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법연수원이 작년 11월 파병반대 연대서명을 주도했던 연수원생들에게 징계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반발을 사고있다. 사진은 강의를 듣고 있는 사법연수원생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사법연수원이 작년 11월 파병반대 연대서명을 주도했던 연수원생들에게 징계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반발을 사고있다. 사진은 강의를 듣고 있는 사법연수원생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법연수원(원장 홍일표)이 지난해 11월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다는 골자의 의견서를 연수생 연대서명으로 청와대에 제출했던 사법연수생에 대해 징계를 내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사법연수원은 지난해 말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라크 파병 연대서명 및 의견서 제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연수생 1명에 대해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또한 18명의 연수생에 대해서는 서면 및 구두 경고 조치했다.

사법연수원 총무과의 한 관계자는 29일 "징계위를 통해 연대서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한 명의 연수생은 국가공무원법 57조(복종의 의무)와 66조(집단행위 금지)를 위반한 것으로 결정돼 지난해 12월 이같은 조치가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연수원 측이 징계 근거로 든 국가공무원법 57조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소속상관의 직무상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66조는 '공무원은 노동운동 기타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감봉조치는 파면과 정직에 이은 수위로서 연수원측에 따르면 사법연수생이 감봉 이상의 징계를 받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연수원은 연수생의 정식 징계에 대해서는 대법원 산하의 모든 행정처에 송달한다.

민변 "국가공무원법 근거한 징계는 적절치 못해"

하지만 연수원 측의 징계와 근거에 대해 논란이 일고있다. 최병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이번 징계가 법적으로 부적절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 회장은 "연수원측이 근거로 든 국가공무원법 57조는 공무원이 직무상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을 경우에, 66조는 공무 수행의 성실성이나 공무의 의무를 위반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한 규제"라며 "당시 연수생들의 의견서 전달을 이들 근거로 징계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또한 최 회장은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이를 보장하는 데 앞장서야 할 예비 법조인이라면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라며 "연수생들이 개인 명의로 이러한 입장을 표명한 일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징계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법연수생 자치회의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도 의견이 올라왔다. 이 게시판을 통해 한 연수생은 "헌법·국제법을 전공하고 국제정치학 학위를 얼마만큼 따야 도대체 위헌이란 의견을 낼 수 있느냐, 정부 정책이라면 국가의 공무원이란 자들은 침묵해야만 하나, 의견서 내러 가는데 결재를 받거나 먼저 보고를 해야 했느냐"며 연수원 측의 징계 조치를 냉소했다.

또 다른 연수생도 "당시 서명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연수원 측이 의견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일을 집단행동으로 단정하고 징계를 내린 것은 '끼워맞추기식 징계'라고 생각된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지난해 연수생들의 청와대 의견서 전달 계획이 언론을 통해 미리 보도되면서 연수원 측은 이를 금하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연수생들은 애초 계획대로 연수생 561명의 연대서명이 담긴 의견서를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에 전달했다.

당시 사법연수중이었던 33기(2년차)와 34기(1년차) 연수생들은 지난 해 11월 10일부터 의견서를 회람한 뒤 33기 120여명, 34기 440여명이 연대 서명했다. 사법연수생은 모두 1900명 정도로 서명에 참여한 숫자는 전체의 약 25%에 해당된다. 별정직 공무원 신분인 연수원생들이 예민한 사회 현안에 집단 의견을 표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당시 큰 관심을 모았다.


관련
기사
사법연수원생 561명 '파병반대' 의견서 청와대 전달

다음은 지난해 11월 12일 사법연수생들이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에 전달했던 이라크 파병에 대한 의견서와 배경설명문 전문.

<의 견 서>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희들은 법률전문가로서의 이론과 실무를 연구·습득하고 높은 윤리의식과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함양함으로써 법치주의의 확립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법원조직법 제72조의2) 수습을 받고 있는 사법연수생들입니다.

저희들은 이번 이라크 파병 논쟁이 국가 최고 지도 원리인 헌법과 법치주의의 관점에서의 면밀한 검토 없이 이익의 정도에 대한 논쟁으로만 치닫고 있는 것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미흡하지만 아래와 같은 저희들의 법적 의견을 제출합니다. 첨예한 국가 중대사를 헌법적 원칙과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결정해가는 계기를 만드시기를 기원합니다.

1. 미국과 영국, 점령군의 이라크 침공은 헌법 제5조 제1항에 규정된 '침략전쟁'입니다.

국제연합 헌장은, 제42조와 제51조에서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르거나 자위권의 행사에 따른 무력행사만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지난 3월 19일, 안전보장이사회에 이라크에 대한 무력제재를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 채택을 요구하다가, 프랑스와 중국 등의 반대에 부딪혀 이를 실현할 수 없게 되자 결의가 없는 상태에서 돌연 일방적인 침공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이라크 침공 직전까지 이라크의 무기폐기는 안전보장이사회 사찰단의 감시 아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무력행사를 할 것이라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도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자위권의 행사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1974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의결된 '침략에 관한 정의' 제3조 제1항의 명문에 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라크 침공은 헌법 제6조 제1항의 국제법 존중주의와의 조화적 해석에 따를 때 헌법 제5조 제1항의 '국제평화주의'를 침해하는 침략전쟁입니다.

2. 파병 결정은 헌법 제5조, 제74조 제1항 위반입니다.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것은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 제5조 제1항의 명문에 반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미 지난 4월 17일 공병대와 의무대를 파병한 것도 전쟁 수행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를 금지하고 있는 '침략에 관한 정의' 제3조 제7항의 명문에 반하기도 합니다. 특히 파병 부대로 하여금 헌법 제5조 제2항의 '국가 안전보장 및 국토방위 의무'에 포함되지 않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74조 제1항 및 국군조직법 제6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의 범위를 벗어납니다.

