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입양체계 시행 후 늑장 행정으로 시설에서 나이 들어가는 아동의 아동의 안타까운 현실을 호소하는 시민단체의 현수막
김지영
2012년 시행된 입양특례법 이전 입양법은 입양친화적인 법이었다. 이 법의 개정은 2011년 이루어졌는데 그전 명칭은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이었다. 국내외 입양 활성화 및 촉진을 위한 법이었던 이 법에서 촉진이라는 단어가 삭제된 것이다.
법 시행 이후 입양은 급격히 위축됐다. 일 년 사이에 갑자기 입양 대상 아동이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제도가 아이들의 가정보호 길을 가로막은 결과였다.
비판입양학은 학문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 이념의 운동적 실천을 담당하는 조직 네트워크가 교차성 페미니즘을 공유하는 국회의원을 통해 국회 입법과정에 직접 개입했고 법안 통과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단체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해외입양인 인권단체였다. 이 단체는 개별 아동의 복지보다 입양 자체의 윤리성을 문제 삼는 방식으로 정책 논쟁을 이끌었다. 일부 국내 미혼모 단체와 국제적으로는 각국 해외입양인 네트워크가 연대했다.
이 네트워크가 유엔아동권리위원회(UNCRC) 대한민국 권고문에 영향을 미쳤다. 권고문 작성 단계에서 개입을 시도한 전통입양학 계열 단체들은 회원가입이 거부되고 위원회 일정도 통보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결과로 나온 권고문은 비판입양학 계열 단체들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반영하는 내용이었다.
위원회는 한국에 입양기관의 상업적 이해관계를 제거하고 국가 주도 체계를 구축하라고 권고했다. 이 권고는 조약 의무는 아니었지만 국회 입법 과정에서 유엔아동권리위원회라는 막중한 권위에 힘입어 반복적으로 인용됐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고 있다는 명분을 만들어줬다.
이 과정에서 특정 이론이 담론이 되고 담론이 법이 되는 새로운 규범이 형성됐다. 입양은 '아이에게 가족을 주는 행위'가 아닌 '구조적 재생산 불평등의 산물'이자 '아동 상품화'로 규정됐다. 입양은 축복이라는 말은 금기시됐고 상실과 착취라는 반자본주의적 언어가 공론장을 지배했다. 정체성 정치의 문법에 따라 아동은 불평등 구조의 피해자라는 집단적 정체성으로만 다뤄졌고, 개별 아동이 처한 환경과 애착 형성의 결정적 시기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법 개정 명분 자체는 옳았지만
이러한 프레임 속에 헤이그협약 해석마저 뒤집혔다.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보충성 원칙은 원가족 양육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국내입양, 그다음이 해외입양이라는 위계를 규정한다. 장기 시설보호는 이 위계의 최하위에 놓인다.
비판입양학 진영은 이것을 다르게 해석했다. 시설을 포함한 모든 국내 보호를 소진한 뒤에야 해외입양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협약 이행지침(HCCH. 2008)은 이 해석을 명시적으로 부정한다.
'아동이 시설에 영구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해외입양보다 선호되는 해결책으로 볼 수 없다. 시설보호가 오히려 최후 수단이다.'
협약이 공식적으로 부정한 해석이 국내에서는 해외입양이 최후 선택이라는 뒤집힌 정책 논리로 정착했다. 이 논리는 일반 시민들의 민족적 감성을 자극하며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마저 부정했다. 이 뒤집힌 논리 위에서 국내에서 가정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해외로 가는 대신 시설로 보내졌다.
2012년 8월 5일 비판입양학 단체들이 주도해 입안에 성공했던 입양특례법이 시행됐다. 출생신고 의무화와 가정법원 입양 허가제 도입이 주요 내용이다. 아동의 원가정 양육을 최우선으로 하고 국가가 아동 보호 책임을 다하겠다는 법 개정의 명분 자체는 옳았다. 문제는 선한 취지와 달리 사전 준비 없는 국가 개입이 '지원과 보호'가 아닌 '규제와 통제'의 방식으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전통입양학 계열 단체들은 출생신고의무화가 오히려 유기아동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거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결과는 그들의 예상대로였다. 사전 준비 없이 진행된 법원 허가제는 수개월의 절차적 지연을 요구했고 비혼 출생 부모에게 출생신고 의무는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유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래저래 피해는 부모 없는 아이들이 감당해야 했다.
법 시행 전 191명이던 유기 아동이 시행 후 235명으로 늘었고 그 후과는 보호(익명)출산법이 시행된 2025년에야 멈추었다. 비판입양학 진영은 익명 출산 제도가 도입되면 국가가 유기를 방조하고 미혼모의 원가정 양육 포기를 부추길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했었다. 그러나 이념적 가설은 현장의 데이터 앞에서 힘을 잃었다.
