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야. 아까 그 여자들은 수녀고."
창수는 김이 팍 새는 기분이다. 그들이 풍긴 이미지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교문을 나오며 창수는 형이 입학금을 내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한다. 혹시 형이 조그만 질투심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하지만 형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창순수는 형의 태도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인제 진짜 무얼 먹자!"
창수는 적이 안심을 하며 아주 느리게 대답한다.
"무얼 먹을 것인지 생각해 보고."
"이왕이면 맛있고 비싼 것으로 먹어라. 기분도 좀 낼 겸."
영수는 자신이 번 돈은 아니지만 이 순간만큼은 맘껏 써도 된다는 듯 호탕하다.
"라면이나 하나 먹을까?"
"에그 겨우 라면이야?"
영수는 촌놈은 정말 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혀를 끌끌 찬다. 아이들 대개가 그렇듯 자장면이나 비빔밥이라고 할 줄 알았던 것일까. 창수는 멋쩍은 기분이 들지만 하는 수 없었다. 사실 창수는 거리에 있는 음식점에서 라면도 먹어본 일이 없다. 고작해야 핫도그 정도나 먹어 보았다. 결국 창수의 고집에 따라 두 사람은 분식점에 들어가 라면을 먹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분식점을 나온다. 눈은 그쳐 있지만 하늘의 우중충한 것으로 보아 언제 또 눈이 내릴지 모른다. 두 사람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오른다. 겨울 해는 짧아서 그날 안에 집으로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소방서 앞 정류소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두 사람은 버스를 탄다. 눈이 오는 것 때문인지 사람들은 들떠 떠들어댄다. 버스 안은 인월장보다도 더 북적댄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형제는 이리저리 휩쓸리면서도 우산을 든 사람들 때문에 조심한다. 그 와중에 버스 천장에 달린 라디오 스피커가 웅웅거리고 있다.
"올해 대학시험에서 300점 이상의 고득점자가 작년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보도입니다."
그 때 승객 중 한 사람이 키가 작고 배가 툭 튀어나온 남자에게 말했다.
"한 오천 명 정도는 될 거라고 하던 데요."
"참, 역에 내리면 네 운동화를 하나 사야겠다. 어머니가 하나 사서 신기라고 부탁을 하셨거든."
형의 말에 창수는 일년 내내 신었던 운동화를 내려다본다. 만약에 운동화의 색깔이 검은색이 아닌 다른 색이었다면 누구라도 본래의 색깔을 맞출 수 없을 정도로 때가 끼고 색이 바래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둘은 역 앞의 신발가게로 들어간다. 창수가 신발을 고르는 동안 영수는 곁에 따라 다니며 이런 말들을 잊지 않는다.
"맘에 안 들면 바꾸기 힘드니까 잘 고르고. 비싸더라도 신발은 편한 것이 좋으니까 좋은 것으로 골라."
마침내 창수가 신발을 하나 골라 들자, 영수는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것처럼 발에 맞는지 확인하고 신발에 흠이 없는지도 확인한다. 형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창수는 약간 놀란다. 지금껏 그가 알던 모습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간 영수는 창수에게 말이 없고 잔정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 신발을 신은 창수는 낡은 운동화를 쓰레기통에 넣어 버린다.
역에 도착해서 몇 차례의 연착 안내 방송을 들으며 삼십 분 이상을 떤 끝에 두 사람은 열차에 올랐다. 창수는 다시 창가에 앉는다. 차창 가는 밖의 경치가 몸에 닿을 듯 지나가고 있었다. 태양은 얇은 막을 드리운 듯 어둠침침하게 빛나고 있고 두리뭉실한 산들은 눈의 무게에 아예 주저앉아 버리기라도 할 것 같았다. 약간 녹은 상태에서 나무 위에 눈이 다시 내려앉았기 때문에 가지가 부러질 것처럼 무거워 보인다. 들판은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엷은 막을 뚫고 내려온 몇 조각의 햇살 때문에 눈 속에 유리조각이라도 박힌 것처럼 빛을 반사한다. 이것으로 인해 눈이 부실 듯한 눈의 왕국이 끝없이 이어진다. 기차소리에 놀란 날짐승들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해 머뭇거리다 겨우 겨우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