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박정훈 의원과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 박 의원 사무실에서 열린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신약 임상실험 승인 청탁 의혹' 관련 제넨셀·세종메디칼 주가조작 피해자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해자(가림막 뒤)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제넨셀 관련 투자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재수사 및 특검을 요구했다. 이들은 김 후보자의 신약 로비 의혹과 관련해 제넨셀과 세종메디칼 주가조작의 전모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공개 주식정보 이용
김 후보자가 식약처장에게 양씨 민원을 전달한 지 일주일 만인 2021년 10월 19일, 세종메디칼은 대주주 강씨 소유 주식 매입 등 제넨셀에 약 113억 원을 투자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다음날 강씨는 양씨에게 미공개 정보인 세종메디칼 투자 소식을 알리면서 1억 원을 송금했다. 수익을 절반으로 나누는 조건이었다. 양씨는 지인들에게도 매수를 권했다. 10월 26일 임상시험 승인이 떨어진 날 세종메디칼 주가는 크게 치솟았다가 주가조작 세력의 개입으로 다음날부터 급락하면서 피해자가 속출했다.
세종메디칼은 제넨셀의 임상 중단 및 대규모 투자 손실로 인해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그 과정에 3만 명이 넘는 소액주주가 손실을 봤다. 실제 임상에 참여해 신약을 투약 받은 환자들의 피해도 빼놓을 수 없다.
야당은 김 후보자의 책임을 거론한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 측은 시점의 문제를 들어 선을 긋는다. 제넨셀 투자 협상은 민원 전달 이전부터 진행됐고, 최대 주주 변경도 임상시험 승인 일주일 전에 이뤄져 민원 전달과 인수를 연결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넨셀 또는 세종메디칼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이런 해명이 먹힐지는 의문이다.
4. 사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
법원은 강씨에 대해 위계공무집행방해(허위 동물실험 자료 제출), 자본시장법위반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반면 배임과 범죄수익은닉 등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별개로 양씨와 강씨는 뇌물공여약속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김 후보자는 강씨와 접촉한 적이 없다. 재판부는 "양씨의 문자나 통화만으로 식약처의 정상적인 승인 절차를 생략하거나 특정 기업을 우선 검토해 달라는 청탁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강씨에 대해선 "임상시험 승인을 기회로 투자유치 등 금전적 이익을 취득하려 했다" "죄질이 좋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청탁 자체가 위법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임상시험 승인이 난 후 양씨로부터 정치후원금 500만 원을 받기로 약속했지만, 후원금 한도가 찬 탓에 실제로는 송금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김 후보자에게 유리한 정황이다. 검찰은 김 후보자에 대한 불기소 이유서에 "국회의원인 피의자가 식약처장에게 국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업체에 대한 임상시험 계획 승인을 신속히 처리해달라는 취지로 부탁한 것을 두고 청탁 자체가 위법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이처럼 사법적 측면에서는 김 후보자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 다만 도덕적 책임까지 없다고 말하는 건 무리다. 대가성 금품을 안 받았다고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니다. 특별한 사적 관계자의 이권이 담긴 청탁을 공적 민원으로 포장해 공공기관장에게 거리낌없이 전달한 정치인이 법무부 장관에 오르는 걸 일반 국민은 어떻게 볼까?
5. 말 바꾸기와 거짓 해명
발단은 2022년 2월 김 후보자와 양씨, 정모 부장판사가 함께 찍힌 사진이다. 애초 김 후보자 측은 "사적 모임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뿐 이후 이들과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지만, 이후 공개된 통화 녹취록이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김 후보자는 2021년 양씨와 통화하며 정 판사를 "나랑 단짝"이라고 소개했다. 정 판사는 2023년 12월 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 후보자는 초임 판사 시절인 2004년 양씨를 처음 만나 약 20년간 인연을 이어왔다. 양씨는 김 후보자를 "나의 영원한 멘토"라고 불렀고, 김 후보자는 한때 유흥업소를 운영했던 양씨의 형사사건 변호까지 맡았다. 김 후보자는 2022년 2월 9일 양씨와의 통화에서 "보고 싶어 눈물이 나네"라고 말했고, 양씨는 "지금 달려갈게"라고 답했다. 이후 2023년 4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사진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우연한 마주침'이라는 해명의 신빙성은 더 흔들렸다.
김 후보자와 정 판사는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로 2002년 전주지방법원에서 함께 근무했다. 2024년 6월 정 판사 아들은 김 후보자 의원실에 입법보조원으로 채용돼 3개월간 일했다. 입법보조원은 '스펙'을 채우고 싶어 하는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한 자리로 꼽힌다. 이를 두고 '보은성 채용' '아빠 찬스'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김 후보자 측은 "실비 보상 외에 정식 급여가 지급되는 직책도 아니며 (강씨) 영장 기각과 입법보조원 채용은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김 후보자 측은 애초 정 판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별 친분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후 증거들이 드러나자 "과거 후보자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 판사로, 이후에도 다양한 법조계 모임 등을 통해 만남을 이어온 사이"라고 말을 바꿨다. 김 후보자 주장과 달리 단순한 실무 착오가 아니라 반복적인 거짓 해명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만하다.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다면, 치명적이다.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
종합하면, 이 사건의 주요 논점은 ▲행위의 성격(민원 대 청탁) ▲절차의 공정성(임상 승인 특혜) ▲피해의 실재성(주가조작·소액주주 손실) ▲도덕적 책임 ▲인물의 신뢰성(거짓 해명) 등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어떤 쟁점이 부각되고, 어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느냐에 따라 논쟁의 무게중심이 이동할 수 있다.
여권은 김 후보자에게 유리한 검찰과 법원 판단을 내세워 자료 입수 경위의 불법성, 녹취록 편집, 제보 동기 등을 집중 공략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사안의 본질이 아닌 데다 대세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서 부정적인 여론의 물줄기를 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후보자의 부적절하고 부도덕한 언행을 '공공의 적' 한동훈 의원에 대한 공격으로 덮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김 후보자는 억울할 수 있다.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지 않았다면, 일상적 개인적 민원으로 치부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력 정치인이 '오빠-동생'이라는 특별한 친분을 바탕으로 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는데,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가?
국정감사 중 민원인과 연락하고 기관장에게 해당 민원을 전달하느라 회의장을 들락거리는 모습이 온 세상에 공개됐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임명한다면 정권의 도덕성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사퇴 여부를 떠나 일단 잘못이나 책임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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