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2일 당시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 등이 서울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여 명의 서명이 담긴 서명지와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천주교나 개신교나 표현의 방식은 다양하지만 이들의 의견은 '태아는 수정되는 순간부터 생명이고 그렇기에 인공 임신중절은 살인'이라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수정란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인간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믿는다면 사회제도도 그에 맞춰서 바꿔 달라고 요구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까. 그날부터 주민등록도 가능하게 하고 아예 한 사람의 생일도 수정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나. 정말로 그 의견에 진심이라면 말이다.
만약 수정란이나 배아가 온전한 한 명의 인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생명'이긴 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고 이해해 보자. 그렇다고 해도 천주교나 개신교계의 태도는 매우 표리부동해 보인다. 세속 사회는 '생명 보호'를 지향하지만 생명을 죽이는 걸 아예 금기시하진 않는다. 생명을 죽여 육식을 하고 자연을 밀어 거기에 인간이 살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천주교계나 개신교계가 이런 일에 반대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건 천주교나 개신교계의 인공 임신 중지 반대 주장이 합리적 숙고에 따른 존중할 만한 의견이 아니라 낡은 교리에 따른 관성적 주장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계가 임신 중지에 대해 가진 의견과 세속 사회에서의 행보가 충돌하고 모순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나는 임신 중지의 직간접적 당사자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합리적 고민과 깊은 숙고를 했다면 설령 생각의 차이가 있더라도 의견을 낼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속적 기준과 동떨어진 교리를 가지고 자동응답기처럼 관성적으로 같은 답을 내놓는다면, 그건 곤란하다. 건강과 안전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의견으로 취급하기에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사실 교회는 많은 걸 금지해 왔다
사실 지금까지 종교계는 교리에 따라 별의별 것을 금기시해왔다. 대표적으로 가톨릭을 한번 살펴보자.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금기시 했다. 성경의 신명기 23장 19절에 "네가 형제에게 꾸어 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은행가들이 '재량 예금'이라는 걸 발명해서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에게 재량껏 감사를 전하는 사실상의 이자 상품을 만들었는데, 주요 고객이 엄청난 헌금을 가진 가톨릭 주교와 추기경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세상은 급격히 변했다. 이제는 더 이상 교인들 간에 이자를 주고받아선 안 된다는 종교인은 없다. 대부분 은행에 예금을 넣어 놓고 주기적으로 이자를 받고 있을 것이다. 혹은 대출을 받고 이자를 내고 있거나.
가톨릭교회에는 금서 목록도 있었다. 목적은 외설적이거나 신학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내용을 담은 책을 금지하고 이를 피해 신앙을 지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선 어이가 없지만 당시 기준으로 외설적으로 보였겠다 싶은 책들이 목록에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라던가 혹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이라던가.
하지만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같은 책이 목록에 올라가 있는 건 다소 의아하다. 과학계는 종교계와 그다지 친밀하지 않으니 과학 서적이 목록에 올라간 건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다. 아무튼 이 금서 목록의 구속력은 1966년에서야 사라졌다. 사상의 자유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발전한 지금 세상에서 사회학·철학·과학 도서를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종교인은 이제 거의 없다.
세상이 움직이면 교회도 바뀐다
▲2010년 10월 14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천주교 신자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정훈
그 외에도 가톨릭교회가 과거에 못마땅하게 여긴 것들은 많다. 마취제 사용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고 과학을 탄압하며 지동설을 부정한 건 유명한 사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마취제 사용을 지양하거나 천동설을 주장하는 가톨릭 교인은 없다. 종교가 변해서 그런 걸까. 아니다. 세상이 변해서 그런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상의 자유, 고통 없이 안전하게 치료받는 문화 그리고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이 '원칙'으로 자리 잡았을 때, 교회는 그 세상에 맞춰서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성경에 쓰인 문구가 어떻건 교리가 어떻건 간에 말이다. 그리고 나는 임신 중지 및 미프진 도입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형법상 낙태죄 조항이 헌법 정신과 맞지 않다면 법을 개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를 방패 삼아 종교인들의 눈치를 보며 입법 공백을 방치했다. 무려 7년 동안이나 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톨릭·개신교인들의 미프진 도입 및 임신 중지 반대는 낡은 교리에 기반한 반사적 반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과거에 이들이 별의별 것들을 금기시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세상을 움직여야 한다. 인공 임신 중지와 이를 위해 필요한 약물을 구하고 사용하는 것을 불가역적인 상식이자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원칙이 단단히 뿌리내리면 종교도 결국 세상에 맞춰 태도를 바꿀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정치가 움직여야 한다. 정부의 이번 조치를 계기로, 정치도 미뤄둔 입법 공백을 이제는 메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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