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폴란드에서 리투아니아로 넘어오는 국경을 넘으면서 구 소련의 영토로 들어온다는 기대감으로 설레며 잠을 못 이루다가, 썰렁한 빌뉴스 역 광장에서 멍하니 서있던 기억. 그리고 폴란드 국경에서 기차 바퀴를 갈아끼우면서 기다리던 지루한 시간.

지금 있는 곳이 러시아인가 헷갈리게 만들던 라트비아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과의 만남, 리가의 첨탑 꼭대기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귀여운 수탉들과 버스 안의 안내양들, 그리고 에스토니아 국경을 지나오면서 치러야한 우스꽝스러운 쪽지시험. 정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발트의 농촌풍경.

유럽이야 탁 까놓고 말해서 보고 먹는 것이 전부 바로크 건물, 고딕 건물 그런 비슷한 것들 뿐이라, 여행 끝나고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특별한 경험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과거 구 소련 지역에 남아있는 여러 풍물들은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정착한 한국인들이 여기저기 남겨놓은 삶의 흔적들이 주는 감동들은 이루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여행객들이라면 아직 발트3국이나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같은 구소련국가로의 여행은 그리 마음이 쉽게 가는 여행은 아닐 것임이 확실합니다.

아직 불편하고, 뭔가 정돈이 덜 되어있는 것 같고, 그리고 뭔가 알지못하는 곳이라는 불안감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그런 것들을 감수하면서 여행을 한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여행하는 나그네들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과 친절함에 이끌리면 이 나라는 프랑스, 이태리, 미국 같은 그런 관광객들이 어마어마하게 찾는 나라 못지 않게 다시 가고 싶은 나라로 기억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주 작고 힘 없어 보이는 나라이지만, 고된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더욱 더 강해진 이 나라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나면, 이 나라에 꼭 다시 오고 싶어질 겁니다. 오늘은 발트3국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들입니다.

타르투(Tartu)는 에스토니아의 제2의 도시입니다. 타르투에 도시가 세워진 것은 1030년으로, 타르투는 발트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셈입니다. 탈린이 에스토니아인들의 정치적, 경제적 도시라면 타르투는 정신적, 문화적인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물론 전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타르투 대학이 위치해 있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격동의 시간에 에스토니아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민족운동의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타르투는 특별한 볼거리가 많이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에스토니아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가보아야할 도시입니다. 소련시절엔 군사도시였던 관계로, 외국인에게는 방문이 허용되지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타르투는 탈린에서 185 km 떨어져 있고, 기차와 버스가 탈린과 타르투를 자주 연결합니다. 타르투의 볼거리는 시내한가운데 있는 토메매기(Toomemägi)라는 작은 언덕 위와 그 주위에 다 몰려있습니다.

일단 그 언덕에 올라가기 전에 들러야할 곳은 시청광장(Raekoja Plats)입니다. 시청건물은 18세기에 독일인의 설계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 시청건물 주위로 아기자기한 엣건물들과 또 타르투의 중심거리가 들어서 있어, 괜찮은 식당과 상점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분위기 좋은 노천카페에 들어가 에스토니아 최고의 맥주 사쿠(Saku)를 드세요.

타르투 대학교(Tartu Ülikool) 시청건물을 지나 바로 있는 큰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타르투 대학교 본관건물이 나옵니다. (Ülikooli 18). 그 대학은 당시 스웨덴의 왕이었던 구스타프 아돌프의 명에 의해 1632년 건설되었습니다. 점령시대와 전쟁시 학교가 닫히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명실공히 에스토니아 최고의 대학으로, 에스토니아와 발트지역의 많은 지식인을 배출한 명문대학입니다.

토메매기(Toomemägi) 언덕의 가장 중요한 건물은 대성당으로 이 언덕의 이름도 대성당언덕이란 뜻입니다. 언덕 꼭대기엔 독일기사단이 13세기에 지었다는 대성당이 페허만 남아있지만, 한때 그 대성당 안엔 타르투 대학도서관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 대성당은 현재 타르투대학 박물관으로 대학의 역사와 기념물을 전시해 두고 있습니다.

그 언덕 여기저기엔 에스토니아 출신 문학가와 에스토니아를 구한 전쟁군인들의 동상이 있습니다. 대성당 동쪽 편으로는 19세기에 건설된 천문대가 위치해 있습니다. 시청광장 바로 뒤로 나있는 Lossi 거리를 따라 쭉 가면 다리가 두개가 있는데, 처음 다리는 천사의 다리라는 이름이 있고, 두 번째 다리는 악마의 다리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다리를 직접 보시고 왜 그런 이름이 있는지 생각해 보시지요.

타르투에는 국립박물관, 식물원, 인형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들이 위치해 있어서 하루 정도 머무르기에 적당합니다. 5년 전에 처음 방문을 했을 때는 에스토니아의 제2의 도시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작고 초라한 느낌까지 있었는데, 얼마 전 다시 타르투를 방문했을 당시 도시가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관광도시가 아닌 만큼 숙박조건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종류의 호텔이 위치해 있고, 타르투 대학 기숙사에서 여름동안 배낭여행객들에게 빈방을 빌려주고 있으므로, 타르투 시청광장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문의하시면 친절히 안내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변에 위치한 패르누(Pärnu) 역시 과거 한자무역의 중심지로서 명성을 구가했던 도시입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 에스토니아인들이 사랑하는 여류시인 리디아 코이둘라(Lydia Koidula)가 탄생한 곳으로서, 에스토니아인들의 민족정신회복의 중요한 장소임과 동시에, 패르누는 소련 시절부터 유명한 에스토니아의 여름휴양지입니다.

