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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14 00:00ㅣ최종 업데이트 00.02.21 19:58

디지털 비트신, 아날로그 이상 그리고 버림받은 한 아웃사이더의 특이한 삼중주.

'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 - 디지털 풍경 마음의 도'
김민수 지음. 생각의 나무


"사람은 절망하라. 사람은 탄생하라. 사람은 탄생하라. 사람은 절망하라."
- 이상 [선 에 관한 각서 3] 마지막 구절

이 한 권의 책은 마치 어떤 삼중주의 연주를 연상케 한다. 이 특이한 삼중주는 무엇보다 최근 폭발하고 있는 사이버 시대에 '마음의 도(道)' 라는 철학적 울림으로 시작된다. 저자의 도(道)는 먼저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확산을 둘러싼 인문학자들의 편견과 집단 위기감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이면에는 '사유와 몸' 을 갈라놓는 근대 인문학의 한계와 딜레마가 깊은 심연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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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인문학자들은 사실상 테크놀로지를 보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지적 편견과 단지 그것들을 '사유의 대상' 으로 삼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거기에다 다른 한편에서 공학의 질주와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시각예술과 디자인의 딜레마라는 연쇄 반응. 차라리 저자는 이미 현실은 '이미지 세계 속의 존재(Image-in-the-Image-World)' 이고 그러한 세계 속으로의 '던져짐' 을 요구한다고 강조한다.

그 메인 선율을 배경으로 저자 자신의 '몸' 자체가 첼로 풍의 굵은 베이스로 책 저편에서 울리기 시작한다. 저자의 교수 재임용 탈락을 둘러싼 교수사회의 역겨움들과 그를 도왔던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저자 자신의 마음의 풍경이 선율사이로 고통스럽게 베어난다. 객석이 서서히 상기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객석은 소크라테스의 글에 대한 경고로부터 데카르트를 거쳐 현대 디지털 미디어 혁명을 둘러싼 인식론적 패러다임의 전환에까지 폭넓은 주제적 변주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윌리엄 깁슨의 [뉴로멘서]부터 [공각기동대] 등의 가상공간을 다룬 작품들과 다다와 초현실주의,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의 철학자들 등 활기 있는 에드립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거기다 최초로 다중 매체의 감각세계를 그려냈다는 아날로그 시인 이상(李箱) 에 대한 하이 톤의 바이올린이 독주로 울리면 연주는 그 비약의 활기찬 에너지를 유감없이 발하며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거기서 '박제화 된 천재' 라는 고전풍의 갑갑한 액자 따위들을 부수고 이제 막 가상공간으로 날아오는 시인의 새로운 날개를 엿볼 수 있다. 독자가 거기서 서태지 앨범 디자인의 날개를 연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 피아노 - '디지털 주사위 던지기-하이퍼미디어와 시각문화'

1897년 말라르메는 그의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말살치 않으리]라는 악보와 같은 한 편의 시로 당시 '주제의 신화' 에 사로잡힌 예술가들을 해방시키는 도박을 감행했다. 그는 순차적이고 선형적인 글쓰기의 고루한 문단에 대해 마치 한 방이 아니라 여러 방을 먹여야겠다는 듯 시어들을 지면위에 사정없이 뿌려버렸다.

하지만 저자는 "이같이 우연성으로 예측되었던 미래는 기계 미학의 단선적 탄도를 따라 형식주의의 과녁에 박혀 버렸다" 고 말한다. 추상화된 미니멀리즘의 깊은 침묵속에서 '새로운 삶을 위해 싱싱하게 분출했던 최초의 풍부한 은유와 역동적 에너지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는 것.

하지만 의미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새로운 '디지털 도박판' 이 벌어진 것이다. 저자는 말라르메의 아날로그 주사위를 넘어 '전자적 비트' 로 이루어진 '하이퍼 미디어' 도박판에 '디지털 주사위' 를 던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는 정보 기술주의자들이 그 기술적 매체적인 놀라운 효과만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현재의 현상이 단순한 구매체와 신매체의 상호공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의 전쟁' 이라고 주장한다.

