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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0월 20일 방위 성금을 모았다. 물론 이것은 연례 행사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크리스마스 씰 판매, 사랑의 열매 모으기, 불우이웃 돕기와 함께 이 방위 성금을 걷는 일을 한다.

줄을 잇는 성금 모금 속에 방위 성금은 수십 년째 해오는, 빠지지 않는 일이었다. 25년 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교사가 된 현재까지 거르지 않고 낸 것이 바로 이 '국군 장병 위문을 위한 성금'인 방위 성금이다.

국토 방위에 헌신하는 국군 장병?

물론 이전과 달리 몇 해전부터는 학교가 아이들한테 방위 성금을 낼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올해도 서울시 교육청은 10월 15일자 공문에서 성금 모금 대상을 교육 기관 임직원으로 국한시켰다. 다음은 이 공문의 내용.

"국토 방위에 헌신하고 있는 국군 장병들의 노고를 위로·격려하기 위해 국군 장병 위문 사업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올해도 위문 성금을 자율적으로 모금하도록 하는 내용이 제 44대 국무회의(10월 7일)에 보고되었고, 교육부에서도 협조 요청이 있어 위문금을 모금하고자 하니 협조해 주시기 바란다."

공문을 읽은 나는 동료 교사 몇몇과 함께 방위 성금을 내지 않았다. 방위 성금에 대해서는 수 십년만의 첫 번째 일탈 행위인 셈이다. 왜 방위 성금을 내지 않는 일에 나와 동료들은 뛰어들었을까.

침략군 논란 속에 방위 성금을 낼 수 있나

무엇보다 '이라크 추가 파병' 때문이다. 공문 말마따나 '국토 방위에 헌신하고 있는 국군 장병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리낌 없이 내온 것이 방위 성금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국토 방위에 헌신해야 할 우리 국군 장병들이 침략군 논란이 이는 미군들 밑에서 다른 민족에 총부리를 들이대는 일이 코 앞에 다가왔다. 이런 전쟁에 내가 몇 천원이라도 방위 성금이란 이름으로 보태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굶주린 이라크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의 정성스런 빵일까, 아니면 총을 든 수천 명의 우리 병사들일까. 한국 정부는 추가 파병 약속과 더불어 올해 6천만 달러를 포함, 모두 2억 달러의 이라크 재건 비용을 미국에 공약했다는 소식이다(< LA타임즈 > 보도, <한겨레신문> 재인용). 침략국 논란이 이는 미국에 돈까지 내겠다는 공약까지 하는 걸 보면 돈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이런 현실을 떠올리면 내가 이전에 낸 몇 천원 또는 몇 만원의 방위 성금이 부끄러울 뿐이다.

정부는 방위 성금 공문 보낼 자격 있나

현재 국회위원이 된 유시민씨는 1984년 그 유명한 항소 이유서에서 '방위성금'이란 단어를 써 가며 당시 정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현정권은 유신 독재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와 민주 회복을 낙관하고 있던 온 국민의 희망을 군화발로 짓밟고, 5·17 폭거에 항의하는 광주 시민을 국민이 낸 세금과 방위 성금으로 무장한 '국민의 군대'를 사용하여 무차별 학살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피 묻은 권력입니다."

2003년 다른 민족에 총부리를 겨누는 일을 군사 작전식으로 단칼에 결정한 현 정권은 과연 어떨까. 이들이 방위 성금을 내라고 공문을 보낼 자격이 있는 것인지 나는 의심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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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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