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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어머니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어머니는 숭고한 사랑의 화신이었다. 흔히들 진실한 사랑을 말하라면 어머니의 사랑에서 찾는다.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다.

자신은 없고 남편과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희생하면 끝없는 헌신을 하면서 자랑하지 아니하는 사랑의 화신은 어머니다. 이러한 사랑은 자녀가 온 몸으로 받아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그 고마움을 평생동안 간직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은 자식이 알고 고마움으로 깨우쳐 전승해온 것이 가족의 사랑이요 가정교육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아름다운 가족간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무너진 지 이미 오래다. 남보다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이 부모가 해야할 가장 큰 임무로 알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영어학원이며 태권도학원, 미술학원으로 내몰아 '이겨야 한다. 지면 죽는다'는 결사적인 전투(?)에 전사로 나가 승자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못 먹고 못 입고 자랐으니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줄 수 없다는 처절한 한이 '못다 이룬 내 꿈까지 대를 이어 한을 풀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내 자식만은 남보다 영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고, 웅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만능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일류대학을 나와야 하고, 남보다 잘생겨야 하고, 남보다 돈도 많아야 하고 남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 한다. 지면 죽는다. 마치 이기는 것이 삶의 목표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지는 것은 죽는 것'인 철학을 가진 부모에게 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공부만 잘하면 자기가 할 일 못하는 것'쯤, 집에서 제 할일 못하는 것쯤, '부모에게 버릇없이 구는 것'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공부만 잘하면 다 해결되는 문제다. 부모들은 어린 자식을 안고 "커서 뭐 될래?" 물으면 "대통령" 하면 "오냐, 내 새끼, 그래야지" 하지만 "커서 우체부가 될래요" 했다가는 '싹이 안 보이는 놈'이 되고 만다.

100점만 받으면 무조건 "오냐, 내 새끼!"다. 100점이면 가정에서 왕이 된다. 버스 안에서 총싸움 질을 해도 못 본 체 한다 '사내아이가 기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잘못을 덮어두어야 하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유능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모는 자식의 노예가 돼도 좋다는 것이다. 마마보이는 이렇게 가정교육을 포기한 어머니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가정교육이란 '해도 좋은 것과 해서 안될 것'을 구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게 하는 일'이다. '자신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남도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다.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 학원에서 영어 단어 한 두 개 더 아는 것보다 소중한 일이다. 약속을 잘 지키지 것이 피아노를 남보다 못치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다.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남에게 이기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어머니가 할 일이다. 어머니는 자녀의 승부욕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입시교육의 피해는 공교육의 파탄만이 아니다. 가정교육이 무너지고 가족간의 인간 관계까지 무너지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나이 많은 부모를 모시려고 합니까?" 마치 당연한 일이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런 것이 아니다. 안 되는 일, 잘 못된 일을 깨우쳐주고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다.

사람은 사회화를 통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부모를 경시하는 풍조는 시대의 흐름이 아니라 교육부재가 만든 잘못된 결과다. 경쟁교육은 가정교육까지 기대하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어머니의 고유한 역할까지 무너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면 죽는다'는 철학이 지배하는 분위기에서는 승리는 있지만 사랑도 교육도 없다.

남에게 이기는 승리는 유능한 기능인을 만드는 일이지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들이여! 내 자녀가 가슴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사람과 남보다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차가운 기능인 중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하기는 학교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가르치지 않는데 어떻게 어머니가 있겠는가?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들이 분별력을 배울 것인가? 이제 공교육의 위기는 학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도 무너지고 사회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제 부모님들은 내 자식을 '승부가 결정 난 싸움'에 내몰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 살리기에 동참해야 한다. 공교육의 정상화는 우리 모두를 살리는 지상 과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 이야기
(http://report.jinju.or.kr/educate/) '교육칼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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