여름엔 에스토니아의 수도가 여기로 바뀐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음악페스티발, 국제영화제, 재즈페스티발 등 일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고, 백사장과 패르누의 유명한 진흙목욕 등으로 인해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구시가지가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볼거리가 특별한 것은 아니고, 휴양지다운 기분이 적당히 사람을 흥분하게 합니다.

뤼틀리(Rüütli) 거리 주변지역에 쇼핑센터와 박물관, 주요 볼거리들이 몰려있어, 도시를 보는데 한나절이면 충분하므로, 아침 일찍 출발한다면 탈린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요 관광안내소에서 패르누에서 열리는 축제 일정을 확인하여 두셨다가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패르누의 유명한 진흙목욕을 즐겨보세요!

기차역은 시내에서 약 3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이용이 쉽지 않으므로,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탈린에서 리가 가는 버스들은 보통 패르누를 경유하는 경유가 많습니다. 버스가 패르누로 자주 다니고 있습니다. 버스터미널은 시내중심가 한가운데 있어, 이용이 아주 편리합니다. 그리고 패르투에서 탈린으로 가는 도로가 해변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입니다.

사아레마 (Saaremaa)는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섬으로, 패르누와 더불어 많이 사랑받는 관광지 중의 하나입니다. 면적은 2922 평방킬로미터로 주민의 대부분이 섬에서 가장 큰 도시 쿠레사레(Kuressare)에 몰려살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바이킹에 맞먹는 '전투력 강한' 해적들로 유명한 섬인 이곳은, 덴마크, 스웨덴 등 많은 북유럽 국가들이 번갈아 가며 통치한 유서 깊은 곳으로 그 당시에 건설된 다양한 유적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사아레마의 최대도시 쿠레사레로는 탈린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쿠레사레까지는 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다 해서, 4시간 정도 걸립니다. 버스 외에도 탈린, 패르누와 주요 섬을 연결하는 항공편(에어 리보니아)도 있으므로, 탈린에 있는 여행사에 문의해보시기 바랍니다.

쿠레사레에는 발트지역에 남아있는 중세요새 중 가장 오래된 Piiskoopi Linnus(Lossihoovi 1), 시청사 등을 비롯하여 내륙과는 다른 분위기의 볼거리들이 있습니다. 약 3천년 전 운석이 떨어져 만든 운석자국(쿠아바스투Kuivastu 가는 쪽으로 18km), 쿠레사레에서 북서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있는 절벽해안, 키헬콘나(Kihelkonna) 지역에 있는 야외민속박물관, 쇠르베(Sõrve)반도, 새들의 천국인 빌산디(vilsandi)국립공원 등과 여러 교회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사아레마 외에도 에스토니아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섬엔 무후(Muhu-사아레마와 바로 다리로 연결되어있습니다), 키흐누(Kihnu), 루흐누(Ruhnu) 섬등이 있습니다. 키흐누까지는 패르누에서 약 50km 떨어진 무날라이드(Munalaid)항구에서 페리로 갈 수 있지만, 루흐누까지는 비행기 외에는 연결편이 없고, 또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무후 섬을 빼고는 호텔이나 식당 같은 시설이 '전혀' 없어서 섬주민의 집에서 홈스테이만 가능하다고 하는데,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직접 보는데는 좋은 기회가 될 듯 합니다.

이 외에도 겨울스포츠의 중심도시 오테패(Õtepää), 반도가 아름다운 합살루(Haapsalu) 등도 둘러보면 좋은 도시들입니다.

가족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은 많이 사셨나요? 리투아니아서부터 시작해서 발트 전역에서 선물로 파는 호박(琥珀)들은 아마 지겹게 보셨을 겁니다. 물론 사진도 많이 찍으셨겠죠.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친구들에게 보여주실 때 주의하실 것은, 여러분들이 다녀오신 곳은 ‘발칸반도’가 아니라 발트3국이라는 것입니다.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는 어떠냐고 물어보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와 계속 만나게 되는 것에 대해 아마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할 겁니다. 계속 만나야할 것 같은 친구분이라면 정확히 이야기해 주세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발트3국을 다녀왔노라고 말이죠. 발칸반도는 발트3국에서 유럽 대륙 정반대쪽으로 위치해 있습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셨나요? 여러분들은 아마 에스토니에서 핀란드 헬싱키나 러시아 상트 뻬제르부르크로 여행을 계속 하시겠지만, 저는 여기서 일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발트3국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로 여러분들과 다시 만나려고 하니까요.

인생이란 정말 끝없는 여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애석하게도 저는 아직 사아레마와 다른 섬지역을 방문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섬지역에 관해서는 외국에서 나온 여행책자를 상당히 참조하였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