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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일이다.

내 논문의 목적이 한국인의 한과 비슷한 정서를 그들의 문학 속에서 찾아보려고 한 것이라, 그들의 슬픔의 원류와 그 실상을 찾아보기 위해 현지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야만 했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것이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에 대한 정보였다.

리투아니아에서 유명한 것을 들자면, 보는 사람마다 감탄해 마지 않는 아름다운 빌뉴스의 구시가지와 전 유럽을 평정하는 프로 농구단, 그리고 전 세계에서 최고인 자살률을 들 수 있다. 나는 그래서 그 높은 자살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빌뉴스에 있는 리투아니아 통계청에 찾아가게 되었다.

외국인이 일반적으로 통계청에서 찾아보는 자료들로는 외국인투자율이나 조세율 이런 것들이 보통일 텐데, 통계청에서 자살률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이 좀 쑥스럽고 어색해서 도서관 사서에게, 마치 길거리에서 야한 잡지 사는 사춘기 소년처럼, "아주머니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에 대한 정보 좀 주세요"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보기와는 다르게 자살률에 관한 정보는 잘 보이는 곳에 전시되어 있었고,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사서는 그 자료를 건네주었다.

그 후 5분 정도 지나서, 리투아니아와 외국의 학생들이 수시로 들어와 왔다갔다하며 도서관 사서에게 물어보는 자료는 전부 다 "아줌마, 자살률 정보 주세요", "이번에 정부가 공식발표한 자살률 통계자료 주세요" 그런 것들이었고, 그때마다 그 사서 아주머니는 "저 동양인이 지금 보고 있어서 안되는데요"하면서 나를 지칭하며 도서관이 떠나가라 광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자살률을 집중연구하는 이상한 성향의 동양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3국의 자살률은 세계에서도 가장 높다. 올해 4월 초에 공식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리투아니아는 전세계에서 자살률 제1위, 그리고 러시아가 제2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가 각각3, 4위를 기록했다.

리투아니아 옆에 있는 칼리닌그라드도 러시아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사실 공식적은 자료는 없지만, 칼리닌그라드 내의 자살률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네 나라가 전 세계 자살률의 '중심국가'라는 말이 된다. 리투아니아의 경우2000년 수치에 비해 2001년 수치는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10년 전과 비교했을 경우 두 배로 늘어난 치수이다.

리투아니아의 경우 전체 10만 명 중에서 44명이 자살로 사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러시아가 10만 명 중 39명,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가 차례대로 38, 36명으로 3위. 4위를 기록했다. 1위와 2위의 차가 엄청나다. 유럽연합의 평균수치는 20명에 머무르고 있으므로 리투아니아만의 자살률은 유럽의 일반적인 경우의 두 배의 경우이다.

유럽 외 지역에서는 스리랑카가 최고로 10만 명 중 31명이 자살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왔고, 헝가리, 카자흐스탄, 벨라루시도 자살이 많은 국가로 유명하다. 10년 리투아니아의 수치는 10만 명당 26명이었으므로 10년 전보다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발트3국의 자살률이 전반적으로 높은 것에 대한 분석자료는 얻지 못했지만,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도시에 비해 실업률과 알콜중독률이 높은 시골지역에서의 수치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리투아니아 국립 정신문화연구소의 분석에 의하면 리투아니아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높은 자살률의 이유라고 분석하고 있다. 근 10년간 자살률이 급속히 증가한 것은 그 동안 있었던 경제적 사회적 변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독립 이후 많은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이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이 희망을 잃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리투아니아의 높은 자살률은 보기와 다르게 사회적 경제적 상황과는 그리 많은 관계가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 단적인 증거가 전세계 인구의 4분의 3은 리투아니아보다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살률이 반드시 높지는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리투아니아의 '정신문화'다. 소련 시절 통계에 의하면 리투아니아는 전 소련에서 가장 부유한 공화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리투아니아는 전 소련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이것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상당히 감성적이고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리투아니아의 문화적 배경으로 볼 때 국민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일반에 내보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러시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의 큰 비밀도 마다않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전세계적인 통계로 볼 때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자살률보다 높다. 리투아니아에서도 예외는 아니고, 게다가 남성과 여성의 치수 차이가 상식선을 벗어날 정도 아주 엄청나다. 리투아니아 내 여성자살률은 10만 명 중 14명인 반면 남성은 74명이다. 리투아니아의 전통적인 가치관으로 볼 때 남성은 여성보다 강해야 하고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가장으로써 책임감에 대한 의식이 강하며 특히 전통적 가치관이 많이 살아남은 농촌지역에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전세계 어디건 남자들이 그런 부담을 안고 살지않는 나라가 없겠지만,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 이곳의 남자들이 느끼는 부담의 무게는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리투아니아에서 자살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농촌지역에서 자신의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심리상담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불명예스러운 세계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리투아니아 정부는 현재 자살률을 하락시키기 위한 5개년에서 10개년의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여러 가지 분석을 종합해 보자면,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때 그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살을 방지하는 길인 것 같다.

