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02 12:08ㅣ최종 업데이트 26.10.0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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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열린 제81차 유엔 총회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열린 제81차 유엔 총회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최근 유엔총회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 두 명을 한국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한국 정부는 비공개 약속을 어겼다고 반발했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그런 약속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다시 비공개 합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은 진실 공방으로 번졌다.

약속이 있었다면 지키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는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전쟁포로의 신원과 행방은 애초에 국가가 필요에 따라 공개해도 되는 정보인가.

약속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제3제네바협약 제13조는 전쟁포로를 폭력과 위협, 모욕뿐 아니라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보호하도록 규정한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오늘날 이 원칙이 식별 가능한 사진·영상과 개인정보 공개에도 적용된다고 해석한다.


더구나 이 두 북한군 포로는 이미 이 문제로 국제기구의 지적을 받은 당사자들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생포 직후 두 사람의 얼굴과 영상을 공개했고, 심지어 한국 언론의 취재까지 허용했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이후 보고서에서 두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사진과 영상의 광범위한 유통이 제네바협약 제13조의 보호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원 노출이 북한에 남은 가족을 보복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선일보>가 사설 제목에서 물은 "이미 입국, 공개하면 왜 위험해지나"에는 이미 국제기구의 답이 있다. 반면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입국 사실을 알고도 신변 안전과 외교관계, 국익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쟁점은 북한에 얼마나 강경하냐가 아니라, 포로 정보 공개가 가져올 위험을 어디까지 헤아렸느냐에 있다.

다만 한국 이송 뒤 두 사람의 전쟁포로 지위가 언제 종료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젤렌스키의 이번 유엔 발언 자체를 제네바협약 위반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위법 여부와 공개를 결정한 정치적 책임은 별개의 문제다. 이미 위험성이 알려진 정보를 공개했다면, 그 선택과 외교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최고 정치책임자인 젤렌스키에게 남는다.

그렇다면 왜 굳이 공개했을까.

젤렌스키가 노린 정치적 효과

9월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 총회에서 각국 대표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9월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 총회에서 각국 대표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젤렌스키 연설의 계산은 비교적 선명하다. 북한군 포로 두 명에서 시작해 러시아가 세계 47개국 국민을 전쟁에 이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넓혔다. 두 사람은 전쟁의 국제화를 보여주는 증거가 됐다.

한국을 향한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서 현대전 경험을 쌓고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이 강화된다면 한반도의 위험도 커진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과 무관한 먼 유럽의 전쟁이 아니라는 논리다.

국가정보원도 이번 공개가 한국 여론의 우크라이나 지지를 높이고 추가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젤렌스키는 북한군의 참전 이후 한국에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해 왔다.

이런 방식은 젤렌스키에게 낯설지 않다. 그는 전쟁 초기부터 외국 의회와 국민에게 직접 말하고, 상대국의 역사적 기억과 상징을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연결하면서 지원을 요구해 왔다. 관련 연구들은 이를 '전시 공공외교(wartime public diplomacy)'의 사례로 보며, 우크라이나의 서사를 외국 공중에 확산하고 국제적 지원을 끌어내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전쟁 중 정부 간 협상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국의 국민과 여론에 직접 호소해 그 나라의 정책 선택에 영향을 미치려는 외교다. 문제는 북한군 참전 문제에서 이 방식이 사실 판단과 정책 결론을 너무 쉽게 하나로 묶는다는 데 있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러시아로부터 군사기술을 얻는다면 한국의 안보 위험이 커진다는 명제는 성립한다. 북한군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전술과 장비를 가져오는지는 한국이 면밀히 분석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한국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깊이 군사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상대가 한 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고 해서, 우리도 같은 전장에 들어가야 그 위협에 대비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북한군이 무엇을 배웠는지 분석해 한반도의 교리와 훈련, 장비와 정보체계에 반영하는 일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우크라이나가 폴란드의 합동 분석·훈련·교육센터(JATEC)에서 우크라이나전의 교훈을 NATO의 교리와 전력 개발에 반영하는 것도 같은 방식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안보와 한국 안보가 연결됐다'는 사실 판단과 '그러니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더 깊이 개입해야 한다'는 정책 결론 사이에는 한 단계가 통째로 빠져 있다. 젤렌스키식 메시지는 바로 그 간격을 최대한 좁히려 한다.

