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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24 12:05최종 업데이트 01.11.25 11:56

실리콘밸리에 '자폐증' 경보

"사소한 기술적 내용에 집착하고, 끊임없이 몸을 흔들거리며, 말을 할 때 아무런 억양도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회장이 자폐증상이 있는 게 아니냐며 의심하는 미국의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그의 기이한 습관이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모니터에 파묻혀 밥먹는 것조차 귀찮게 여기는 컴퓨터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자폐증 환자라며 농담을 하곤 한다. 머리 속에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야 하고, 사소한 오류 하나도 허용되지 않으며, 초인적인 집중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하이테크 업종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은 약간씩은 자폐증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정신과 의사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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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캘리포니아 보건당국이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자폐증 판정을 받은 아이들의 수가 폭증하고 있다는 통계결과를 발표하면서 자폐아 문제를 더 이상 농담거리로 여길 수 없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주보건당국에 따르면 1999년에 이미 실리콘밸리 지역의 자폐아 수가 6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더니 금년 6월 기준으로는 무려 1만5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자폐증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미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수치다.

자녀가 자폐증 판정을 받을 경우 치료비도 엄청나지만 부모 중 하나는 뒷바라지에만 전념해야 하는 탓에 대부분이 맞벌이 부부인 이들의 생활에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어 실리콘밸리 전체로 그 여파가 퍼져가고 있는 중이다. 자폐증에 시달리는 실리콘밸리 키드 중엔 인터넷 통신의 이론을 정립한 전설적인 제럴드 에스트린의 손녀 역시 포함돼 있다.

실리콘밸리 근로자의 자녀들이 특별히 자폐증에 많이 시달리는데 대해 정신과 의사들은 하이테크 엔지니어들인 부모에게서 자폐증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탓이 크다는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하이테크 업종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엔지니어들끼리의 결혼이 잦아졌으며 이에 따라 부모 양쪽에서 자폐증 유전인자를 물려받을 확률이 높아짐에 따라 자폐아가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정 주제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성향을 지닌 자폐아들은 특히 컴퓨터에 초인적으로 집중하는 편이다. 실리콘밸리의 자폐아 전문학교는 이런 사실에 착안해 학생들마다 노트북 컴퓨터나 PDA 등을 지급해 이들의 습관을 관찰하고 개인별 치료기법을 찾아내려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편으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단적인 집착증을 보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폐적 성격 자체를 정신병으로 취급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반기를 드는 의사들도 있다. 위대한 예술작품이나 혁신적 기술의 뒤에는 대개 골방에 파묻혀 며칠 밤을 지새우며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 천재적인 '자폐아'들이 있다는 문화인류학적 관찰이다.

갈수록 산업구조가 첨단화하는 한국의 기업들도 실리콘밸리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폐아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야 할 것 같다.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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