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14 10:49ㅣ최종 업데이트 26.09.1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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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정해진 길은 없다. 투구에도 타격에도, 수비나 주루에도 여러 가지 길이 있고 그 중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는 선수 각자의 몫이다. 다만 너무 험한 길도 있고 끝까지 이어지지 않은 길도 있다는 점은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이들이 지나간 길이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라는 생각에도 크게 틀린 점은 없다. 지도자들이 '정석'과 '기본기'를 강조하거나, 때로는 강요하기까지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김성한, 양준혁, 박정태 같은 선수들은 비슷한 성적을 낸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더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이상한 타격 자세는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했지만 결과를 통해 그것 역시 길임을 증명해 냈고, 그럼으로써 야구에서 정석과 기본기라 불리는 길의 폭을 넓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개척자'라는 영광스러운 찬사가 주어진다.


그런데 자신만의 길을 통해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그 길을 따라가기는 어려운 경우도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공간을 통과했지만, 길을 냈다기보다는 사람이 지날 수 없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묘기를 보여주었다고 하는 쪽에 가까워 보이는 상황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고영민이라는 선수가 걸었던 길이다.

개척자, 혹은 기예

이상한 야구선수 고영민
▲이상한 야구선수 고영민수비든 주루든 타격이든, 그의 몸짓에는 평범함이란 찾아보기 어려웠다.유성호

그는 여러모로 이상한 선수였다. 2루수인데 우익수 코앞까지 물러나서 수비를 준비하곤 했고, 그러다가 종종 내야수와 외야수 사이에 정확히 떨어지는 완벽한 '바가지 안타'를 걷어내곤 했다. 또 수비 범위 자체도 넓어서 종종 카메라 앵글 밖에서 안으로 날아들어 고무나 스프링으로 만든 것처럼 팔을 쭉 뻗어 공을 낚아채기도 했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2익수'와 '고제트'였다.

또 특별히 급박하거나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데도 3루를 향해 달리며 몸을 비틀어 1루로 송구하는 동작을 수시로 선보였고, 주자가 여러 명인 상황에서 그의 손에 타구가 들어가면 과연 어느 쪽으로 그 공이 이어질지는 주자들도 수비수들도 감독과 코치도 팬들도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예측하기 어려운 몸짓이 숱한 어이없는 실책과 그래도 그보다는 조금 더 많은 호수비를 양산하며 '변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타석에서도 이상한 점은 있었다. 누가 봐도 간결한 타격과 세밀한 주루가 특기일 법한 날렵한 체구로 거의 매 타석 몸이 부서질 듯 풀스윙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삼진이 많았지만 또 의외로 볼넷도 많았고 비록 들쭉날쭉하긴 했지만 타율과 출루율도 높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보다는 자주 터지는 장쾌한 대형 홈런으로 막 혀를 차려던 이들을 얼어붙게 만들곤 했다.

주자로 나섰을 때도 예외는 없었다. 그는 짧은 외야뜬공에도 1루에서 2루로 진루했고, 더 볼 것도 없을 만큼 절망적인 내야 땅볼에도 3루에서 홈을 파고들었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적었고, 그런 고정관념에 갇힌 다른 선수들의 빈틈을 시시각각 노리는 반짝이는 창의력과 집중력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팬은 그를 가리켜 '창의적인 실책을 하는 선수'라고 표현했다. 잘못도 남들과 다르게 하는 선수. 실패조차 평범하지 않은 선수. 물론 좋은 플레이보다 실책이 더 많았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저 '창의적인 선수'라는 표현만으로는 그 특별함을 다 담지 못한다는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많은 이들은 그의 성장 과정을 상상했다. 얼마나 많은 지도자들이 그를 보며 뒷목을 잡았을 것이며, 또 그의 수비와 주루와 타격 동작을 뜯어고치려고 진땀을 뺐을 것인가. 또 그는 그런 숱한 잔소리와 간섭들을 흘려보내며 간혹 하나씩을 주워 담아 어떻게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나갔고, 어떤 기괴한 과정과 어떤 놀라운 결과로 어떤 당황스러운 표정을 끌어내며 뒤돌아 남몰래 주먹 불끈 쥐고 조용히 웃었을까.

