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제1회에서 현재 유통되고 있는 추사작품의 문제점과 '완당평전'의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제2회 ‘고서화 감상의 바른길’을 통하여 고서화를 감상하는 올바른 태도와 방법을 제시하였다.
제3회‘추사서도의 이해’에서 지금까지 추사연구의 잘못된 점과 그 원인들을 지적하고, 총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사선생의 서도(書道)와 작품에 접근을 시도했다.
제4회 '작품설명'부터는 <완당평전>(유홍준 저, 학고재 출간)에서 추사선생의 작품만을 도록순차대로 선별하여 필자의 감평을 정리, 기술하기로 한다...<필자 주>

▲도1. <선면묵란>, 규격, 소장처 미상 - 위작 ⓒ 이영재

▲도2. <인정향투난>, 개인소장 - 진작 ⓒ 이영재
도 110. <선면묵란>, 규격, 소장처 미상 - 위작
전도 6 ‘부작난(不二禪蘭)’이나 필자 장 ‘인정향투난(人靜香透蘭)’과 비해보면 자명해 진다. 즉, 난엽중 ○한 부분이 표한 대로 두꺼우며 꽃도 화점(花點)이 매우 다르다.
그러나 ‘인정향투’ 제자(題字)와 ‘추사’ 관서는 틀림없는 것으로 보이니 이상하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크게 뜨고 감정해보니 화제, 관서 모두 고무나 나무 등으로 모각하여 찍고 시대를 내기위해 마구 비비고 또 비벼댄 흔적이 훤하게 보인다. 우수한 위작이다.

▲도3. <서산대사 화상당명 병서>행서첩, 각 20.7 x 18.9, 20.7 x 43.6cm, 소장처 미상 - (타인, 他人) 연구작 ⓒ 이영재
도 128. <서산대사 화상당명 병서>행서첩, 각 20.7 x 18.9, 20.7 x 43.6cm, 소장처 미상 - (타인, 他人) 연구작
추사체로 잘 썼으나 작자, 배자, 행획에 다소 다른 점이 많다. 저자(유홍준) 설명에 추사 중년 대작이라 했는데 갑인년 4월이면 추사선생 69세시 말년이니 추사 작품이 아님이 명백하다.
필자가 감상해 보건데 추사의 제자 침계 윤정현(梣溪 尹定鉉)의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고 본다. 후도 312 “윤정현 황초령진흥왕순수비이건비문”과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같은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침계 윤정현은 추사보다 7세 아래로 이때가 갑인(甲寅)년이면 62세 시 작품이다. 연구해보자.

▲도4. <옥추보경 중각본 서>(부분), 1838년 중각본, 영남대 도서관 - 진작 ⓒ 이영재
도 130. <옥추보경 중각본 서>(부분), 1838년 중각본, 영남대 도서관 - 진작
추사 50대 초반 작으로 보이는 대표작이다. 추사체의 완성이 거의 보이는 작품으로 옹체나 동기창체, 유석암체 등 어느 뚜렷한 자체에 치우친 획이 보이지 않는 추사 특유의 행획이 서슴없이 보이기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활어가 물 속에서 춤추듯 하는 부드러우면서 힘이 넘치는 획이다. 옹방강, 동기창, 유석암체를 섞어서 작품한 30, 40대시 작품들과 비교하여 볼 때, 작자와 배자가 한층 더욱 성숙되어 상, 하, 좌, 우 전체적 어울림이 더욱더 잘 어우러진 50대 수작 중 수작이다. 여의주를 얻으려고 용트림하는 듯한 작품이다.

▲도5. <문학종횡>행서대련, 각 130.8 x 30.8cm, 부산시립박물관 - (위모)연구작 ⓒ 이영재
도 145 <문학종횡>행서대련, 각 130.8 x 30.8cm, 부산시립박물관 - (위모) 연구작
첫째로 획이 약하며 활어가 물속에서 춤추듯 하는 율동미 넘치는 획이 아니다. 작자, 행획으로 봐서 우봉 조희룡을 구습한 작자의 위모작이다.
특히 ‘광(光)자’의 ‘○’부분 획과 전도 144 협서 ‘야운선생’의 ‘선(先)’의 ‘○’ 획과 비교해보면, 이 위작품의 ‘광’자는 어딘지 균형을 잃은 획같이 안정감이 부족하고 ‘야운선생’의 ‘선(先)’은 균형 잡힌 듯 안정감을 준다.
호암미술관 장 ‘천동완당(天東阮堂)’ 관서의 ‘묵림선생(墨林先生)’의 ‘선(先)’, 전도 111 ‘동몽선습(童蒙先習)’의 ‘선(先)’자와 비해보아도 이 위작 ‘광(光)’자와 같지 않으며, 다만 같은 위작품인 후도 295 ‘결성주광(結成珠光)’의 ‘광(光)’과는 꼭 같으니, 위작을 보고 위작한 느낌이다.
‘단파(檀波)’로 관서된 좋은 작품을 보지 못하였으며 ○한 자의 획이 약하다. 활어가 물속에서 춤추듯 하는 율동미와 절도 있는 획 전도 144와 비교해보면 확연해진다. ‘소재(蘇齋)’의 ‘재’자를 ‘○’로 쓴 것도 이상하다.
추사 아니 권돈인도 좀처럼 ‘재(齋)’를 ‘○’로 작자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 도, 위작 146의 ‘재’자와 일치하니, 일소(一笑)로다. 전도 100 ‘천축고선생댁’의 ‘선(先)’자를 모방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