보호출산법이 시행된 이후 유기아동 수는 2023년 88명에서 시행 첫해인 2024년 30명, 2025년 19명으로 급감했다. 출생아 수의 구조적 감소와 통계 분류 기준 변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같은 기간 보호출산 상담을 통해 생모가 직접 양육을 결정한 사례가 전체 상담 107건 중 59건, 약 55%에 달했다는 사실은 제도의 실질적 효과를 보여준다.
위기 임산부와 아동의 현실을 직시한 제도적 안전망이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길거리에 버려지는 비극이 줄어들고 더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됐다.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입양의날 기념식장 앞에서 입양골든타임 보장을 촉구하는 입양가족 단체들
김지영
상대적으로 입양특례법이 불러온 후과는 치명적이었다. 2011년 2464명이던 전체 입양 아동 수는 2023년 241명(국내 162명, 해외 79명)으로 89.5% 급감했다.
입양이 줄어든 자리를 무엇이 채웠는가. 국내에서 여전히 외면받는 장애 아동과 나이가 든 아동이 가장 먼저 시설로 들어갔다. 입양특례법 시행 이전에는 얼마든지 해외입양으로 가정에서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이념이 만든 공백의 가장 깊은 자리를 가장 취약한 아이들이 채웠다.
교차성 페미니스트 정치인과 교수 및 변호사 등의 전문가 그룹을 통해 형성된 이념적 규범은 반론을 허용하지 않았다. 입양 활성화를 주장하는 아동복지 전문가들이 공론장에서 사라졌다. 반해외입양 담론은 진보의 정체성으로 굳어졌고 이를 거스른다는 건 반민족과 비도덕의 문제로 비화되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가 따로 있었다. 사회 전반에 입양포비아가 형성되고 있었다.
"입양은 부자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저와 같은 가난한 목사는 입양이 거절된다고 해서 신청도 못 하고 있습니다."
"직업이 프리랜서라 서류심사 통과도 안 될 거라는 소문 때문에 신청할 생각도 못 했는데요."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우리 사회 안에 급속도로 퍼진 이와 같은 불안감은 사실 여부를 떠나 입양 문화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입양을 미혼모의 양육 권리를 박탈하는 폭력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이 자리를 잡았다. 미혼모 지원과 입양 반대는 별개의 문제임에도 비판입양학은 이를 하나로 묶어 생모의 재생산권을 아동의 발달권보다 우선시시켰다. 이 프레임 안에서 입양기관은 여성 착취의 조력자로 공격받았고, 이는 공적체계 도입 과정에서 현장의 전문성이 철저히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가 기념일인 '입양의 날'(5월 11일) 바로 앞날인 5월 10일을 그들 주도하에 '미혼모의 날'로 선포하고 "입양보다 양육이 먼저"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이러한 이념적 대립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0년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은 이 구도를 더욱 단단하게 굳혔다. 사건의 본질이었던 사후 학대모니터링 체계의 부재가 입양제도 자체의 결함으로 전환되면서 입양을 결심했던 예비입양부모들이 입양을 포기하는 현상이 가속됐고 입양기관들이 사실상 문을 닫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2025년 시행된 공적 입양 체계는 이 흐름의 제도적 완성이었다. 국가가 입양의 모든 과정을 직접 관장하는 구조로 바꾼다는 취지는 분명했다. 그런데 이 전환을 이해하려면 먼저 국가가 이 영역에 없었던 시간을 봐야 한다.
1950년대 전쟁 이후 국가는 아동보호 역할을 민간에 넘겼고,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위탁가정 관리와 생모 상담, 입양 연계 노하우는 민간의 현장에서 쌓였다. 그러나 2025년 시행된 공적 입양 체계는 이 전문성을 품어 안는 통합 대신 철저한 배제와 단절을 택했다. 국가 책임 강화라는 명분과 이를 이행할 행정 역량 사이의 거리에서 관료주의적 병목 현상만 심화했다.
구조가 바뀌면 생모와 함께 살 수 있다는 이념적 담론이 앞서는 동안 아이들의 영유아기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린다. 개별 아동의 '지금 이 순간'의 필요는 이념의 완성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저출생과 복지 향상이라는 시대적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전체 출생아 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동안 입양 아동 수가 90% 가까이 폭락한 것은 기형적이다. 제도와 이념이 만들어낸 물리적 장벽이 아이와 예비입양부모 사이를 가로막은 결과다.
국가 주도 체계로의 전환이 민간 배제나 통제와 동의어가 될 수는 없다.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오랜 현장 전문성을 품어 안고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빨리 가정으로 연계하는 일이어야 했다. 국가가 배제해야 했던 것은 민간의 전문성이 아니라, 아이의 시간을 지체시키는 행정의 비효율과 현장을 도외시한 이념 중심의 설계였다.
'아이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공적 입양 체계 일 년 동안 단순한 행정절차에 가로막혀 시설에서 나이 들어가는 입양 대상 아동들에게는 결코 진부할 수 없는 오랜 격언이다. 지금 이 순간도 공적 책임을 내세운 행정이 한 아이의 삶을 멈춰 세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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