여기서 가시성과 설득에 치우친 전통적 공공외교의 한계도 드러난다. 많이 보인다고 더 공공적인 것은 아니다. 상대국 국민을 움직이는 것과 그 나라의 별도 이해와 선택을 인정하는 것도 다르다.

이번에는 우크라이나가 가시성의 이익을 얻는 동안 포로와 가족은 안전의 위험을, 한국은 외교·안보적 부담을 떠안았다. 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쪽이 비용을 부담했다. 일종의 '가시성의 외부효과'다.

3년 전의 데자뷔

2023년 4월 5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회동에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오른쪽)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같은 해 9월 20일 양국 간의 무역 분쟁이 격화되면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2023년 4월 5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회동에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오른쪽)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같은 해 9월 20일 양국 간의 무역 분쟁이 격화되면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AP 연합뉴스

이 문제가 한국에서 처음 나타난 것도 아니다. 2023년 우크라이나의 값싼 곡물 수입 문제로 폴란드 농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폴란드 정부는 수입을 제한했고, 젤렌스키는 유엔총회에서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연장한 일부 유럽 국가들이 연대를 가장하면서 사실상 러시아를 돕고 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대사를 초치했고 당시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경고가 나왔다. 대표적 독립언론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젤렌스키 외교팀 관계자를 인용해 "파트너들과의 허니문은 끝났다"고 전했다. 감정적 호소만으로 장기적인 지원을 유지하기 어려우며, 이제는 파트너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년 뒤 한국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다. 우크라이나 매체 <뉴 보이스 오브 우크라이나>는 이번 논란이 한국의 '조심스러운 우크라이나 지원'을 키이우에 대한 '공개 비판'으로 바꿨다고 짚었고,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비공개 약속을 부인한 대통령실과 이번 공개를 "쇼와 이슈 몰이"라고 비판한 외교라인의 충돌을 그대로 전했다.

2023년에는 파트너의 말을 듣지 않으면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고, 2026년에는 한국이라는 협력국과의 신뢰가 실제로 흔들리는 장면이 나타났다. 사안은 다르지만 우크라이나의 필요를 국제적 연대의 문제로 만들고, 상대국의 별도 이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충돌하는 구조는 놀랄 만큼 닮았다.

여기에 젤렌스키 외교를 둘러싼 '서투름'이나 '자기 객관화 부족'이라는 평가를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할 열쇠가 있다. 상대국의 역사와 공포를 자신의 이야기와 연결하는 능력과, 그 나라의 독자적인 이해가 자신의 요구와 충돌할 때 이를 자기 판단 안에 넣는 능력은 같은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가 침략의 피해국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피해자의 도덕적 정당성이 다른 국가의 국익과 위험까지 대신 판단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외교에서 정의는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이해와 위험 속에서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기술이다. 젤렌스키는 전쟁 내내 세계를 향해 말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상대가 하는 말을 듣는 기술이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 기술도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현지 보도]

이번 포로 공개 논란이 서울의 대우크라이나 태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다룬 분석 기사
https://nv.ua/ukr/world/geopolitics/noviy-skandal-u-pivdenniy-koreji-cherez-polonenih-z-kndr-i-vpliv-na-ukrajinu-koreyeznavec-polishchuk-50645423.html

이번 한국 사안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발레리 찰리 전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 칼럼
https://zn.ua/ukr/WORLD/kijiv-vs-seul-diplomatichnij-skandal-jakoho-mozhna-bulo-uniknuti.html?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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