동섭은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누차 이런 말을 전주댁으로부터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