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09 07:16ㅣ최종 업데이트 26.09.09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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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초계기, 군수지원함 등 군사적 자산을 파병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2024년 제76주년 국군의날 미디어데이 리허설에서 전투기 호위 받으며 비행하는 해군 해상초계기(P-8A).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초계기, 군수지원함 등 군사적 자산을 파병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2024년 제76주년 국군의날 미디어데이 리허설에서 전투기 호위 받으며 비행하는 해군 해상초계기(P-8A).연합뉴스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는 한쪽에 여섯 개 머리를 가진 괴물이 있고 다른 한쪽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도사린 좁은 해협을 통과해야 했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는 이 좁고 험난한 항해보다 더 어려운 국면이다. 오디세우스의 선택이 딜레마 상황에서의 선택이라면, 이재명 정부의 선택은 트릴레마(삼중고) 상황이기 때문이다.

첫째, 동맹의 신뢰와 수송로의 안전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적이고 강압적인 청구서에 부응해 한미동맹의 파열음을 막아야 하는 부담과 원유 수입의 대동맥인 호르무즈의 재개방이라는 경제적 편익이 같은 축에 놓여 있다. 파병하면 함께 얻고 거부하면 함께 잃는다.


트럼프가 한국의 이란 관련 협조 거부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기억해 두겠다'라고 말하고, 한국이 천궁-Ⅱ를 우크라이나에 판매해야 한다는 주장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것은, 이 축을 잃었을 때 동맹의 청구서가 다른 방향에서 날아들 수 있음을 예고하는 신호다.

둘째, 이란 리스크 관리다. 2021~2022년 이란 핵 협상팀 고문을 지낸 모하마드 마란디 테헤란대 교수는 지난 4일 레바논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 주도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참여하면 페르시아만 건너편의 한국 경제·군사 자산이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동에 나가 있는 우리 기업과 교민의 안전도 이 축에 걸려 있다. 파병하면 잃고 거부하면 지킨다. 다만 파병하더라도 임무의 성격과 지휘 체계, 그리고 이란을 포함해 관련국들과 진행하는 사전 조율의 밀도에 따라 손실의 크기를 낮출 여지는 있다.

셋째, 국내 정치적 정당성이다. 평화와 안전을 중시하는 현 정부 지지층의 이념적 지향을 존중하고, 정책 추진에 필요한 민주적 정당성과 국정운영의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 축은 앞의 두 축과 성격이 다르다. 파병 여부 자체가 아니라 결정에 이르는 절차의 정당성이 이 축의 값을 정하기 때문이다.

트릴레마가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미국은 속도를 원하는데, 이란 리스크 관리는 신중을 요하며, 국내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는 적정한 절차가 필요하다. 게다가 이 세 요구는 서로 다른 시간표 위에서 동시 달성이 불가능하다. 미국의 일정표에 맞춰 파병을 서두르면 첫째 축은 충족할 수 있지만 둘째 축과 셋째 축을 함께 잃는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이 그랬다. 그해 4월 2일 국회는 재석 256명 가운데 찬성 179, 반대 68, 기권 9로 파견 동의안을 의결했으나,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 49명이 찬성하고 43명이 반대하며 여권 내부가 정면으로 갈렸다. 정치적 효과는 즉각적인 지지율 그래프 하향이 아니라 여권 내부의 균열이라는 형태로 시차를 두고 서서히 도착했다.

반대로 이란과의 마찰을 피하고 국내의 정치적 지지를 우선하여 파병을 단호히 거부하면, 둘째와 셋째를 지키는 대신 첫째를 잃는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통상 보복처럼 감당하기 힘든 청구서가 뒤따르며 동맹 관리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절충안은 어떤가. 전투 자산을 배제하고 명분상의 소극적 파병만 단행하는 길이다. 결과는 세 축 모두의 상실이다. 이란이 보는 것은 자산의 규모가 아니라 임무의 성격이다. 한대든 두 대든 해상초계기가 수집한 정보가 미군의 공격 자산과 연동되는 순간 규모는 의미를 잃고, 둘째 축은 그대로 무너진다.

첫째 축도 온전하지 않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시늉만' 참전이 아니라 실효적 기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에 쫓겨 절차를 생략한 채 떠밀리듯 결정하면 셋째 축도 남지 않는다. 여기에 규모만 줄여 파병하면 이란의 분노는 분노대로 사면서 호르무즈 교통로 보호라는 실질적인 국익마저 담보하지 못하는 최악의 비효율에 직면할 수 있다.

트릴레마 부담 나누는 정밀한 거버넌스 설계해야

‘호르무즈 파병 반대하는 사람 모두 모여! 파병반대 평화행진’이 서울평화연대와 전국민중행동 주최로 7일 오후 서울 미대사관앞에서 청와대 구간에서 열렸다. ‘미국의 파병압박 거부하라’ ‘굴종외교 중단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든 참가자들은 이날부터 11일(금)까지 매일 저녁 7시부터 행진을 할 예정이다.
▲‘호르무즈 파병 반대하는 사람 모두 모여! 파병반대 평화행진’이 서울평화연대와 전국민중행동 주최로 7일 오후 서울 미대사관앞에서 청와대 구간에서 열렸다. ‘미국의 파병압박 거부하라’ ‘굴종외교 중단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든 참가자들은 이날부터 11일(금)까지 매일 저녁 7시부터 행진을 할 예정이다.권우성

