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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10 06:28최종 업데이트 03.11.10 10:48

<연재소설> 민나 집시데스-후기

연재를 마치며

마지막 장을 쓰면서 나는 일년 전 어느 겨울날, 런던 시내에서 목격했던 일을 떠올렸다.

런던에서 가장 복잡한 거리의 하나인 리전트 스트리트에서 아기를 옆구리에 끼고-아기를 안은 그들의 모습은 으레 그렇게 보인다- 걷고 있는 한 여인을 보았다.

여인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사냥개에 쫓기는 여우새끼처럼 불안한 눈초리로 사방을 쉴새없이 두리번거리며 옥스포드 서커스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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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음산한 겨울철에 먼 북쪽 나라인 이곳에서 그들과 마주쳤다는 사실이 좀 신기하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늘 어디든 떠돌아다니는 그들이고, 또 몇 해 전 이태리에 살았을 때 로마의 거리에서 지겹도록 보아온, 사람들이 지나가는 개만큼도 여기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나 갈길 몰라 하듯이 길 한가운데 멈춰 서서, 퀭한 눈을 들어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보고 서 있다가는 엄청난 인파 속으로 파묻혀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밀려드는 자책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찡해졌다.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문득 하루하루의 바쁜 일상 속에서 지난 몇 년간 잊고 지낸 그들과의 약속-비록 나 혼자만의 약속이었지만-을 기억해내곤 가슴을 파고드는 자괴감에 회한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소설을 쓰는 내내 다른 어떤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등 뒤에서 누군가가 이야기를 불러주는 것처럼 생각은 끝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데……. 내가 말하기로 약속했던 그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망각의 바다를 건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서 생명으로 태어나게 해야 하는데…….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의 손가락은 무능하기만 하였다.

지난 세월에 빚진 듯한 심정으로, 이것이 마치 나의 비밀스런 약속이자 숙명이기라도 한 것처럼 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키워 왔던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잠 못 드는 형벌의 또 다른 시지푸스(sisyphus)가 되어 무엇에 이끌리기나 한 듯 한밤에 홀로 일어나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흠칫 놀라기도 했다.

어둠의 심연을 무겁게 흐르는 깊은 밤은 이곳 영국에서 이태리로, 헝가리와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그리고 지구의 반대편인 한국과 일본까지 시공을 초월해서 하나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피곤으로 의식이 몽롱해질 즈음이면 밤은 소리 없이 두터운 옷을 벗어 던지고, 새벽이 또 다른 옷을 입고 다가와 그날의 일용할 삶을 위하여 얼굴에 밝은 분을 바르고 있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세계화가 가파르게 진행될수록 뒤쳐지고 물러나는 힘없고 약한 민족들을 바라보면서, 왜 우리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이기심과 개인주의의 화신, 황금만능·물질지상주의에 밀려서, 인고의 세월의 무게가 힘에 겨운 듯 먼 산을 향하여 비칠비칠 걸어가는 우리 어버이들의 늙고 초라한 뒷모습을 떠올리게 되는가?

이 소설을 쓰는 것은 그들 집시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한 인간으로서의 해산이었다.

지난 몇 년간 배출구를 찾지 못해 안으로만 쌓여오며 오랜 세월동안 빚쟁이로 쫓겨 왔던 생각의 응어리들이 아프고 곪아 터져 흘러내리는 고름과도 같이…….

하찮은 나의 글을 통하여 그들의 삶과 죽음과 고통, 그리고 꿈에 대해서 세상에 알리겠다는 약속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이 글을 마침으로써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있었던 편두통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자유롭게 지구 끝까지 길을 떠나고 싶다.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를 고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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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민나 집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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