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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06 22:15최종 업데이트 03.01.07 08:50

<장편연재소설>무대일가 114회

<4>

다음 날 창수는 하숙을 구하러 다닌다. 벌써 세 번째의 하숙인 셈이다. 하숙을 옮기려고 하자 창수는 하숙집 여주인의 눈치가 보인다. 그녀는 창수를 홀대를 한 일도 없고 식사도 그만하면 좋은 편이었다. 그녀는 거무튀튀한 피부에 눈이 작고 빠리몽땅하지만 사소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그런 여자는 아니었다. 몇 년째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시어머니의 수발까지 드는 효부였다.

여주인의 마음을 언짢게 하지 않고 어떻게 하숙을 옮길까. 궁리하다가 창수는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지어낸다. 좀 더 공부에 열중하기 위해서 조용한 집을 찾아가야겠다는 것이다. 천변 너머에 하숙집을 구하자 창수는 그녀에게 말을 꺼낸다. 의외로 그녀는 순순히 응낙한다. 그녀는 화난 얼굴도 아니고 얼굴을 붉히지도 섭섭한 표정도 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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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며칠 전에 짐을 싸는 것을 지나가다가 보고 네가 나가려나보다 생각했는데…그래, 갈 데는 구했어?"
"예, 그 동안 잘 해주시고 고마웠는데 제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 보고 싶어서요."
"그렇다면 나도 별로 할 말이 있구나. 하지만 하숙을 옮겨도 놀러와도 된다. 그리고 다시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와도 된다. 난 언제든 반길 거니까."
"예, 그러겠어요."

창수는 새 하숙집으로 떠난다. 하지만 이것이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의 서곡이리라 생각지 못했다. 이 후 그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고 네 번씩이나 더 하숙을 옮겼다.

새 하숙집은 낡은 마루바닥, 오래 된 가구, 어두운 자색의 창틀이나 문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음침하고 고리타분한 냄새가 풍기는 슬라브집이다. 건축 일을 하는 주인 영감이 손수 집을 지을 때, 딴에는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지었다지만 이제 그런 창틀이나 색상을 사용하는 집은 없었다.

창수도 오랫동안 자신이 이런 집을 하숙으로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노부부와 딸만이 사는 조용한 집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고풍스런 대문이 있는 예전의 하숙집 아주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역시 알 수 없다. 그는 선택할 당시의 기분을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심중에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새 그는 열 다섯 살에 친구들과 가출을 시도했을 때처럼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삶을 보고 있었다.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는 첫 번째 제의가 들어온 이 집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아무려면 어때. 이 세상에 대단한 일이란 없다. 이제 나를 놀라게 할 것도 겁나게 할 것도 없으니까, 결정해버리자.

창수가 같이 방을 쓰게 된 사람은 영규라는 하급생이다. 영규는 얼굴전체에 여드름이 돋아 있어 붉은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영규는 창수를 약간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먼저 창수에게 말을 건네거나 웃지 않았다. 나중에 창수가 들은 바에 의하면 영규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외아들이었다. 주말이면 영규는 집으로 내려갔다. 어머니의 과보호가 그에게 좋지 않은 습성을 길러준 거야. 창수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숙집 여주인, 아니 할머니는 꼭 배추 같은 머리에 긴 얼굴을 가진 여자로 만화에 나오는 톰 소오여와 닮아 있었다. 창수는 얼굴이 긴 여자는 질색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여주인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일은 삼가고 있다. 왠지 얼굴이 긴 여자를, 특히 턱이 긴 여자를 보고 있으면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하숙집 막내딸도 그랬다. 그녀는 함께 식사는커녕 어머니로부터 하숙생과는 일체 말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는지 눈길이 마주쳐도 인사도 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다. 토요일이다. 창수가 학교에 있는 동안 영수가 하숙집을 방문했다. 영수는 자신이 창수의 형임을 밝히고 방에서 기다려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이윽고 창수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창수는 형이 방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자, 반가운 마음이 들지만 이내 불안해진다. 천장을 보고 누운 형의 자세 때문이다. 어딘가 눈에 익은 자세에서 그는 형에게 학대받을 때 품었던 증오를 발견한다. 창수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내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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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문학세계》에 「매직을 훔친 아이」가, 《문학과 창작》에 「리오그란데를 찾아서」가 당선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으로 「장례식에의 초대」, 「로터리에 앉아 있던 새」 해양문고 「우리 바다가 품은 온갖 이야기」, 에세이 <지금은 별을 보며 한걸음 내디딜 때>가 있다. 현재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양산에 거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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