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우 시인의 <노예수첩>
풀빛
1943년생인 그는 2017년에 발간된 <지금 나에게도 시간을 뛰어넘는 것들이 있다>에서 "그즈음에 내가 쓴 장편시 '노예수첩'은 상당히 많은 부수가 이미 해외에 유포되고 있었다"라면서 "그것은 내가 만나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손을 통해서 여러 나라에 흘러 들어갔으며, 특히 미국의 캐더린 엘리자벳 교수와 일본의 다까사끼 쇼지 교수의 손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노예수첩'은 한국 민중을 "억울하게 발 묶인 노예"로 지칭한 뒤, 이들이 학살이나 불법연행의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고 고발한다. "논둑에서, 학교에서, 출근길에서/ 아무도 모르게 묶여간/ 사람들/ 검은 차에 실려 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느냐"라고 외친다.
'노예수첩'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손가락이 닳도록 심어 놓아도/ 밤새도록 땀 흘리며 타작을 해도/ 언제나 곳간은 남의 것이다"라고 탄식한다. 노력이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착취 구조 때문에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그렇게 묘사했다.
이 시는 민중에 대한 착취가 정권의 이익을 위한 해외 파병을 통해서도 이뤄지는 현실을 지적한다. 이 시는 "조상들은 팔려 갔다 발목 묶여서/ 해적선에 실려서 포르투갈로"라고 한 뒤, "월남으로 팔려 간/ 내 친구들도/ 이제는 죽어서 돌아오지 않고/ 밀림 속의 진흙으로 사라졌구나"라고 읊는다.
월남으로 팔려 간 내 친구들... 양성우가 쓴 노예수첩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양성우는 1960년 4·19혁명에 참여했고, 5·16쿠데타 뒤 체포돼 퇴학당했다. 이후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근무했다. 그의 삶은 사회생활을 하는 중에도 험난했다. 스물일곱 살 때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서른두 살 때인 1975년에 광주 구국기독회에서 박정희 체제를 겨울에 빗댄 '겨울공화국'을 낭송했다가 교사직에서도 파면됐다.
그런 뒤 논문 발행이나 출판 계통의 일을 하던 그는 '노예수첩'을 발표했다가 또다시 시련을 맞이했다. 저명한 일본 잡지인 <세카이> 1977년 6월호에 이 시가 실린 것이 공안당국을 자극했다. 회고록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6월 13일 아침 출근길에 성서공회가 들어 있는 종로서적 건물의 입구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나를 끌고 그 옆 골목의 갈릴리다방 앞에 세워둔 검은 차에 밀어 넣더니 검은 천으로 내 눈을 가렸다."
'노예수첩'에 적힌 그대로 "출근길"에 "검은 차"에 실려 연행된 그는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및 형법상 '국가모독죄' 위반 혐의로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은 뒤, 2심에 항소하고 3심에 상고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1978년 9월 26일, 그에 대한 형이 확정됐다.
'노예수첩'은 한국 민중의 억울한 처지를 전반적으로 다뤘지만, 중앙정보부와 재판부는 베트남전쟁 파병 문제에 특히 주목했다. 재심 재판을 다룬 서울중앙지방법원의 2016년 1월 19일 자 판결문은 그가 체포된 이유에 관한 대목에서 "정부가 비밀 흥정에 의해 몇 푼의 대가를 미끼로 군인들을 월남으로 보내 죽게 하였다는 등으로 묘사"된 부분을 지적했다.
양성우는 베트남 파병을 정권의 이익과 지배-피지배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정권이 청년들을 미국과 남베트남에 '파병'한 게 아니라 '매도'했다는 시각이었다. 박 정권의 공식 명분인 '공산침략 저지'니 '자유세계 공동방위'니 하는 것들을 허상으로 봤던 것이다.
'노예수첩'에 "검은 차에 실려 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느냐"라는 대목이 있다. 그는 검은 차에 실려 갔지만, 돌아왔다. 석방된 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그는 1988년 총선 때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 양천갑구에서 당선됐다. 그는 또 다른 의미에서도 '돌아온 사람'이다.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무죄를 선고하는 재심 판결을 받아낸 그는 형사 보상 청구소송에서도 승소했다.
박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일본뿐 아니라 베트남으로도 눈을 돌렸다. 시인 양성우는 그런 박정희가 한국 민중을 외국 전쟁터에 팔아넘기고 있다고 외쳤다. 그래서 박 정권은 국가모독죄를 적용했지만, 재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결과적으로 양성우의 주장이 맞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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