곧바로 저자는 기존의 서구 시각문화에서 구축되었던 '시각성' 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왜냐하면 과거의 문화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없다면 현재의 디지털 매체는 아날로그의 '기술적 연장' 이 되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대 시각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저자는 근대에 들면서 모든 사물과 이미지의 형태 개념이 '관찰자' 로 부터 시각적 거리를 유지하는 순수한 대상적 의미로 떨어져 나갔다고 요약한다. 즉 현대의 큐비즘, 구성주의, 절대주의, 바우하우스, 미니멀리즘 등은 모든 인지적, 역사적, 정치적 형태의 인간경험이 배제된 기계적인 지각 과정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비판의식으로부터 그는 오히려 1945년 하이퍼 미디어를 주창한 베니버 부시를 주목한다. 베니버 부시는 기존의 목차, 참고 문헌 목록, 색인으로 이뤄지는 검색방법이 부적당하다며 "인간의 마음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고 연상에 의해 움직인다" 고 주장한 인물. 그는 '미멕스(Mimex)' 라는 여러 정보를 저장하고 속도와 유연성을 조장하기 위해 기계화 되고 기억을 확장시키는 친숙한 보조장치를 제안했다. 즉 비선형적인 방식의 하이퍼 텍스트 및 미디어를 제안한 것.

저자는 부시가 제안한 하이퍼 미디어를 중심·주변·체계와 선형성이라는 근대적 사고에 근거한 개념들 대신 저자의 죽음과 비결정적 기표(바르트), 결집점(node)과 지시대상들의 연결망(푸코), 유목적 주체와 사고(들뢰즈와 가타리), 상호텍스트성, 불연속성과 어셈블리지(데리다) 등의 개념들을 불러들여 설명한다.

하이퍼 텍스트는 이러한 접합과 연결, 조작에 의해 끊임없이 형질이 변하는 '변화로의 가능성' 을 내포한 '생성적 의미' 를 지닌다는 것. 저자의 폭넓은 인문학적 공학적 지식의 연결과 접합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한껏 드러나는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하이퍼 미디어의 잠재성을 그 기술력 자체에서 본다기 보다, '참여자' 들의 능동적인 결합의 가능성에서 바라본다. 그것은 이제까지 인간 경험이 배제된 기계화된 지각과정에서 벗어나 특정한 지식의 형태, 욕망의 체게, 사회 권력의 여러 방식과 관계를 맺으며 저항하고 창조하는 '행위' 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위기는 학문자체의 위기가 아니라 '지식을 대하는 태도의 위기' 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인문학자들의 '이미지와 시각성' 에 대한 무관심과 시각예술가들의 감각적인 재능 중심주의의 깊은 심연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시각예술사이의 긴밀한 접합과 상호연결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하이퍼 미디어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에서 얼마나 그 결합이 행복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심연이 상당히 깊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 그 잠재성들이 주사위로 튀어오를지 또한 기대되는게 사실이다.

# 첼로 - '시차' -이상(李箱)이 겪은 또다른 수난과 김교수의 '하이퍼에 대한 각서'

이 세상의 모든 "현전은 비동시적인 상이한 시간들의 혼합이며, 한 시대의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사실 다음에 올 뿐만 아니라 시차로 다가온다" (Hal Foster "Postmodernism in Parallax" October(1993),no.63

역설적이게도 이상(李箱)은 그의 사후에도 '박제가 된 천재' 로 남을 것을 예견할 줄 아는 '천재' 였다. 죽은 자를 평가하는 것은 산 사람들의 몫. 죽은 자들은 끝없이 무덤위에 호출되면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칼질을 당하고 분장을 당하며 영웅에서 배신자까지, 냉혈한에서 휴머니스트까지 변화무쌍한 연기를 해내야만 한다.

이 '연출없는 과정' 은 피로한 것이고 끝도 없는 것이다. 그들의 연기된 '흔적' 들을 보라. 그 계보학들은 바로 '역사' 의 생생함을 그대로 전해줄 것이다. 이상에 관한 수 백여편의 논문들과 서평, 에세이들은 그 주제와 내용들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국면들속에서 자신의 문화적 지평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담론의 장은 그러므로 피의 냄새가 묻어 있다. 그리고 때로 죽은 자는 회귀하기도 한다. 그 피로한 연기들을 마치 한 방에 끝장이라도 내려는 듯이.