이 트릴레마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아무 대가 없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어느 한 축의 가치를 극대화하려 할수록 다른 가치의 훼손과 비용이 커지는 구조적 덫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 무엇을 내어주고 무엇을 지킬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제약 조건과 그에 따른 대가를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이 거대한 트릴레마는 소수 엘리트 관료들의 밀실 외교나 천재적인 묘수만으로 돌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진정한 해결의 출발점은 공공외교의 국내적 차원을 실질적으로 가동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공공외교는 소수 국민외교 사업과 함께 주로 외국 국민의 이해와 신뢰 증진을 목적으로 했다(법률 제13951호 공공외교법 제2조). 그러나 국제정치학에서 공공외교의 현대적 의미는 외교정책의 형성 과정에 국내 구성원을 참여시키고 갈등을 조율하는 외교의 민주화를 포괄한다. 안보딜레마를 소수 엘리트의 회의실에서 시민사회의 공공 의제로 격상시켜 정책 선택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가 안위가 걸린 긴급한 국면에서 수개월이 소요되는 대규모 시민참여형 공론화가 정답일 수는 없다. 고도의 기밀 유지가 필수적이고 신속한 대처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공론화는 자칫 안보 대응의 타이밍을 놓치게 만드는 제도의 덫이 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의사결정 권한 자체를 시민에게 위임하는 기계적 방식이 아니라, 트릴레마의 인지적 부담을 구조적으로 나누는 정밀한 거버넌스를 설계해야 한다. 파병 동의안이 이달 정기국회에 제출되리라는 전망을 고려하면 지금 바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다음 세 가지는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방안이다.

첫째, 전략적 정보 공개를 바탕으로 한 투명한 위기 커뮤니케이션이다. 지정학적 압박의 실체를 밀실에 가둬둘 것이 아니라, 국가 안위에 치명적이지 않은 선에서 미국의 압박 수위와 이란의 보복 시나리오, 경제적 타격 예측 데이터를 선제적으로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 완벽한 정답이 아닌 잔혹한 제약 조건 그 자체를 시민사회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둘째, 의회를 매개로 한 공개 숙의의 가동이다. 헌법 제60조 제2항은 국군의 외국 파견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을 규정한다. 파병 동의안 표결에 앞서 국회 청문회를 연달아 열고, 정부 관료들의 방어적 답변을 넘어 파병 찬반을 대표하는 시민사회 인사와 정유·해운 등 산업계 이해당사자들을 공식 토론자로 세워야 한다. 생중계되는 공론의 장에서 동맹의 실리와 보복·교전의 위험이라는 상충하는 가치를 치열하게 검토함으로써 정책 선택의 근거를 일반 시민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의회 심의를 뒷받침하는 민관 정책 네트워크의 활용이다. 서로 다른 입장의 시민사회 인사와 독립적인 전문가를 심층 안보 브리핑에 초청하여 정부가 가진 날 것 그대로의 고민을 공유해야 한다. 이들이 정부의 위험 평가를 검증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시민사회의 우려를 전달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 역시 어떤 의견을 수용하든, 그렇지않든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러한 상호 검토를 거쳐야 정부의 고민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에 신뢰가 생긴다.

이 과정의 결론은 열려 있어야 한다. 비파병과 다른 기여 방식도 검토해야 하며, 파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이르더라도 임무의 범위, 지휘 체계와 정보 공유, 파견 기간과 철수 조건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작전의 국제법적 근거를 검토하고, 임무 확대에 대한 민주적 통제도 확보해야 한다. 방어적 임무라는 이름만으로 교전 위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의회와 시민사회가 협력해 이러한 조건을 구체화한다면, 그 결과는 대외 협상의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거친 요구 앞에서는 민주적 통제의 한계를 명분으로 내세워 방어막을 칠 수 있고, 이란을 향해서는 비적대적 의도를 설명하며 오해의 위험을 줄이는 근거가 된다.

상대가 이를 언제나 존중하지는 않겠지만, 국내에서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책임지는 약속은 정부의 일방적 설명보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대내적 트릴레마의 투명한 사회화가 대외적 협상력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긴장 속에서 비극적 결과를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 정치가의 소명이라고 통찰했다. 선택의 근거와 감수할 대가는 시민과 함께 논의하되, 정부는 결정과 집행에, 국회는 동의와 감시에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 지도자의 덕성은 국정운영의 키를 혼자 쥐고 밀실에서 고뇌하는 고독한 결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의사결정의 무게를 주권자 국민과 솔직하게 나누고, 실증적 데이터와 숙의의 언어로 차악의 선택을 모색하는 겸허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거친 해협의 파도를 넘고 외부의 압력에 맞서는 힘은 트릴레마를 사회화하여 다져낸 민주적 정당성과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감당하는 리더의 책임에서 나온다.
덧붙이는 글 은재호는 국무총리 소속 한국행정연구원에 재직하며 한국갈등학회장과 다수 정부 부처의 갈등관리심의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민통합위원회 위원과 한국외국어대학교 EU융합전공 겸임교수 및 프랑스 파리 1대학 PRISM-Sorbonne 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며 연구 현장과 정책 현장을 이어주는 정책 중개자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주의 디자이너’를 ‘참칭’하는 그의 저서로는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국민통합 전략과 실행방안 연구>(2017), <혁신적 포용국가의 국가론적 지위와 이행전략>(공저, 2019), <공론화의 이론과 실제>(2022), <경세제민의 공공리더십>(공저, 2024), <여론 속의 여론>(공저, 202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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