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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08 22:12최종 업데이트 03.03.09 10:17

검란(檢亂), 그리고 교육개혁

승자독식의 사회는 개혁되어야 한다

교육개혁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지금같은 구조로는 사실 교육개혁이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개혁이라는 게 돈들여 시설 고치고 기자재 늘리는 게 아니라면, 입시 과목에 사회를 넣을 것인가 과학을 넣을 것인가 비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기술적인 문제를 바꾸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 중시 풍조를 뜯어 고치지 않는 한 입시 제도를 어떻게 뜯어 고쳐도 사교육의 열풍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대를 없애면 될까?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될는지도 모르겠고 설령 이루어진대도 연고대가 그 자리를 메꾸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사실 입시 현장에서 서울대의 신화는 막이 내려가고 있다. 문과는 법대(경제,경영 및 기타 고시관련학과), 이과는 의대(치대, 한의대 포함)로 학과 중심의 개편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미 서울 공대의 위상은 수도권 웬만한 의대보다 낮아져 버렸으며, 복수지원의 영향으로 그 좋다는 서울대를 붙고도 포기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특히 인문대, 자연대 등과 같이 돈 안되는 학과는 합격자의 이탈과 추가 합격 등 입시 과정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이러한 변화는 오로지 간판만을 추구하던 지난날에 비추어 일견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솔직히 법대나 의대 공부가 재밌는 것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모든 이들이 전부 법, 의대 적성만을 타고나는 것도 아닐게다. 그런데 왜 예전 서울대가 우수학생들을 독식해 가듯, 우수 학생들이 법대, 의대로만 몰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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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의 경우는 고시라는 다음 관문이 있긴 하지만, 의대의 경우 졸업만 하면 이변이 없는 한 엄청난 소득과 안정된 직업이 보장된다. 고시에 합격한 법대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굉장한 사회적 지위와 두둑한 소득을 얻게 되고, 이는 결혼 시장에 내놓을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데 최고의 조건이 된다. 반면 나머지 대부분 학과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전공을 살려 취업할 길이 막막하기 그지 없다. 19살 때의 능력, 아니 수치로 나타나는 학과 성적과 그에 기반한 선택이 엄청난 차이를 몰고 오는 것이다.(남학생의 경우 병역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다.) 그렇기에 서울 공대를 다니다가도 재수, 3수하여 의대를 가려 하고, 문과 학생 대부분과 심지어 공대, 사범대 학생들도 고시 공부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손해를 끼치는지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 개혁 아니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사회 개혁의 실마리를 본다. 19살의 선택이나 약간의 차이가 너무나 많은 것을 좌우하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사회 구조를 타파하여 노력한 만큼, 혹은 능력만큼 얻는 비례의 원칙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370점 맞아서 의대 간 녀석은 한달에 1000만원씩 벌고, 360점 맞아서 공대 간 녀석은 취직 걱정에 몸부림쳐야 하는 현실을 깨자는 얘기다. 이래 가지고야 누가 이공계를, 인문-사회계를 가려 하겠는가.

그래서 당분간 소위 말하는 비대칭적 규제와 지원을 통해 불공정한 시장질서를 바로 잡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조계, 의료계에 대대적인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야 할 것이다. 의사, 변호사 선발 인원을 대폭 증원하는 것은 물론, 수입 개방 등을 통해 무한경쟁시켜야 한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패가망신"하게끔, 더 이상 의사나 변호사 자격증만으로 먹고 살 수 없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또한 세제 개혁과 투명한 집행을 통해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도 많이 내도록 한다면, 지금과 같은 집중과 독식의 구조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연공서열, 전관예우 등을 통해 능력없는 넘이 이름값으로 먹고 사는 구조도 깨야 한다. 반면, IMF 이후 숨이 막힐 듯 답답해져 버린 인문, 이공계열은 정부 지원 등을 통해 전공을 살리면서도 능력만 인정된다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먹고 살 길을 보장해 줘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지식인, BK21 등 돈 되는 지식만을 강조했던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철학은 무척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덕분에 인문-이공계열은 고사 위기에 처했고 상대적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쪽에 적성이 있는 사람도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다양성의 사회를 만들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인(특히 시장 경제 차원의 "상품성")이 아닌 자신의 소질과 적성, 취향과 능력에 따라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소위 검란이라 불리는 검찰 항명 사태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일찍이 일제시대부터 사람들이 의대, 법대를 선망해온 이유는 우리 나라의 법률, 의료 서비스가 너무 형편없는 수준이라 그런 쪽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대부분의 민초들은 그 형편없는 서비스를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감당해야 했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그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든 자식을 그런 끗발센 자리에 보냄으로써 자기 자신과 가족들만은 최소한 몰라서 손해보고 목숨도 잃는 그러한 일만은 막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던 부모의 염원이 과도한 교육열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법조 및 의료 개혁으로 상징되는 사회 구조의 개혁은 교육 개혁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상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인사 파동에 있어서 검찰의 항명과, 의약 분업 당시 의사들의 격렬한 반발에서 알 수 있듯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는 일시적으로 더럽고 냄새 나더라도 치워야지 덮어두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일단 문제를 인식한 이상 어영부영 덮어놓아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해결되지 않는다. 정권 초기의 파워와, 법적 도덕적 정당성,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이때가 개혁의 적기다.

덧붙이는 글 |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 합격한 당신들의 엘리트 의식,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또 검찰청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는 자부심도 알 것 같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잘 모르는, 사시 기수조차 낮은 것들이 개혁 세력이라며 혁명군처럼 자기 윗자리에 앉아 자신들이 절대적이라 믿어왔던 관행을 때려부수는 게 꼴같잖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시대가 바뀌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노무현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던 이회창을 이길 수 있게 해준 민심의 힘, 시대의 요청 - 그것은 "개혁"이다. 검찰은 개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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