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들어가기 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 위해 네팔에 들렀다. 트레킹(Trekking)은 말 그대로 힘들고 긴 여행이다. 일반적인 등산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산에 오른다기보단 히말라야 봉우리들을 보며 산 주변을 계속 걷는다는 점. 아침부터 걷고, 점심 먹고 걷고, 어둠이 내리면 숙소에서 피로를 풀고, 다음 날 다시 또 걷고...
코스는 매우 다양하다. 안나푸르나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을 그리듯 도는 라운딩코스(약 30일 코스)를 비롯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코스 : Annapurna base camp)까지 갔다 되돌아 오는 코스(약 6박7일), 해발 3800고지의 묵띠나트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좀섬코스(Jomsom), 포카라에서 일출이 유명한 뿐힐과 고레빠니를 거쳐 내려오는 길(4~5일)... 이외에도 자신의 일정에 따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가는 코스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 나는 여기에 약간의 살을 붙여 좀솜+ABC코스를 연결해 14일간 히말라야 산자락을 걸어 보았다.
좀솜트래킹(2월 3일~2월 10일)
좀솜트래킹은 '애플파이트래킹'이란 애칭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트레킹 중 들르게 되는 마을인 '말파'에 사과가 유명해 사과로 만든 파이, 사이다, 팬케잌 등이 트레커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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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뚝체로 가는 길의 다울라기리 (오른쪽)닐기리 ⓒ 임현주 |
좀솜코스는 ABC와 달리 웅장한 히말라야 봉우리들을 가까이서 볼 수는 없다. 그저 머얼리 다울라기리, 닐기리, 안나푸르나 등을 두고 현지 마을을 탐사하는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대신 현지 주민들의 삶을 좀더 가까이서 볼 수 있기에 아기자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ABC가 웅장한 봉우리들이 내려가는 발길을 잡는 곳이라면 이곳은 사람들의 정이 발길을 잡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까끄베니의 춤바람
첫날, 포카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좀솜에 8시경 도착해 오늘의 목적지인 까끄베니에 도착한 것이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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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까끄베니 가는 길 (오른쪽) 까그베니 ⓒ 임현주 |
오늘밤 묵을 마을인 까끄베니는 안나푸르나 최북단 티벳고원의 '무스탕 왕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닐기리가 잘 보이는 곳이다. (무스탕 왕국은 따로 약 760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 티벳탄 마을)
나무들도 잘 자라지 않는 이 높은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까...하는 생각은 마을 구경을 한 후 금세 사라졌다. 바람과 추위에 대비해 낮게 올린 지붕, 겨울 대비로 지붕 위에 쌓아 놓은 장작들만 봐도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집안 구조는 대부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방이 있이 보인다. 이곳이 거실 겸 부엌, 양쪽 벽에는 낮은 나무의자가 붙어있어 의자나 침대로 사용하고 한 쪽 구석에는 화덕이 있어 차나 음식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침실은 침대 몇 개 들어갈 정도로 작은 공간...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집안 구석구석이 정말 깔끔 그 자체라는 사실, 그릇들이 모두 새 것인 줄 착각할 정도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은 후 산에서의 첫날 밤이란 감상에 젖어 식당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 숙소 주인인 도카(Dohka; 트레킹 비수기라 부모님은 추위를 피해 카트만두로 가 있고 그녀 혼자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와 친해져 마치 우린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온 주인처럼 편안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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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끄베니의 춤추는 도까 ⓒ 임현주 |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도카가 우리를 위해 네팔 춤을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러워하더니 시간이 흐르자 도카는 정말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있다. 결국 나중에는 우리까지 도카에게 차례로 불려나가 신나게 네팔 춤을 추고야 말았다. 유연한 몸동작, 천진스런 미소, 지칠 줄 모르는 도카의 춤과 함께 까끄베니의 밤은 깊어갔다.
스무살의 도카는 이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친 후 부모님을 도와 호텔일을 하고 있다. 트레킹 온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배워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하는 그녀의 꿈은 언니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못다한 공부를 하는 것. 이 곳이 답답하다는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왠지 나는 맘속으로 그녀가 이 곳에서 지금처럼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길 바라고 있었다.
헤어지는 날 아침, 그녀는 흰색 스카프를 하나씩 목에 걸어주며 'good luck'을 기원했다. 얼굴만큼이나 마음이 예쁜 도까, 트레킹 초반기에 만난 그녀는 트레킹 내내 우리의 가슴을 덥혀주는 천사였다.
괴로운 고산병
둘째날 까끄베니에 짐을 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묵띠나트로 향하는 길, 이곳은 3000고지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길이 좋다. 게다가 군데군데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절벽에는 나무가 전혀 없어 모래언덕처럼 보이고, 길에도 자갈과 모래가 많아 마치 사막 한 가운데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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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띠나트 가는 길 ⓒ 임현주 |
그러나 고도 때문인지 하늘빛이 정말 파랗고, 가끔씩 구름이 연출하는 풍경이 세상 시름을 다 잊게 해 줄 정도로 매혹적이다. 여기에 함께 한 일행 중 민요를 구성지게 잘 부르는 순덜(네팔어로 '아름답다'는 뜻)의 '사랑가'와 하모니카를 잘 부는 젊은 청년의 '이등병의 편지' 소리가 겹쳐 때론 영화 '서편제'를 찍는 기분으로, 때론 봄소풍을 나온 기분으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잘콧에서 점심을 먹은 후 3800고지의 묵띠나트로 향할 무렵 일행 중 유일하게 나만 고산병 증세를 느꼈다. 처음에는 모자 때문에 머리가 답답하단 생각에 강한 햇빛에도 불구하고 모자를 벗고 걸었다. 그러나 점점 머리는 바람 빠진 공에 바람을 넣는 것처럼 조여오기 시작, 일행에게 증세를 얘기했더니 이것이 바로 고산병 초기 증세란다.
고산병의 특효약은 첫째도 하산이요, 둘째도 하산이라는 데 여기서 도중하차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다행히 두통 외에 구토 등의 증세로 이어지지 않아 최대한 천천히 묵띠나트로 향했다.
묵띠나트에 도착해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시니 두통이 많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일행 중 2명이 갑자기 전문적인 장비를 갖추고 올라가야 하는 쏘롱라(thorung la, 5416)로 향하겠다고 나섰다. 쏘롱나는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 중 가장 높은 고지로 작년에는 일본인 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올해는 독일인 한 명이 헬기로 구조된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곳이다. 특히 지금은 겨울에 내린 눈이 쌓여 길이 열렸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
묵띠나트에서 충분히 휴식을 하고 올라가다 약간의 이상이 있으면 내려온다는 다짐을 받고 그들은 묵띠나트에, 나머지 일행은 까끄베니로 향했다. 나 또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3천고지에서 고산병을 느낀 상태라 깨끗이 포기하고 하산길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