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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 서울의 인접도시 광명에 인터넷광명뉴스(www.egmnews.com)라는 최초의 인터넷언론이 창간되었다.

인구35만에 지역번호도 02를 쓰는 대표적인 서울의 베드타운인 광명에 인터넷신문의 깃발을 올린 지 60일, 기자는 오마이뉴스의 이름없는 시민기자로 출발해 지금은 지역언론의 새로운 흐름을 전하고 있다.

경기도 내 시군이 다 그러하듯 광명에도 지방 일간지 15개사와 지역주간지 2~3개사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새로운 지역언론의 필요성을 바라던 차에 오마이뉴스는 그야말로 지역에서 이상적인 대안언론의 모델이었다.

지역에서 사건이 일어나도 지역주민들은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인구의 대다수가 서울이나 타시로 출근하는 광명에서 지역성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방자치도 시민운동도 지역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니 함께 답보상태를 거듭할 뿐이었다.

불행히도 지역언론을 창간하는 데 필수인 자본이 없었다. 사이트를 제작하는 데만 최소 수백만원, 사무실, 필요한 집기, 취재에 따른 운영비를 감당해낼 묘안이 없었다. 편집권의 독립을 보장해주는 순수한 자본을 끌어들이기도 쉽질 않았다.

두 달의 공백기만 생기고 계획은 차질을 빚는 듯했다. 결국 일을 저지르고 보자, 그리고 열심히 하다보면 도와줄 사람도 생기겠지하는 단순한 결심 하나로 창간을 서둘렀다.

사이트는 기자가 과거 총선연대 사이트에 만평을 그려준 인연을 무기로 무료제작을 요청했다. 아이디코리아 최민섭 사장은 고심 끝에 승낙을 했고 이후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어 카메라 비품은 독지가로부터 후원받고, 사무실은 컴퓨터 있는 곳이면 아무 곳이나 홍보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11월 1일 오후 9시 사이트는 개통되었다. 창간기념식도 없이 그저 인터넷이라는 바다의 한가운데서 꿈틀대는 인터넷광명뉴스를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기자라곤 편집장이 취재하고, 만평 그리고, 사진 찍고, 사이트 운영하고, 그야말로 미약하고 초라한 지역언론의 초상이었다. 창간을 준비한다고 하자, 사람들의 95%는 독자도 없으며 흔한 사이트 중의 하나로 버려질 것이라고 내다 봤다.

애초 계획대로 창간 100일 기념식까지는 기사로 승부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평균 3건 정도의 새소식을 올리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창간 일주일, 사람들의 입에서 그래도 볼 게 조금 있다는 말이 나왔다. 클릭수는 기사당 하루 평균 20~30건, 일주일이 지나면서 150건을 넘어섰다.

공무원들은 의도적인지 애써 무시하는 듯하였다. 마침 광명시 임시의회가 열흘간 열렸다. 건강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인 시의회의 현장을 생중계하듯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실명으로 기사화해서 보도했다.

언론의 무풍지대였던 의회는 비상이 걸렸다. 실명보도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으나 의원들은 인터넷신문을 의식한 듯 출석과 회의 때마다 발언 등에 꽤나 신경을 쓰곤 했다. 의회와 공무원사회에 인터넷매체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고 클릭수도 높아졌다.

2002년 예산을 다루는 정기의회에서는 상임위에서 원안통과된 신문사 인테넛 사이트의 배너광고지원예산 중 올해 증액분을 전액 삭감하는 작은 쾌거를 올리기도 하였다.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던 광명시 장애인의 신속한 인터뷰기사와 문제점을 취재하는 기사 등으로 인터넷광명뉴스는 창간 60일째에 광명이란 지역사회에 새로운 대안언론의 가능성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비관적인 주변의 우려를 물리치고 맨손으로 시작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처럼 시민들이 기자가 되어 기사가 쭉쭉 올라오는 그날을 기다리며 지역사회의 정론지가 되기 위해 땀을 흘린다.

내년 2월 7일 창간100일 기념식을 통해 다시 한 번 광명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인터넷광명뉴스가 되고자 새롭게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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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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