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02.03.11 00:11최종 업데이트 02.03.13 11:52

태국의 '벌거벗은 임금님'

지난 해 연말부터 올 연초에 이르는 동안 태국에서는 현 집권세력의 조폭적인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 준 두 편의 '정치코미디'가 연속 상연되고 있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하나는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 별안간 조용해진 일이며, 다른 하나는 시답잖은 일이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거져 최근 한달새 시끌벅적해진 일이다.

조폭코미디 1편

AD
첫번째 사건은 지난 해 10월 말, 방콕 번화가의 한 술집에서 고위경찰간부 한 명이 어처구니 없이 비명횡사한 일이다. 그 날 새벽 1시 무렵 그는 초과근무를 끝내고 동료들과 술 한잔 하러 그 술집에 들렀는데, 그의 동료 중의 한 명이 실수로 옆에 앉은 한 젊은이의 발을 밟게 되었다. 그 젊은이는 '발을 밟혀 기분이 잡쳤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총을 빼들어 설쳐댔고 그 경찰간부는 실랑이를 말리다가 그 총에 맞아 즉사했다.

범인은 연초에 현 탁신 수상이 이끄는 집권당 타이락타이당(타이를 사랑하는 타이당)과의 합당이 실제화된 뉴 어스피레이션당 부총재의 막내아들이다. 뉴 어스피레이션당은 탁신 정부 이전의 집권당이다.

현장에는 그 막내아들을 포함한 3형제가 모두 거기에 있었다. 그 3공자는 악명 높은 '방콕의 망나니들'로 지난 4년 동안 불법폭행죄로 9번이나 기소된 적이 있으나 한 번도 감옥에 간 적은 없다. 이들의 집에는 3형제가 놀 수 있는 축구장이 있다.

안하 무인에 후안 무치의 태국 정치 지도층과 부유층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이 블랙 코미디는 며칠 동안 '법질서와 도덕성 회복'이라는 제목으로 각 태국 언론의 머리기사에 올랐다. 이 사건이 직후 방콕 시민들은 분노의 감정을 고인의 가족을 위한 '100원 모으기' 운동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 망나니가 법정에 세워질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령 그가 잡힌다 하더라도 그 아버지가 이미 돈으로 '진짜살인범을 사 놓았을 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방콕의 중산층조차도 한편으로는 분개하면서도 이 사건을 '자식 잘못 둔 집안' 문제로 치부한다.

예측대로 그 망나니는 당일 밤으로 줄행랑을 쳐서 지금까지도 건재하며 지난 연말에는 캄보디아 국경에 있는 한 카지노에서 가족과 휴일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지금 이 코미디는 일단 막을 내린 상태다.

조폭코미디 2편

두 번째 사건은 위의 사건이 잊혀져 갈 무렵 지난 2월 초부터 지금까지 탁신 수상이 벌이고 있는 '언론과의 맞장뜨기'이다.

이 싸움판은 태국의 가장 유력한 진보언론인 '네이션 멀티디어 그룹'에 대한 탄압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2001년 1월 탁신 정부가 들어선 이래 정부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줄곧 비판해 온 네이션 그룹은 탁신 정부에게는 눈엣가시였다.

탁신 정부는 네이션 그룹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2월 말에는 네이션 티브이 방송의 간판 앵커 4명을 브라운관에서 끌어내렸으며, 그룹이 프로그램 편성책임을 맡고 있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돌연 폐방시켰다. 이유는 '잘 못 됐다고 알려주는 건 좋지만 씹는 건 안 돼'였다. 라디오 방송국의 소유권은 태국 군부에 있다.

이어 3월 6일에는 정부 기구인 '돈세탁 방지위원회'에 의해 네이션 그룹의 유력 언론인들의 은행거래 및 재산내역 조사가 비밀리에 착수되었다. 이번 주말에는 진보적인 언론인뿐만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의 일부 의원과 NGO그룹에까지 조사가 확대되고 있다.

