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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여의도 한강 둔치.
많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서성거리고, 확성기를 통해 요란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집회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던 탓에 행사가 이미 정리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조바심을 안고 서둘러 발을 옮겼다. 행사장까지 거리가 멀어 질러 갈 길을 찾는데, 검은 옷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몇몇 사람들이 주변을 통제하는 광경이 보였다. 집회장소를 통제하는 사복경찰인가 했는데, 그들 뒤로 펼쳐진 플래카드를 보고 그제서야 무슨 일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CITING CONCERT'
그러고 보니, 십대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어떤 가수들이 오는지, 콘서트 장에 설치된 방송장비나 좌석규모가 엄청났다. 조금 전에 들렸던 노랫소리도 콘서트의 사전 리허설 소리였다. 멀리서 언뜻 잘못보고 집회에 많은 사람이 참석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도대체 집회장소는 어디지?'
'벌써 끝난 거 아냐!'
무작정 찾아보기로 했다. 준비가 게을렀음을 후회하면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데 번뜩 눈에 드는 것이 있었다.
'민중 복지, 노동.....'
'저기다.'
서둘러 달려가 보니, 커다란 트레일러 트럭 위에 행사장비를 실어 임시 연단으로 만들어 놓고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여 명의 노동자들이 그 앞에 열을 맞춰 앉아 구호와 노래를 함께 외치고 있었다.
'민중의 복지. 노동권. 생활권 쟁취를 위한 연대 한마당'
이 집회는 지난 26일부터 중앙대에서 열린 연대한마당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행동의 날' 행사이다.
조금 전 지나쳐 온 콘서트 장의 시설과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하고, 일반인의 관심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의 모습은 콘서트의 어느 스타보다도 열정적이고 의연했다. 그들 앞에 세상의 무관심이나 시류 따위는 그저 밟고 넘어가야 할 작은 산에 불과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으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영세노동자, 산업재해를 당한 후 직장 복귀를 하지 못한 채 오갈 데 없이 내팽개쳐진 산재 피해노동자, 허울뿐인 장애인 정책으로 실질적인 노동과정에는 제대로 편입되지도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 실업과 반실업을 넘나들며 경제위기의 고통분담이라는 미명하에 내몰려진 실업노동자, 처참한 노동환경 속에서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마저도 거부당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이들은 스스로를 '주변부 노동자' 라고 부른다. 우리사회 노동시장의 한편에서 열악한 여건에도 끈질긴 생명력 하나로 견뎌가고 있는 사람들. 그 흔한 파업 한번 속 시원하게 할 수조차 없는 노동의 사각지대에서 그저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그들이 굴종과 억압 속에서 포기되어진 권리를 되찾겠다고 모인 것이다.
각 단위별로 참석한 노동자의 수는 적었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이 땅의 어두운 어딘가에서 고된 노동에 지친 몸으로 혼자 울고, 쓰린 가슴을 달래야 했던 수백만의 동료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대표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노동 현장에서 외롭고 힘겹게 싸워왔던 그들이 이제는 하나되어 결연히 일어서고 있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되어 우리 맞선다. 승리의 그날 위해."
이제 그들은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한발 한발 나아갈 때마다 뚫고 넘어야 할 수많은 장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힘겹고 긴 싸움이 되겠지만,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반드시 가고야 만다는 의지를 더욱 굳게 다지게 될 것이다.
"힘들 땐 동지를 쳐다봐~~ 자랑스런 얼굴이야~~"
"당당하게..... 때로는 악랄하게...."
"기필코, 투쟁!!~~ 승리!!~~"
막 시가 행진에 들어간 시위대 전도 차량의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경쾌한 민중가수의 노랫소리가 한강둔치 한복판의 콘서트장 빈 객석 위를 가로질러 한강 물을 따라 도도하게 메아리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