저자인 김민수 교수는 침묵과 후광속에 안전했던 시인 이상(李箱)을 왜 무덤속에서 호출했는가. 왜 천재의 박제를 부수고 그에게 피와 생명을 주려는 불온한 제의를 저질렀는가?
(약간의 비약이 있지만) 왜 김교수는 그로 인해 이상이 받았던 수난을 스스로 감내하는가? (그는 '시각 예술의 관점에서 본 이상 시의 혁명성' 이란 논문으로 인해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물론 그 논문이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그가 저지른 '불온한 행동' 들이 숨겨진 이유라는 게 정설이다. 즉 무모하게도 김교수는 박제만큼이나 단단한 도제적 교수사회에서 스승들을 친일이다 뭐다 하며 잠든 사자들을 깨우고 흔들어 놓은 것이다. 한국의 교수사회에서 풍기는 악취는 더 이상 맡지 않기로 한다.)

그가 (완전한 비약이지만) 이상(李箱) 의 삶을 살며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이상-김민수는 현재의 떠들석함에 대해 한마디 뱉는다.

"왜들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 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이도 좀 뉘우쳐 보아야 아니하느냐"
그리고 그는 곧바로 제의에 몰입해 새로운 에너지들을 발산한다. 그것은 이상이란 비트신이 그에게 다운로드되어 "빛의 속도로 고요하게 여행하는 전자의 양자" 가 되는 세례를 받기 시작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와 절대적인 유클리드 기하학, 뉴턴의 고전 물리학들의 죽음과 새로운 자아의 탄생, 선언.

# 바이올린 - 날개를 펼치는 '마음의 도(道)'

이때 뚜우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리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내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 보잤꾸나.
- 이상, [날개], {이상문학전집2 소설}

'翼殷不逝 目大不覩' (날개는 큰데도 제대로 날지 못하고, 눈이 큰데도 보지 못한다.-[오감도] 시 제5호 중)라는 말이 있다. 장자의 말이다. 그것은 마치 공기가 없는 대기를 날아야 하는 커다란 새의 운명과도 같다.

그리고 그, 그녀 혹은 당신이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고 갑자기 날아보고 싶은 욕망이 들 때 아마 그, 그녀 혹은 당신은 저 공기의 허약함을 저주하리라. 그 저주가 깊어 고산의 고독한 공기를 마시러 짜라투스트라처럼 여행길에 올라도 무방하리라.

새로 태어난 이상은 디지털 비트라는 공기를 얻어 막 날개를 펴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이해되기 힘든 상상일 것이다. 그것은 꿈과 같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꿈인가. 혹은 꿈 자체가 누군가를 꿈꾸는 것은 아닌가? 이제 연주는 끝났다. 연주는 시작됐다. 연주는 끝났다. 연주는 시작됐다.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선언되었을 뿐 경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연주가 끝나고 - 우리들은 떼지어 남쪽으로 간다

"바람의 쌓임이 두텁지 못하면 붕새의 큰 날개를 지탱할 만한 힘이 없으니, 그런 이유로 구만리를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은 구만리 두께의 바람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에야 비로소 바람을 탈 수 있게 되며,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앞길을 막는 것이 없게 된 다음에야 비로소 남쪽을 향해 날아간다. 매미와 비둘기가 그것을 보고 비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펄쩍 날아올라 느릅나무와 박달나무에 솟구쳐 오르되 때로는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기도 하니 무엇때문에 구만리나 올라가 남쪽 끝까지 가는가?"
- 장자 내편(內篇) [소요유(逍遙遊)] 중에서

이 책은 디지털, 혹은 사이버 컬쳐의 가능성에 대한 독특한 행간을 제공하는 맛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은 불충분하고 선언적인 것에 머물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실제 창작물들이나 문화적 축적들이 일천한 탓이다. 또한 인문학적인 '다중음성성'이나 '상호텍스트성' 등을 디지털 그 자체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쌓임이 두터워질 '바람' 이 될 수 있는 가능성-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아날로그이든 디지털이든 우리는 또한 연대의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바로 당신이 보고 있는 이 지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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