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니아주 앨런우드 연방교도소에는 현재 한국계 미국인인 로버트 김씨가 그리운 가족과 생이별한 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 그는 한국 정부에 미국 국가기밀을 넘겨준 죄를 뒤집어 썼다.
그는 지난 96년 미 해군정보국에서 문관으로 일하면서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북한 관련 문서 40여개를 넘겨준 혐의로 연방 수사당국에 체포돼 징역 9년을 선고받고 현재 4년 5개월째 수감중이다.
그동안 변호인단과 한국정부는 "김씨는 국방 관련 국가기밀을 제3자에게 넘겨줬음을 인정했기 때문에 손쓸 도리가 없다"거나 "한국 정부로서는 미국 시민권자에 대해 간섭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의 혐의 인정과 관련, "유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종신형에 처하겠다"는 검찰의 위협에 굴복해 유죄를 인정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사건발생초기 변호인단이 수사자료를 끝까지 제대로 열람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특히 한국에 건네주었다는 정보가 미국의 국방에 위협을 주는 것이 아니었던 점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공식대응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 극도로 개입을 꺼려왔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동안 정부는 "정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이제 기억에서 점차 희미해져가는 대만계 재미 과학자 리원허 사건은 로버트 김 사건 해결 접근법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는 미국의 핵무기 관련 기술을 중국에 넘겨준 혐의로 9개월간 독방에 갇혀 있다 지난해 석방된 바 있다.
원자탄 탄생지인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 국립원자력 연구소에서 핵폭탄분야 전문가로 지난 80년대 초부터 20년가까이 근무했던 리원허는 핵무기 설계도를 빼내 자신의 컴퓨터에 불법복사 한것과 관련, 지난 99년초 해고됐다. 그는 이어 연방수사당국의 집중조사를 받은 끝에 같은 해 12월 구속됐다.
사건 초기에는 국가안보론이 여론을 주도하는등 그에게 여러모로 불리했다. 그는 간첩죄를 비롯해 무려 50여개의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수사당국이 그에게 허위자백을 강요하고 거짓말 탐지기 결과를 숨기는 등의 과오를 저지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인종차별론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중국계를 비롯한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구명운동도 큰 힘이 되었다.
정치권에서는 공화당이 민주당 행정부의 허술한 핵정보 관리를 맹공하는 등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내 양심적 인사들도 한 몫 거들고 나섰다. 특히 한 전직 고위 FBI 요원은 "리원허보다 더 심한 불법행위를 하고도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고 증언했다.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연방정부에 대한 유형 무형의 반발이 팽배해지는 한편 미국과 중국관계도 급속히 냉각돼 갔다. 리원허가 간첩행위 혐의로 체포된 뒤 주룽지 총리 등 중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리원허 사건에대해 잇달아 유감을 표명하는 등 강력히 항의하자 미검찰은 기소시 간첩활동 항목을 슬그머니 빼기도 했다.
이처럼 다각적이고도 강력한 일련의 움직임속에 핵무기 관련 간첩행위라는 엄청난 혐의를 받고도 리원허는 마침내 석방된 것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종교계와 정치권등에서 로버트 김 구명운동을 펼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그나마 다행이다. 구명운동을 펼칠 계획이라면 강력하고도 철저히 다각적으로 하기 바란다. 질질 끌며 미적지근하게 대응해서는 이같은 문제의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특히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정부고위층의 강력한 유감표명등 제대로된 대응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