태국법상 돈세탁 방지위원회가 조사권을 발동할 수 있는 경우는 '마약밀매, 매춘 등'에 관련된 혐의자에 한해서이다. 물론 탁신 수상은 '바빠서 그런 일에 관여할 시간이 없다'며 강력 부인하고 있다.

탁신 정부와 네이션 그룹 간의 갈등이 지난 한달 새에 전쟁으로까지 비화된 경위는 한 외국언론 기사에 의해 '얼굴이 긁힌' 탁신 수상이 부아가 나서 총을 빼들면서부터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탁신

사건의 발단은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의 경제주간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이하 FEER로 약칭)의 1월 10일자에 실린 짤막한 기사였다. FEER의 태국 내 보급자는 다름 아닌 <네이션>지이다.

'왕실의 골치거리'라는 제목이 달린 이 기사는 '올해 태국에서는 정치판이 어수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탁신 수상은 차기 왕위 계승권자인 왕자와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해 왕실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현 태국 왕은 탁신의 이러한 태도를 심히 못마땅해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가 나간 직후 탁신은 엉뚱하게도 '왕에 대한 명예훼손'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기사 배포금지와 기사를 작성한 FEER측의 두 기자를 태국에서 추방하라는 긴급명령을 내렸다. 그 두 기자는 태국에서 20년 가까이 일해온 이들이며 그 중 한 명은 태국 외신기자협회의 회장이다. 태국에서 외신기자가 추방된 가장 최근의 시기는 군부독재하의 1973년이다.

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왕가에 대한 언론 취급이 터부시되어 있으며 법적으로도 금지되어 있다. 사건은 2월 말 FEER측이 '왕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을 사과하는 형식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불똥은 태국의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기획특집으로 다룬 영국의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에까지 튀어 3월 첫 주호의 국내 배포가 금지되어 있는 상태다.

이 사태의 결과는 아이러니칼하게도 그 기사를 놓친 이들까지 부랴부랴 FEER의 웹사이트를 찾아 들어가게 만들었고 학계와 언론은 물론 국회에서까지 '촌스럽고 경거망동한' 대응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네이션>지의 한 독자는 과연 누가 모독을 당했는지 분별을 못하는 탁신 수상을 두고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런데도 탁신은 외국언론의 필화사건으로 끝났을 일을 국내언론에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하면서 발단이 된 기사의 예측을 실현시킨 장본인이 돼 가고 있다.

태국의 한 정치학자는 표면적으로는 이 사태가 탁신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언론대응으로 비치고 있지만, 실은 탁신의 배후에 있는 보수 '재벌정치가 및 군부' 세력과 97년 '인민의 헌법'이 제정된 이후 조금씩 발언권이 확대되고 있는 진보세력과의 오랜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한다.

네이션 그룹과 탁신 수상은 누구?

네이션 멀티미디어 그룹은 1971년, 태국의 진보적인 언론인들이 태국 내 영자신문에 대한 외국기업의 영향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모토로 삼고 영자신문 <네이션>지를 창간하면서 출발했다. 현재는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한 자국어 경제신문과 일간지도 발행하고 있으며, 태국의 양대 민영방송의 하나이며 태국 최초의 24시간 뉴스 채널인 네이션 방송을 독립운영하고 있다. 다른 민영방송 아이티브이는 탁신 가족의 소유이다.

또한 <네이션>지는 태국주재 외국투자가들 사이에서도 <방콕포스트>에 비해 '질 높은 정보력과 분석기사'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작년에만도 경영실적 18% 증가로 경영면에서도 건실한 기업으로 평가 받고 있다.

<네이션>지는 태국에서 마지막으로 정치민주화시위가 있었던 '92년 블랙메이' 당시 폐간의 위헙을 무릅쓰며 군부의 시위대 학살행위를 기사화하여 배포함으로써 더 많은 시민들을 거리에 나오게 만들 만큼 태국 민주주의 발전에 노력해왔다. 이념적으로는 태국의 오랜 야당인 민주당과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태국의 진보적 정치가와 지식인 그리고 사회운동가 그룹의 언로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대중을 독자대상으로 삼은 일간지가 창간 된 지는 2년도 채 안 된 만큼 태국 국민들에게는 '고급지'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며 '따라가기 힘든 신문'으로 인식되어 있다.