기상천외한 활약과 창의적인 실책

슬라이딩의 귀재 고영민
▲슬라이딩의 귀재 고영민창의적인 슬라이딩을 하는 선수로 흔히 이종범과 정근우를 떠올린다. 이종범은 순발력과 순간 판단력이 뛰어났고 정근우는 어떻게든 살겠다는 집념과 투지가 넘쳤다. 하지만 슬라이딩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여러가지 길을 보고 준비하는 선수는 고영민이었다.유성호

어쨌거나 그는 그렇게 길 아닌 곳으로 걸어 나간 끝에 프로선수가 되고 우승을 다투는 강팀의 주전 내야수가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한국 야구의 최전성기 국가 대표팀의 주전 2루수가 되어 가장 긴장되는 올림픽 결승전 9회 말 끝내기 상황에서마저 강심장 유격수 박진만마저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터닝 러닝스로우'를 아무렇지 않게 선보이며 한국 야구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결정짓기도 했다.

다만 그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의 3년 동안 그는 역대 최고의 2루수로 꼽히는 정근우보다도 한 걸음 앞서 있던 대한민국 최고의 2루수였다. 하지만 발목과 등근육과 손가락으로 이어지는 부상으로 부진에 빠진 사이 한 살 터울의 오재원이라는 재능 넘치는 경쟁자가 등장하는 불운이 겹쳤다. 타격의 정교함과 힘, 주루 능력과 수비 범위를 만드는 스피드, 에너지와 파이팅마저 갖춘 오재원에 비해 고영민이 앞서는 것은 오직 '창의력' 뿐이었고, 그 창의력은 발휘할수록 평범해지는 속성을 가졌다.

게다가 오재원과의 경쟁은 고영민의 야구를 흔들고 말았다. 더 정확하게 치고, 삼진을 줄이고, 실책을 줄이려는 노력이 고영민이 가지고 있던 그나마의 강점마저 조금씩 지워버린 것이다. 국가대표 주전 내야수마저 출전 기회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던 절박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어쨌거나 그는 끝내 길을 열지 못했다. 그의 선수 인생은 2016년까지 이어졌지만, '2익수'와 '고제트'의 기억은 오재원의 '식빵'으로 덮어씌워진 지 오래였다.

자랑 대신 즐거움과 깨달음을 준 선수

고영민을 떠올리는 베어스 팬들의 감정은 독특하다. 그는 우승의 주역도 아니었고, 베어스를 상징하는 선수라고 하기도 어렵다. 고마운 선수였지만 자랑스러운 선수였다고 말하기는 조금 부족하고, 대단한 선수였지만 훌륭한 선수였다고 주장하기도 허전하다.

하지만 그는 어느 팀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매력을 맛보게 해준 선수였고, 그런 선수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매일 경험하는 기쁨을 베어스 팬들에게 선물한 선수였다. 그래서 때로는 경악을 하고 기겁을 하는 상대편 팬들을 향해 이쯤 별것 아니라고 여유를 부리는 재미도 안겨준 선수였다. 그래서 기억을 돌이켜볼 때, 김동주와 김현수와 오재원의 기억이 더 강하고 정확하고 빠른 선수들에 가려지는 동안에도 저기 멀찍이서 홀로 존재감 과시하는 이름이 고영민일지도 모른다.

또한 정당하게 평가하자면, 그는 수비와 주루에 관한 소소한 고정관념들을 유쾌하게 깨뜨린 선수였고, 그럼으로써 야구장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은 공로자였다. 그래서 짧은 뜬공을 잡은 외야수가 지체 없이 송구 준비를 하고 평범한 땅볼을 잡은 내야수가 주자를 묶는 눈짓에 한층 집중력을 할애하는 혹은 극단적인 성향의 타자를 잡기 위해 극단적인 수비 위치 이동도 감행하는 오늘의 야구에 20년 전 그라운드를 헤집고 다니던 고영민이라는 선수가 미친 영향이 결코 적지 않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창의적 실책'과 '변태'라는 별명이 당대에 그 유쾌함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현이라면, 야구의 역사 속에서 그 적절한 위상을 평가하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개척자'라는 단어를 아낄 필요가, 굳이 있는 건 아마 아닐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결정지은 고영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결정지은 고영민쿠바 구리엘의 타구를 병살처리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결정지은 고영민. 그는 왜 그 순간 하필 그런 위험한 자세로 송구했을까? 숱한 화제와 논쟁을 낳은 주제지만, 고영민은 아마 이렇게 답할 지도 모른다. '왜 그러면 안 되는데?'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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