발트지역에서 발트3국의 소식을 전문적으로 전하는 'The baltic times'에 보도된 자료 중 한 독극물 학자의 말을 빌면, 리투아니아의 비극적 상황은 바로 그 놈의 술 때문이기도 하다. 소련시절 동안 일어난 폭력과 유배, 집단이주 등 그런 악몽 같은 현실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술을 가까이 접하게 되었다.

특히 농촌지역에서 알콜 중독 현상이 심한 것은 자신들의 영토와 소유를 많이 빼앗기게 된 후 얻는 공허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의 신세대들은 자유경제에 익숙해져 있으므로, 이 자유로운 체제에 더 익숙해지게 되면 알콜중독과 자살의 문제는 저절로 풀리리라는 분석도 있다.

리투아니아와 발트를 자주 방문하고 그들의 민속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 속에 흐르고 있는 슬픔의 정서에 민감해지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도 말하면, 그곳은 '뭔가 슬프고 우울해 보인다'는 것이다.

리투아니아에 곳곳에서 만나는 공예품 중 머리에 손을 얹고 고뇌하는 예수의 상을 조각한 '루핀토옐리스(Rupintojelis: 고뇌하는 예수)'라는 것이 있다. 리투아니아를 비롯하여 리투아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폴란드의 북동부 지역, 라트비아 등 발트 여러 지역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이 슬픈 얼굴의 예수는, 다른 유럽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승리와 부활의 모습이 아니다.

꼭 어떤 것을 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리투아니아 곳곳에 남아 있는 민속문화와 전통문화는, 그 고뇌하는 리투아니아의 예수처럼 그 동안 역사를 통해 겪어왔던 아픔의 흔적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할 때, 유럽문화에서 극히 찾아보기 힘든 '팔자소관'이라는 의미의 말을 쓰곤 한다. 리투아니아 신화에 의하면 '라이몌(Laime)'라는 여신이 아기가 태어날 때 창문가에 서 있다가,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기의 인생을 결정해준다는 말이 있다.

라이몌의 말에 따라 그 아이는 귀족도 되고, 농민도 되고, 그리고 투사도 된다. 자신의 인생은 이미 결정되어진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내 인생은 라이몌의 결정'이라는 말로 자신의 운명을 합리화하던 풍습이 아직도 리투아니아인들의 언어습관에 남아있다고 하는데.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3국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슬픔과 한으로 점철되어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물론 사람들의 평가기준에 따라 전부 달라보일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른 유럽문화에 비교해 볼 때 슬픔과 죽음에 관한 관심이 사뭇 더 높은 것은 사실이고, 그런 문화적 환경 속에서 현대사의 슬픈 역사 역시 그들의 자살을 방관한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다.

참, 하고 많은 것 중 나는 왜 그런 발트3국의 슬픔의 정서에 대해서 논문을 쓰고자 했던 것인지. 이것도 라이몌의 결정이 아닌가 싶다.

▲ 도표 1 각 계층별 자살률 비교 ⓒ 서진석

농촌남성의 자살률이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 비하여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굵은 선 : 도시 남성의 자살률, 긴 점선 : 농촌 남성의 자살률, 가는 실선 : 도시 여성의 자살률, 가는 실선 : 농촌 여성의 자살률)

▲ 도표 2 나이별 자살률 비교표 ⓒ 서진석

전 사망건 중 자살의 비율을 보여주는 도표. 왼쪽이 남자, 오른쪽이 여자, 맨 아래 자주색 선이 자살사망률이다. 남성 40대에서 50대에서는 사망원인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곳에 나온 통계수치와 도표는 리투아니아 통계청의 자료를 인용한 것이며, 원인분석에 관한 자료는 The Baltic Times 등 발트3국 현지에서 나온 신문기사들을 종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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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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