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시내 전통시장에서 추석을 앞두고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록을 보며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 1884년에 우리나라 공직 사회에 이미 대체휴일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화기 이전에 이런 제도가 있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1882년 미국, 1883년 영국과 독일, 1884년 러시아 순으로 서양 제국들과 수교를 하며 서양 제국들이 지닌 근대적인 제도를 급하게 도입한 사례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1880~90년대의 실록, 승정원일기, 근대 신문을 보면 우리나라가 자강(근대화)을 위해 서양의 앞선 제도를 받아들이는데 매우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종이 궁에서 서양 외교관, 선교사, 의료인, 그리고 방문객을 접대할 때 서구식 음식과 서구식 음료(커피)를 사용했다는 것도 그런 모습의 한 부분이었다.
마치 나폴레옹이 영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산업혁명을 이루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발표했듯이, 고종은 탐욕스러운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자강을 이루기 위해 서구의 근대적 제도를 적극 도입했을 수도 있다.
둘째, 선물이나 접대에는 명분과 정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당소의, 여위, 노부는 민건호를 접대하면서 합당한 명분을 내세웠다. 휴일이었던 고종탄신일을 빙자하여 공직자에게 접대한 것이다. 접대받는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다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이들이 접대에 사용한 물품은 내용이나 분량이 과하지 않았다. 커피 한잔, 설탕 한 종지, 궐련 한 개 등이었다. 역시 받는 사람을 배려한 선택이었다. 선물이나 접대는 명분이 있고, 적당한 범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셋째, 선물이나 접대에 부탁이 섞이면 위험해진다는 사실이다. 이들 외국인 해관원들은 민건호를 접대하며 그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을 부탁했을 때 그것이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 수행을 방해하여 법에 저촉될 수 있는 경우"는 부탁이 아니라 청탁이 된다.
공직자에게 접대하거나 선물을 건네며 특별한 내용을 부탁하는 경우 부탁은 부탁에 머무르지 않고 청탁으로 변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소의, 여위, 노부 등이 접대하거나 선물을 전하며 무엇인가를 부탁하였다면 민건호는 청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아마도 밤새 고민하였을 것이다.
다른 날 일기에서 민건호가 고민했던 흔적이 간혹 보인다. 누군가 자신을 접대한 후, 혹은 선물을 전하며 특별한 부탁을 한 내용이 나온다. 영국인 박토목(Bateman)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인 여성과 함께 살던 해관원 박토목은 어느 날 점심시간에 민건호를 집으로 초대하여 1차에서 8차까지 접대했다. 술 한잔으로 시작해서 생선찜, 찜닭, 쌀밥, 떡, 샌드위치, 탕후르, 포도 등을 먹고, 커피와 담배로 끝나는 화려한 접대였다.
그런데 박토목은 접대 후에 어려운 부탁을 전했다. 자신이 동래 지역에 땅을 구해 집을 지어 살 수 있도록 동래부사의 허락을 받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외국인이 조계지 밖에 집을 맘대로 짓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 부탁을 받은 날 민건호는 밤새 잠을 설쳤다. 그리고 동래부사에게 부탁을 전하기는 하였지만 무리하지는 않았고, 결국 박토목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일기에 등장하는 외국인들의 이후 생애를 보면 부탁과 청탁의 차이,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적당한 선물과 접대를 명분 있게 했던 청나라 당소의는 조선주재 청나라 공사를 지낸 후 귀국하여, 1911년 신해혁명에 참여했다. 그는 새로 등장한 중화민국의 초대 국무총리직에 올랐다. 부산 세관장 노부는 1886년까지 부산에 머물다 귀국했고, 여위 또한 부산에서 오래도록 근무했다. 반면에 박토목은 곧바로 해관원에서 면직되어 조선을 떠났다.
장관 후보자의 신약 승인 여부를 둘러싸고 "불법적인 청탁이었다"는 주장과 "일상적인 부탁이었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명절을 앞두고 즐겁게 선물을 주고받아야 할 가을 문턱이 시끄럽다. 예나 지금이나 선물이나 접대는 명분에 맞고, 정도가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자칫하면 선물은 뇌물이 되고, 부탁은 청탁이 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