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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27 10:05최종 업데이트 00.12.27 17:46

중고자동차와 미국생활 <1>

미국 생활에서는 자동차가 꼭 필요한 것 같다. 필자도 그래서 지난 94년 5월 유학생활 한 학기만에 중고 자동차를 한 대 구입했다. 기숙사 생활을 했던 첫학기 동안은 승용차 없이도 그런 대로 지낼 만했지만 아내와 갓 돌이 된 첫애도 합류해 Off Campus 생활을 하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일제를 살까 미제를 살까 궁리하다 '패밀리카로는 차체가 튼튼하고 큼지막한 미제가 좋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미제를 사기로 맘 먹었다. 신문광고란를 뒤지거나 딜러에도 가보았지만 결국은 어느 집 앞에 'For Sale'로 내놓여 있는 차량이 있어 덥썩 그 놈을 사고 말았다.

GM에서 나온 85년형 뷰익 센추리였다. 3200달러 부르는 것을 넉살좋은 미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2900달러에 샀다. 차 주인은 '나도 한국 친구가 많다'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딜 (Deal)을 끝내고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을 시켜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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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9년이나 된 중고차였지만 외장은 아직 실버색이 은은하고 나뭇결 무늬의 인테리어, 응접실 소파 만큼이나 푹신한 시트와 크루즈 컨트롤 등 과분할 정도로 좋아 보였다. 당장 등록과 보험을 들고는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특별한 용무도 없이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녔다.

그런데 역시 중고차는 어쩔 수 없었다. 구입한 지 한달도 안 돼 대시보드 밑에서 옅은 녹색의 액체가 흘러 조수석 레그룸(Leg Room)이 흥건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동액이었다. 히터 코드 교체와 더불어 나온 수리비가 300여 달러 가까이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전 차주인이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중고차는 다 그렇겠거니'하고 말았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정비업소를 들락거렸지만 약1년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엔진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며칠 후 언덕배기 도로상에서 서 버리고 말았다. 엔진룸에서 연기까지 내뿜으며 지쳐 나가 떨어진 그 놈을 보니 예사로운 문제가 아닌 듯했다. 딜러한테 견인해 가니 모터가 완전히 맛이 갔다며 폐차시키든지 모터를 교체하라고 했다. 구입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폐차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모터교체 견적은 무려 2000여 달러가 나왔다.

차를 일단 딜러 주차장에 맡겨놓고 나의 절친한 미국인 친구 빌와 상의해 보았다. 빌은 GM 자동차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단(Don)이라는 베트남인에게 상의해 보자고 했다. 단은 빌의 도움으로 미국생활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보트피플 출신의 베트남인이었다. 단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비업소를 소개해 주었다. 자신의 픽업트럭을 수리한 곳인데 기술이 만족할 만하고 딜러에 비해 정비 가격도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딜러한테 가 있던 차를 토우트럭에 매달고 단의 트럭을 얻어타고 인근에 있는 그 정비업소에 갔다. 60대 중반의 노인과 20대로 보이는 백인 기술자가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친절하니 우선 마음이 놓였고 가격 또한 딜러에 비해 아주 저렴했다. 라디에이터와 팬벨트 등 여러 부품 교체를 포함해 리빌트(Rebuilt)한 모터를 새로 얹는데 1500달러의 견적이 나왔다. 필자는 며칠간의 차 없던 불편함을 생각하며 그저 고쳐주기만 하면 감지덕지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이 와서 그 정비업소에 갔다. 그런데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동을 걸어보니 문외한인 필자가 보기에도 엔진소리가 지나치게 요란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떨거덩 소리 같은 금속성마저 들렸다. 기술자에게 물으니 청진기 비슷한 것 (사실은 의사가 쓰는 청진기와 꼭같아 보였음)을 모터의 여기저기에 대가며 무언가 신중하게 검사하는 듯하더니 '괜찮다', '엔진이 좀 돌아가면 안정될 것이다'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기술자가 괜찮다니 그런 줄 알아야지 차에 대해 무지몽매한 내가 어쩌겠나'하는 심정으로 피같은 외화 1500여달러를 지불하고 차를 운전해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운전을 하면 할수록 엔진소리가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10여 마일 거리의 집에 당도하지도 못하고 도로상에 서 버리고 말았다. 잠시 모터를 식힌 후 다시 시동을 걸어 집에까지 가까스로 오긴 했지만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 이런 배신감'이란 원망이 절로 나왔다. 다른 정비기술자에게 알아보니, 모터는 리빌트된 것이 아닌 아주 오래된 중고상태 그대로였다. 미국 생활에서는 회계사와 자동차 미캐닉 잘 만나면 반은 성공이라더니, 미국생활 초자가 미캐닉 잘못 만나 한방 제대로 얻어맞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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