탁신 수상은 태국의 여러 기록을 갱신한 인물이다.

태국은 1932년 절대왕정에서 의회민주정으로 바뀐 이래 70년 동안 17번의 군부 쿠테타와 16번의 헌법개정 그리고 53개의 정부가 들어서 왔다. 선거에 의해 들어섰던 민간정부 가운데 의석의 3분의 1을 얻은 정부는 없었으며 집권 기간은 평균 6개월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탁신이 이끄는 타이락타이당은 작년 6월 총선에서 32년 이래 처음으로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집권당이 되었다. 게다가 태국 제2의 갑부인 그가 스스로 집권당의 우두머리가 됐기 때문에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타이락타이당이 압승을 거두기까지 총선자금의 90%는 정치비자금이 아닌 탁신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따라서 태국 국민들에게 탁신 수상은 '부정부패를 저지를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태국의 농민들과 도시서민층은 탁신을 자수성가한 비즈니스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가 97년의 IMF위기로 악화된 나라경제도 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탁신이 일약 태국의 갑부로 부상한 계기가 자신이 재직했던 경찰청에 컴퓨터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면서부터라는 내막은 그들에게는 너무 복잡한 얘기다.

작년 수상으로 선출된 직후 국가 반부패위원회에 의해 재산은닉죄로 헌법재판소에 회부된 바 있으나 무죄판결을 받은 그는 올초에 들어서도 수 차례 봉변을 겪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탁신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태국 제1의 텔레콤 사업체에 최대의 이윤이 돌아가게끔 돼 있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다가 사회운동세력과 학계는 물론 관련 정부부처로부터도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결국 포기하게 된 일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자신의 집권당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연초부터 다른 야당들과의 합당을 꾀함으로써 상,하원을 합친 500석 중에 400석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이로써 내년 11월이 유효시한인 '97년 헌법'을 개정할 수도 있는 권력집중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탁신은 왕권에도 도전할 기세다.

따라서 네이션 그룹에 대한 탁신 정부의 탄압은 '탁신랜드'를 건설하는 데 걸리적거리는 세력에 대해 실제로 총을 겨눌 수도 있다는 공포탄인 셈이다.

우연하게도 이 공포탄이 울린 시점은 지난 3월 4일 '태국 언론인의 날'이었다. 같은 날 첫번째 사건에 주역으로 등장했던 3공자 가족은 뻔뻔스럽게도 전 가족이 달라붙어 운영할 일간지를 창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태국의 부정부패상을 다룰 계획이라는 야무진 취지까지 내 놓았다. 대체 이런 코미디가 어떻게 가능할까?

오늘도 진행 중인 탁신 정부와 네이션 그룹 간의 전쟁은 태국의 정치가와 지식인층에게는 핫이슈가 되고 있지만 사실 일반 서민들의 관심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루 5000원 정도의 벌이에 전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그들에게는 수십 년 동안 지겹도록 들어온 얘기이기도 하거니와 '돈 많고 유식한 사람들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로 비치고 있다.

하지만 미리 속단할 필요는 없다. 1932년 태국이 일부 군 엘리트와 지식인의 어설픈 연대에 의해 입헌군주제가 수립되었을 당시 농민들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헌정이 되면 누구 자식이 왕이 되냐'고.

하지만 2002년의 태국 국회의사당 앞에는 피킷을 든 이들이 거의 매일 끊이지 않고 있다. 태국이 의회민주정의 디딤돌을 놓기 위해서 진보적 지식인과 언론이 하루빨리 해야 할 일은 피킷을 들기 시작한 태국 서민들과 가장 효과적으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나원 (chorong) 내방

이 기자의 최신기사방황하는 젊음은 아름답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