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종로구 거리에서 열린 '호르무즈 파병 반대 시민대행진'에서 한 어린이가 손팻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협상력은 마음대로 결정할 자유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국회가 동의하지 않고 여론이 받아들이지 않는 선은 정부의 제약인 동시에 상대국이 계산해야 할 조건이다. 호르무즈에서도 국내의 반대는 전투 임무를 거절하거나 규모와 기간을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 정부의 선택을 제한하는 힘이, 밖에서는 더 이상의 양보를 막는 힘이 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추가 파병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북핵 위기와 한미동맹을 고려해 결국 파병을 결정했지만, 노무현은 훗날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이를 옳다고 믿어서 내린 선택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피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썼다.
미국의 대규모 전투병 요구가 3천 명 규모와 비전투 임무로 조정되는 과정에서 그는 시민단체의 반대운동이 "큰 의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재임 중에도 파병 반대와 전쟁의 명분을 문제 삼는 여론이 있었기에 미국의 요구를 제한할 수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물론 국내 반대만으로 파병의 조건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다른 목소리가 반드시 정부의 발목만 잡는 것도 아니었다. 시민사회가 정부와 달리 판단하고 버텼기 때문에, 정부 역시 미국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선을 제시할 수 있었다.
지지할수록 더 어려운 말
문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 앞에서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다. 반대하는 권력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성공하기를 바라는 대통령이 자의든 타의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말을 꺼내기 전에 오래 망설이게 된다. 대통령의 힘을 빼는 것은 아닌지, 반대 진영에 공격할 빌미를 주는 것은 아닌지, 어렵게 세운 정부를 안에서 흔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정부가 잘되기를 바랄수록 비판은 가벼워질 수 없다.
더구나 돌아오는 것이 토론이 아니라 멸칭과 조롱, 낙인이라면 침묵의 유혹은 커진다. 정책 하나를 비판했을 뿐인데 오랫동안 지켜온 신념과 지지까지 의심 받는다. 대통령의 실패를 원하지 않기에 한 말이 오히려 실패를 바라는 사람의 말로 취급된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기준까지 바꿀 수는 없다. 야당일 때 지키겠다고 했던 원칙을 집권 뒤에 내려놓고, 권력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그 권력을 바꾸려 했던 이유까지 잊어버린다면 지지는 어느 순간 원칙보다 권력을 앞세우는 일이 된다.
치어리더와 파수꾼
▲개혁진보 4당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호르무즈 파병 검토를 즉각 중단하고, 파병 불가를 선언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김준형 조국혁신당 원내대표·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오준호 기본소득당 대표.
남소연
권력 주변에는 잘한 일뿐 아니라 잘못한 일에도 박수를 보내고, 비판하는 사람부터 공격하는 이들이 생긴다. 그런 목소리는 대통령을 잠시 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편안함과 성공은 같은 것이 아니다.
파수꾼의 역할은 다르다. 대통령이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잘못된 길 앞에서는 멈추라고 말한다. 경고하면서도 자신의 우려가 틀렸기를 바란다. 자신이 옳았음을 확인하는 것보다 정부가 실패하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파수꾼은 환영받기 어려운 자리다. 그러나 불편한 경고가 사라질수록 권력 주변에는 더 큰 박수와 더 적은 경고만 남는다. 그것이 단결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권력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진보의 역할은 때로 모질다. 자신이 지지한 권력에 상처받고도 그 권력의 실패를 바라지 않기에 해야 할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다시 외로워지고 미움받더라도 지켜야 할 선을 지키는 것. 성공한 대통령을 바란다면 끝내 파수꾼의 자리를 비우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보가 감당해야 할 가장 외롭고 어려운 역할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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