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딩의 귀재 고영민창의적인 슬라이딩을 하는 선수로 흔히 이종범과 정근우를 떠올린다. 이종범은 순발력과 순간 판단력이 뛰어났고 정근우는 어떻게든 살겠다는 집념과 투지가 넘쳤다. 하지만 슬라이딩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여러가지 길을 보고 준비하는 선수는 고영민이었다.
유성호
어쨌거나 그는 그렇게 길 아닌 곳으로 걸어 나간 끝에 프로선수가 되고 우승을 다투는 강팀의 주전 내야수가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한국 야구의 최전성기 국가 대표팀의 주전 2루수가 되어 가장 긴장되는 올림픽 결승전 9회 말 끝내기 상황에서마저 강심장 유격수 박진만마저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터닝 러닝스로우'를 아무렇지 않게 선보이며 한국 야구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결정짓기도 했다.
다만 그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의 3년 동안 그는 역대 최고의 2루수로 꼽히는 정근우보다도 한 걸음 앞서 있던 대한민국 최고의 2루수였다. 하지만 발목과 등근육과 손가락으로 이어지는 부상으로 부진에 빠진 사이 한 살 터울의 오재원이라는 재능 넘치는 경쟁자가 등장하는 불운이 겹쳤다. 타격의 정교함과 힘, 주루 능력과 수비 범위를 만드는 스피드, 에너지와 파이팅마저 갖춘 오재원에 비해 고영민이 앞서는 것은 오직 '창의력' 뿐이었고, 그 창의력은 발휘할수록 평범해지는 속성을 가졌다.
게다가 오재원과의 경쟁은 고영민의 야구를 흔들고 말았다. 더 정확하게 치고, 삼진을 줄이고, 실책을 줄이려는 노력이 고영민이 가지고 있던 그나마의 강점마저 조금씩 지워버린 것이다. 국가대표 주전 내야수마저 출전 기회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던 절박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어쨌거나 그는 끝내 길을 열지 못했다. 그의 선수 인생은 2016년까지 이어졌지만, '2익수'와 '고제트'의 기억은 오재원의 '식빵'으로 덮어씌워진 지 오래였다.
자랑 대신 즐거움과 깨달음을 준 선수
고영민을 떠올리는 베어스 팬들의 감정은 독특하다. 그는 우승의 주역도 아니었고, 베어스를 상징하는 선수라고 하기도 어렵다. 고마운 선수였지만 자랑스러운 선수였다고 말하기는 조금 부족하고, 대단한 선수였지만 훌륭한 선수였다고 주장하기도 허전하다.
하지만 그는 어느 팀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매력을 맛보게 해준 선수였고, 그런 선수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매일 경험하는 기쁨을 베어스 팬들에게 선물한 선수였다. 그래서 때로는 경악을 하고 기겁을 하는 상대편 팬들을 향해 이쯤 별것 아니라고 여유를 부리는 재미도 안겨준 선수였다. 그래서 기억을 돌이켜볼 때, 김동주와 김현수와 오재원의 기억이 더 강하고 정확하고 빠른 선수들에 가려지는 동안에도 저기 멀찍이서 홀로 존재감 과시하는 이름이 고영민일지도 모른다.
또한 정당하게 평가하자면, 그는 수비와 주루에 관한 소소한 고정관념들을 유쾌하게 깨뜨린 선수였고, 그럼으로써 야구장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은 공로자였다. 그래서 짧은 뜬공을 잡은 외야수가 지체 없이 송구 준비를 하고 평범한 땅볼을 잡은 내야수가 주자를 묶는 눈짓에 한층 집중력을 할애하는 혹은 극단적인 성향의 타자를 잡기 위해 극단적인 수비 위치 이동도 감행하는 오늘의 야구에 20년 전 그라운드를 헤집고 다니던 고영민이라는 선수가 미친 영향이 결코 적지 않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창의적 실책'과 '변태'라는 별명이 당대에 그 유쾌함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현이라면, 야구의 역사 속에서 그 적절한 위상을 평가하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개척자'라는 단어를 아낄 필요가, 굳이 있는 건 아마 아닐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결정지은 고영민쿠바 구리엘의 타구를 병살처리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결정지은 고영민. 그는 왜 그 순간 하필 그런 위험한 자세로 송구했을까? 숱한 화제와 논쟁을 낳은 주제지만, 고영민은 아마 이렇게 답할 지도 모른다. '왜 그러면 안 되는데?'
유성호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