3. 파병되는 군인 및 현지와 국내의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합니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연일 점령군에 대한 테러 공격과 이라크 국민들의 시위로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점령군의 일방적인 종전선언 이후의 점령군의 사상자 수가 오히려 그 이전의 사상자 수를 넘고 있습니다. 국군을 파병할 경우에도 수일이내에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 예상되고, 이러한 위험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것입니다. 일방 당사자의 요구로 군사적 지원을 하는 경우, 타방 당사자에 의한 현지와 국내의 국민들에 대한 무력 공격의 위험성이 증대시킬 것도 예상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상 국군통수권의 범위를 벗어나서 국군을 파병하고 그들에게 점령군의 지휘와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의 핵심적 내용인 평화적 생존권, 즉 무력충돌과 살상에 휘말리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국민들을 위 전쟁의 일방 당사자국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한,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위험성의 증대는 그 개연성이 어느 정도 이건 상관없이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합니다.

더군다나 대 테러전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이라크 국민들과 총을 겨누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국군에 의한 대 민간인 반인도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 우리나라 국회가 2002년 11월 8일 비준한 로마규정에 의하여 파병군인은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되어 형사책임을 지게 될 수 있습니다.

4. 국제연합결의안 이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2003년 10월 16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된 결의안은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에게 12월 15일까지 헌법 제정과 새 정부 구성 일정의 제시를 의무화하고 다국적군을 구성하여 그 과정에서 사회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이라크를 일방적으로 침공한 점령군의 통치권과 지휘권을 빼앗지 않는, 모순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명백한 헌장 위반인 침공행위 자체와 그 이후 지금까지의 점령군 일원으로서의 파병행위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그 결과 점령군은 5월 1일 일방적인 종전선언 이후 행사하고 있는 모든 권한을 위 결의안 이후에도 그대로 행사하고 있고, 특히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모든 결정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 결의안 채택 이후로 실제로 파병을 한 국가도 전혀 없어, 이미 다국적으로 이루어진 점령군의 실질과 형식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파병은 현재의 위헌적 상태를 해소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그 자체 역시 위헌의 소지가 있습니다.

5. 우리 국민 한명이라도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총을 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헌법 제66조 제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국군에게 이라크 국민들을 상대로 총을 들도록 명하는 것은 위와 같은 헌법적 국제법적 문제가 있으며, 이미 발생한 위헌적 상태를 심화시키고, 대통령의 헌법수호책무에도 반합니다.

이어지는 크고 작은 국정업무로 바쁘신 와중이지만, 헌법적 의견과 국민의 여론을 두루 경청하시어 현명한 판단을 하시길 기원합니다.

2003. 11. 12.
사법연수생 제33·34기 561명 드림.

첨부자료
1. 헌법 전문, 제5조, 제6조, 제10조, 제66조 제2항, 제74조
2. 국군조직법 제6조
3. 침략의 정의에 관한 결의(국제연합 총회 결의)
4. 국제연합 헌장 제42조, 제51조
5.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제8조
6. 국제연합 2003년 10월 16일 결의안 제1511


<의견서에 부쳐>

"파병문제 역시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와 시스템 구축의 예외일 수 없습니다."

국가의 생존의 문제라는 논리는 위험한 것입니다.

파병을 거부할 경우 우리 국가 공동체의 생존이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이 문제에 있어서는 법치주의가 유보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우리 사회의 모든 원리와 가치를 퇴행하게 하고,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어렵게 합니다.

이 위험한 논리는 현실의 면밀하고 신중한 검토를 근거로 하여 국가가 명백히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의 위와 같은 주장 어디에도 이러한 치밀한 상황 분석은 없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합의도 없습니다.

정말 파병이 경제적, 외교적 이익의 문제입니까.

중동 시장에서의 영향과 국내 외국 자본에 미칠 영향, 미국이 당장 외교적으로 우리나라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와 아랍·유럽 국가들이 국제 정치 무대에서 우리나라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이러한 검토들을 통하여 파병문제의 답을 내릴 수 있습니까. 현재의 전투병 파병문제는 각국 국민들의 생명을 건 무력 분쟁에서 우리가 당사자가 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헌법은 국제적 무력 분쟁에 대하여 국제평화주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경제, 외교적 이익은 대한민국 헌법상 국제평화주의 원리를 넘어서는 헌법적 이익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국제평화주의 원리는 바로 이러한 상황의 해결 기준입니다.

헌법 원리는 이익 충돌 경우의 해결 기준을 제시하는 국가공동체의 운영원리이며 국민들의 최소한의 합의입니다. 헌법 원리를 무시하는 이익 논쟁은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의 성숙도를 30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일 뿐입니다.

헌법 원리는 법과 시스템의 출발이며 그 핵심입니다.

법치주의는 법과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 속에서만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신뢰는 국가가 스스로의 결정을 이에 근거하여 내리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줄 때에만 형성됩니다. 더군다나 헌법 원리는 이러한 법과 제도의 근거이며 그 일체성을 유지하는 기준입니다. 헌법 원리를 거스르는 국가 행위 속에서 국민들의 신뢰는 없습니다. 파병문제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러한 판단 아래, 우리 사회의 예비 법조인으로서의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며,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께 저희들의 의견을 제출합니다. 경청해 주십시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